김훈
《녀자는 변신을 거듭한다》
그 후로 오래동안 미향을 만나지 못했다. 내가 둬달 취재차로 외지에 갔다 돌아오니 안해가 기쁜 얼굴로 내 앞에 송금표를 내보이면서 오늘 온것이라고 했다. 3천원 송금표에는 그저 간단히 번역료라고 적혀있었다. 송금인은 최미향이였다.
《실종됐다는 사람이 그래도 신용 하나만은 지켰군요.》
나는 안해에게 번역을 의뢰한 후배가 실종됐다고 거짓말했었다.
《최미향이란 이 녀자가 당신의 후밴가요?》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날 내가 미향이가 적어준 전화번호에 전화를 거니 그 전화는 취소된 전화라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아마 회사를 옮긴 모양이였다.
나는 본격적으로 이미 수집한 일제시대 종군위안부에 대한 자료정리에 들어갔다. 자료를 정리하다가 나는 당시 일제 법제국의 한 참사관이 쓴 글 한편 발견했다. 그자는 일제의 식민지정책의 가장 어려운 과제의 하나가 우리민족의 녀성층을 감화하는것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서양 등 선진제국은 식민정책, 또는 선교를 위해서 먼저 부인층을 감화시키는 일에 초점을 두고 있다. 녀자가 감화를 하면 남자는 자연히 따라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제도 우리민족 녀성의 순결성과 고귀성은 민족성을 수호하는데 있어서 큰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아냈고 아울러 다른 식민지통지자들보다 한술 더 떠서 감화정책보다도 그 순결성과 고귀성을 무참히 짓밟는 것을 우리민족의 민족성을 쇠퇴시키는 중요한 일환으로 보았기에 우리민족의 녀성들을 성의 노예인 위안부로 전쟁판에 내몰았다.
《광사원(廣辭苑)》이란 사전에는 종군위안부란 《일제 때 장병들을 수행해서 위안해 준 녀자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 실체는 종군위안부란 세계 군대와 전쟁사상 전례가 없었던 군인들의 성욕처리를 위한 잔혹하고 야만적인 섹스 처리용 녀자들이다.
일제시기에 종군위안부가 있었다면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된후에는 현지처라는 것이 생겨났다. 사전엔 현지처란 외지에 나가 있는 남자가 현지에서 있을 동안 데리고 사는 녀자라고 밝히고 있지만 말을 바꾸어 말하면 현지에서 구한 섹스처리용 녀자다. 섹스처리용 녀자라는 점에선 위안부나 다름이 없다.
일제시기엔 일제가 총칼로 우리 민족 녀성들을 종군위안부로 전쟁터에 내몰았다면 경제대국이 된후에는 그 족속들이 돈다발을 들고 가서는 우리 민족 녀성들을 현지처로 들여 앉혔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 아니다. 우리를 더욱 경악케 하는 것은 일본인들의 그 못된 본을 받아 중국에 사업차로 드나드는 일부 한국인들도 조선족 녀성들을 현지처로 들여 앉혔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현지처, 그들은 과연 어떤 녀성들일가?
듣는 소문엔 아세아촌 부근에 한국인 현지처들이 많다고 했다. 어느 하루 나는 그 실태를 알아보려고 아세아촌으로 갔다. 나는 먼저 비싼 외제 화장품만 파는 상점에 들어가 상점주인과 얘기를 나눴다. 외제 화장품중 한국산이 특히 많았다. 상점주인은 30대 중국녀성이였다.
《이 비싼 화장품을 사가는 분이 있습니까?》
《공급은 수요에 따른다는 법칙을 모르시는가 보군요.》
《하긴 그렇습니다. 사는 사람이 없으면 여기다 가게를 차릴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이 비싼 화장품을 애용하는 분들은 대체로 어떤 부류의 녀성들입니까?》
《시장조사를 나왔나요?》
《그렇게 생각해도 됩니다.》
《대체로 외국회사에 근무하는 아가씨들이 아니면 장기주재하거나 자주 중국을 나드는 외국인들의 〈작은댁〉들이지요.》
한어로 《작은댁》이라면 첩살림하는 사람, 시체말로 《현지처》다.
《그런 〈작은댁〉들이 많습니까?》
《많다고 할수는 없는데 그러나 적지는 않아요.》
《어떻게 〈작은댁〉인줄 보아냅니까?》
《어떤 기준이 있는것도 아니고 또 그런 녀자들이 그 어떤 표식을 달고 다니는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보면 알려요. 녀자의 눈은 못 속이니까요.》
《그런 녀자들은 별장에 있나요?》
《별장을 갖고 있는 녀자들도 더러 있겠지만 이 근처의 녀자들은 대체로 사무실겸 주택으로 쓰는 그런 집에 있어요.》
말하자면 오피스텔이다.
《드믄드믄 주문배달을 가보면 대부분 무슨 회사라는 조그마한 간판이 달려있는데 들어가보면 대체로 아가씨 혼자 있지 않으면 같이 사는 남자하고 둘 뿐이예요. 그런데 그런 녀자들이 후에도 주문배달 해달라고 내미는 명함을 보면 대개 무슨무슨 회사의 부장이 아니면 경리라고 찍혀있어요. 말하자면 밖에 나가선 회사 직원이고 방에 들어와선 〈작은댁〉노릇을 하는셈이지요. 말하자면 〈양대가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격〉이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창밖으로 미니스커트 차림의 한 젊은 녀성이 50대초반으로 보이는 사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채 상점쪽으로 오고 있는것이 보였다.
《저런 녀자가 바로 한국인의 〈작은댁〉이얘요.》
상점앞으로 가까이 다가온 녀자를 보는 순간 나는 화들짝 놀랬다. 미향이였다. 나는 내눈을 의심했다. 머리모양이나 옷차림이 판판 달라졌지만 분명 미향이다. 미향이를 한팔로 감싸안고 걸어오는 사내는 꽤나 왜소한 몸집에 키가 훌렁 크고 얼굴은 희여멀건 사람이였다.
《저 녀잔 이곳에 온지 서너달 되었는데 우리 집의 단골이예요.》
둘은 상점안으로 들어왔다. 상점주인이 깍듯이 인사하며 그들을 맞아들였다. 미향은 나를 보는 순간 놀라는 기색이더니 인차 반색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을 여기서 만날줄을…》
《나 역시 미향일 여기서 만난줄은 생각지 못했소.》
미향의 곁에 선 사내가 나와 미향일 번갈아 보다가 미향에게 묻는듯한 시선을 보냈다.
《참, 소개 드릴게요. 이분은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이시고 이분은 저의 회사 박사장님이세요.》
우리는 서로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나눴다. 박사장이라는 사내가 실례한다면서 인차 자리를 떴다. 사내는 나가면서 미향에게 말했다.
《미스 최, 10시에 약속이 있으니 시간 장악하라구.》
《네. 시간맞춰 올라갈게요.》
미향의 말은 억양마저도 서울말씨를 닮았다.
《선생님 커피 한잔 할까요? 이 부근에 커피 잘하는 집이 있어요.》
《그러지.》
별로 기분이 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 부근에 있는 자그마한 커피숍으로 갔다. 커피를 주문하고 미향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제가 많이 달라졌지요?》
《글쎄, 겉모양이나 억양은 그 사이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젊은 녀성인 경우에 아무리 시골티가 푹배인 녀자라도 대도시에서 한달만 지내면 시골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모한다. 미향의 경우가 그렇다. 우리가 만나지 못한 반년 사이에 미향은 옷차림에서부터 몸가짐새, 지어는 억양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직업녀성을 뺨칠 정도로 닮았다. 한국말을 빈다면 아주 세련되였다고 할가.
《회사를 옮긴 모양이던데.》
《처음에 몸담았던 그 회사는 서울의 본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문을 닫았어요. 그래서 옮겨 앉은 것이 지금의 회사인데 역시 무역업이예요.》
《회사직원이 얼마나 되오?》
《지금 한창 불경기여서 사장님외에 저밖에 없어요.》
둘밖에 없는 회사, 상점주인의 말대로라면 《양대가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 그런 회사다.
《미향인 회사에서 무슨 일을 보고 있소?》
《참, 저의 명함 드리지 않았군요.》
미향이가 꺼내주는 명함을 받아보니 거기엔 《경영경리》라고 찍혀있었다.
《어허, 경리로 승진했군그래.》
《아직은 명색뿐이죠.》
그래 맞다. 명색뿐이지. 경영경리이라 해놓곤 사장의 생활이나 보살피는 그런 《생활비서》 노릇이나 하겠지. 거친말로 표현한다면 사장의 잠자리 시중까지 들어주는 《작은댁》 노릇! 마음이 별로 씁스름해났다. 유치할 정도로 천진스럽고 솔직하던 미향이가 어쩌면 반년사이에 이렇게 완판 다른 모습으로 변신했을가가 믿어지지 않는다. 녀자는 변신을 거듭한다지만 그 변신이 너무도 돌연적이고 빨랐다. 변신이라고 하기보다 다시 태여났다고 해야 적절할 것 같다. 녀자는 변신을 거듭한다는 말을 녀자는 태여나기를 거듭한다고 고쳐 말해야 할것같다.
잠간 침묵이 흘렀다. 눈을 내리깔고 커피를 홀짝이던 미향이가 고개를 들면서 침묵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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