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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장모님이 북경을 떠난 이유
2009-05-20 16: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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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개방, 개방하는 세월에 자기 집 창문을 꼭꼭 닫아놓고 거기다 쇠살창까지 대서 자기를 가둬놓은 사람들이 나가서 개방을 하면 어떻게 개방하겠나?》

장모님 입에서 개방이란 말까지 술술 나오니 더욱 놀랍다.

《할머닌 모르는게 없네. 아주 정치까지 푸시네.》

딸애의 말에 장모님은 눈을 흘기며 말을 받았다.

《내 이래봬도 한때는 부녀대장까지 한 사람이다.》

《부녀대장이 뭔가요?》

딸애가 물었다.

《녀자들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다.》

《그래 이 할머니가 〈맨자진〉줄 알았냐?》

《〈맨자지〉란 무슨 말이예요?》

딸애가 바투 들이댔다.

《어머니두 참, 애들앞에서 아무 말씀이나 다 하시네.》

안해가 핀잔을 주었다.

《그래그래, 이 말 안했더럼 치자.》

그 뒤로 장모님은 자기는 감옥에 갇힌 사람과 같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아침시장에 나갔다 들어와서는 종일 쇠살창을 댄 집에 눌어앉아 있으니 쇠살창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이나 구경하는 죄인신세나 다름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난 창문에 댄 쇠살창을 뜯어버렸다. 그제야 좀 숨이 나온다고 하던 장모님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쇠살창이 없어도 역시 갇힌 신세와 다름이 없다고 했다.

《그럼 대체 어쩌라는거얘요?》

안해도 참다못해 화를 냈다.

《어쩔게 있냐. 그냥 돌아가면 되지. 여긴 내가 살 곳이 아닌 것 같다.》

《어머닌 정말 애꾸러기네. 오빠집에 있을땐 북경에 오지못해 오빠를 그렇게 닥달하더니 이제와선 또 가겠다고 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겠어요?》

《이제 가면 다신 안온다. 그리구 오빠집에도 안간다. 오빠집도 시내에 있으니 여기와 별반 다를게 없다. 이제 가면 시골에 가서 편히 살겠다.》

《그 년세에 혼자서 어떻게 시골에서 지낸다고 그래요?》

《아직 터밭같은건 내 손으로 다룰수 있다. 그래도 시골이 좋네라. 사람은 땅기운을 받으면서 살아야 해.》

《자식 망신시키려면 고집대로 하세요.》

딸애가 갓 태여낫을 때 장모님은 외손녀를 봐주느라고 시골에서 올라와 우리 집에서 3년을 보냈다. 그때 우리집은 연길에 있었다. 그때도 장모님은 하루종일 집안에서 맴돌았지만 3년동안 한번도 갑갑하다는 말을 내비친적이 없었다.

《어머니, 그때보다 지금 생활형편이나 거주환경이 훨씬 좋아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자꾸 여기가 감옥같다고 하면서 그러는거얘요?》

《그 때야 애가 날 동무해줬지 않느냐. 너 정 날 여기 눌러앉히겠거든 애 하나 더 낳거라.》

그 말에 나나 안해나 입을 딱 벌렸다.

《듣자니 여기 조선족들도 5년 터불이면 하나 더 낳을수 있다더라.》

기막힌 소리다. 5년 터불이든 10년 터블이든간에 아이 하나 낳아 기른다는게 북경에서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장모님은 모른다. 우리 나이 인젠 사십이다. 사십고개에 아이 하나 더 낳는다는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애들은 친형제가 있어야 하네라. 애 하나면 외롭게 자란다. 너들만 살림 편하게 하자고 애를 외롭게 하겠냐. 애만 낳아라. 내가 다 키워주마.》

《어머니 년세가 얼만지 잊으셨는가 보군요.》

《잊긴 왜 잊어? 아직 10년은 문제없다. 애를 낳기만 해라. 그럼 내 죽을때까지 여기서 눌러 살게.》

우리 내외는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장모님이 마음을 안착하게끔 무슨 방도라도 대야 했다. 그렇다고 장모님 말대로 애 하나 더 낳을수는 없었다. 답답한 얘길 부서에서 했더니 한 선배가 홀로 있는 장모님에게 령감을 붙혀주는것이 상책이라고 했다.

《장모님은 나이 칠십입니다.》

《지금 세월에 칠십이 다 뭔가. 칠십에 리혼하는 로인도 다 있을라니.》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장모님앞에 내비쳤더니 장모님이 이렇게 말을 받았다.

《남자 하나 섬긴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진저리 나는데 내가 구린내나는 령감의 양말을 씻어주자고 재가해? 말도 안되는 소리 다시 꺼내지 말게.》

장모님이 마음 편히 지내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생각밖에도 장모님이 스스로 일감을 찾았다. 우리가 사는 주택뒤에는 꽤나 큰 빈터가 있다. 그 곳은 원래 주택을 지을 때 건축자재를 쌓아놓았던 자린데 잡초가 무성하고 도처에 깨진 벽돌쪼각이며 쓰레기들만 널려있다. 우리가 이사올 때만해도 그곳을 록지로 만든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2년이 지나도록 그냥 그대로 방치되여 있다.

장모님은 낮이면 빈터에 나가 가장자리에 널린 깨진 벽돌쪼각을 주어내고 잡초를 찍어냈다. 무슨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했더니 장모님의 말이 땅을 묵일게 있느냐면서 자그마한 ?밭이라도 일구어 딸애가 좋아하는 강냉이를 심겠다고 했다. 우리 내외도 시간만 나면 장모님의 일손을 거들었다. 일주일이 지나 빈터의 가장자리에 50평 정도의 터전이 마련됐다. 장모님이 선줄을 끌자 주변에 사는 로인들도 나와서 빈터에 저마끔 자기 터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쥐들만 쏘다니던 잡초무성한 빈터는 뙈기뙈기 터밭으로 탈바꿈했다.

장모님은 조깅삼아 아침시장으로 나가던 습관을 바꿔 새벽부터 곧장 빈터로 나갔다. 하루는 내가 출근하려고 서두르는데 장모님이 웬 아줌마를 데리고 들어왔다.

《이보게, 이 녀자가 뭐라고 하는데 말을 알아들을수 있어야지.》

40대로 보이는 그 녀인은 자기는 주택단지를 관리하는 일군이라고 하면서 장모님이 일군 터전에 뭘 심으려고 하는가고 물었다. 강냉이를 심겠다고 했더니 그건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녀인은 주택단지 주변에 록지를 만들라는 지시에 의해 빈터에 잔디를 입힐 계획이라고 했다. 그 말을 장모님에게 통역해 줬더니 장모님은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손끝이 모지라지게 땅을 일궈놓으면 어두운 밤에 홍두깨 내밀듯이 땅임자가 나타나 제땅이라고 했다더니 바로 그 본새군그래. 내가 일군 땅이지만 어쩌겠나. 록지를 만든다는데. 하긴 거기에 록지라도 만들면 좋지.》

그날 그 녀인은 장모님이 선줄을 끌었기에 빈터가 모습을 바꾸었다고 칭찬하면서 이제 록지가 꾸려지면 록지관리를 장모님에게 맡기려고 하는데 어떠냐고 물어왔다. 장모님은 선선히 대답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빈터에 파란 잔디가 입혀지고 장모님은 완장을 단 록지관리원이 되었다. 잔디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하는 일은 전문 일군이 있어 장모님이 하는 일이란 완장을 끼고 잔디밭 주변을 돌면서 사람들이 잔디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감독하는것이였다. 장모님은 새벽에도 나갔고 밤에도 나갔다. 한것은 새벽이면 조깅하는 사람들이 잔디를 밟을가바 근심되여 나갔고 밤이면 련인들이 잔디밭에 들어갈가바 걱정되여 나갔다. 보수로 장모님은 한달에 2백원을 받았다. 말하자면 로임이였다. 첫로임을 받은 날 장모님은 돈을 안해앞에 내놓았다.

《풋강냉이가 나오면 이 돈으로 사서 옥이를 실컷 먹여라.》

소비돈으로 두고 쓰라고 했지만 장모님은 애초에 땅을 일군 목적이 강냉이를 심자고 한것이니까 그 돈은 외손녀가 즐겨먹는 풋강냉이를 사는데 써야 한다고 고집을 세웠다.

어느날 장모님은 나보고 자그마한 팻말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 ?에 쓰려고 하는가고 물으니 아침과 저녁으로 애완견을 가진 사람들이 잔디밭에 개를 풀어놓는다는것이였다.

《개를 자식처럼 키우는 사람들이 똥은 집에서 뉘우지않고 끌고나와 잔디밭에서 누게 한단 말일세. 잔디밭이 개통천지가 되면 뭐가 되나. 그러니 그 팻말에 개는 들어오지 못한다고 써주게.》

장모님 부탁대로 나는 자그마한 팻말을 만들어 가지고 별생각없이 거기에 개는 들어오지 못한다고 한어로 써넣었다. 그런데 그 팻말이 말썽을 일으킬 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다.

그날 아침 내가 막 출근하려고 준비하는데 노크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보니 주택단지 관리를 책임진 그 녀인과 경찰 한사람이 서있었다. 경찰이 나한테 물었다.

《잔디밭의 팻말은 선생이 쓴겁니까?》

그렇다고 하자 함께 잔디밭으로 가보자고 했다. 무슨 일이 생겼는가고 물으니 좌우간 잔디밭에 가자고 했다. 잔디밭에 이르니 장모님은 누가 팻말을 빼앗아갈가바 두손으로 꼭 그러안고 있었고 그 주변엔 숱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여선 사람들은 저마다 격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장모님, 웬 일이십니까?》

장모님이 손으로 그를 둘러싼 사람들을 가리키며 분한 어조로 말했다.

《글세 이사람들이 다짜고짜로 이 팻말을 뽑아 던지겠다고 하지 않겠나. 뭐라고 고아대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수 있나.》

이때 둘러선 사람들중 한 늙은이가 나를 향해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당신 중국인이 맞나? 무슨 심보로 저런 글을 썼나말이야?》

모여선 사람들이 떠들어댔다.

《지금도 중국인을 그렇게 보다니 천하 용서 못할 놈이야!》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니야. 이건 큰 정치사건이야!》

《법에 넘겨야 해!》

《중국인이면 저런 글을 쓸수 있겠어?》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내가 경찰에게 묻자 경찰은 말없이 장모님이 그러안고 있는 팻말을 가리켰다.

《장모님 그 손을 치우십시오.》

장모님이 손을 치우자 팻말에 쓰인 글이 나타났다. 맙시사!

상해가 제국주의 침략자들의 조계지로 돼 있을 때 홍구공원 문앞에 세운 팻말에 씌여져 있던 글, 중국인들의 분노를 극도로 자아냈던 글, 그리고 지금도 치욕의 력사를 견증해주는 물증으로 남아있는 글, 《중국인과 개는 들어오지 못한다》은 그 글이 내 눈앞에 있다. 이럴수가…

《개는 이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은 글은 내가 쓴 글이지만 앞에 《중국인》이라고 쓴 글은 분명 어느 녀석이 가필한것이였다.

그날 나와 장모님은 파출소로 불리워갔다. 파출소에서 나는 그런 글은 쓰지않았다고 결백을 표시한후 팻말에 《중국인》이란 글자를 가필한 놈이 법의 징벌을 받게 꼭 사출해내야 한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하늘도 무심하지. 어쩌면 사람을 그렇게 무함하는 놈을 그냥 놔둘까. 속시원히 날벼락을 내리시지…》

장모님은 그날로 앓아누웠다. 장모님의 말로는 그 글을 쓴 놈은 분명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들속에 있다고 했다. 애완견이 잔디밭에 들어오지 못하게 장모님이 엄하게 막았기 때문에 앙심을 품은 어떤 자가 보복심리에서 해프닝을 벌렸을 가능성이 많았다. 병석에서 장모님이 한 말이 더욱 나의 가슴을 찔렀다.

《문화혁명때 남을 헐뜯고 무함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더니 지금도 그런 놈들이 있는걸보니 여긴 문화혁명이 채 끝나지 않은 모양이군 그래.》

장모님이 말하는 여기라면 북경이다. 그러고 보면 북경은 장모님앞에 그 이미지를 흐리다못해 로인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겨주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장모님은 록지관리원을 그만두었다. 록지관리원을 그만두니 장모님 입에서 또 갑갑하다는 소리가 나왔고 집이 감옥같다는 말이 가끔씩 튕겨나왔다.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럴즈음 딸애가 장모님에게 일감 하나 맡겼다. 장모님한테 나의 딸애가 이렇게 청을 들었다.

《할머니, 지금 저의 학교에서 다 쓴 전지약을 거둬들이는 활동을 하는데 할머니께서 절 도와주세요.》

《뭘 어떻게 도우라는거냐?》

《우리 함께 전지약 수거함을 만들어가지고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주택단지 출입구와 상점문앞 같은데 가져다 놓자요. 할머닌 운동삼아 하루에 한번씩 돌면서 수거함에 넣은 전지약을 거둬오면돼요.》

《다 쓴 전지약을 거둬들여선 뭣하냐?》

《할머니, 잘 들으세요. 다 쓴 전지약 하나를 아무데나 버리면 큰일나요. 선생님 말씀이 단추만한 전지약 하나를 물에 버리면 60만 리터의 물을 오염시켜 사람들이 마실수 없게 하고요. 또 땅에 버리면 한평방메터의 땅이 풀 한 대도 자랄수 없게 된대요.》

《그래서?》

《환경오염을 조성하는 다 쓴 전지약을 거둬들이자는거얘요. 우리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다 쓴 전지약을 거둬들이는 것은 지구를 살리는 위대한 일이라고 했어요.》

《지구를 살리는 위대한 일? 그런 도리는 난 모른다. 좌우간 네가 하는 일이니 이 할미가 도와주마. 그런데 도와주면 너한테 무슨 좋은 일이 있냐?》

《우리 학교에서 〈환경보호지원군〉을 내왔는데 다 쓴 전지약을 백개 거둬들이면 〈환경보호지원군〉의 소대장이 되고요, 천개를 거둬들이면 중대장이 되고 만개를 거둬들이면 련대장이 돼요. 만약 6만개를 거둬들이면 전 군단장이 돼요.》

《군단장이 뭐냐?》

《장군이지요 뭐.》

《장군?! 좋아. 그럼 우리 옥이가 군단장이 되게 내 도와주마.》

딸애의 말이면 뭐나 다 들어주는 장모님이였다. 그날부터 딸애와 장모님은 함께 전지약 수거함을 만들기 시작했다. 장모님이 상점에서 얻어온 콜라상자 겉면에 색종이를 곱게 붙이면 딸애가 거기에 한어로 《다 쓴 전지약은 저에게 주세요》라고 써넣었다. 전지약 수거함을 열개를 만든후 장모님과 딸애는 그 수거함을 주택단지와 거리가 가까운 백화상점과 호텔, 식당 등 사람들이 많이 나드는 곳에 가져다 놓았다. 딸애가 학교에 가기 때문에 장모님이 매일 돌아다니면서 수거함에 넣은 전지약을 거둬들였다. 휴일날이면 장모님은 딸애와 함께 나갔다. 함께 나가 뭘하는지 궁금하여 한번은 내가 그들 몰래 뒤를 따랐다. 백화점앞에서 딸애는 전지약 수거함을 앞에 놓고 백화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전지약을 마구 버리면 어떻게 해롭다는 점을 열심히 말해주고 있었는데 장모님은 곁에서 부채로 딸애에게 쉴새없이 바람을 부쳐주고 있었다. 가슴 찡하게 안겨오는 광경이였다.

그 뒤로 반달이 지난 어느날 저녁, 장모님과 딸애는 머리를 맞대고 거둬들인 전지약 수자를 헤아렸다. 둘은 마치도 벌어들인 돈을 헤는 사람들처럼 기분이 들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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