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한시기 광무중흥(光武中興, 동한초년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복구된 류수 통치시기를 가리킴)시기로부터 한헌제(漢獻帝) 폐위까지 12대 황제를 거쳤는데 그중 16세 미만으로 즉위한 황제가 9명에 달한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 영정이 6국을 통일한후 확립한 황위 계승제도는 중국 2천여년간의 봉건군주제도 중에서 매개 왕조마다 어린 황제가 즉위하는 현상을 피할 수 없게 했다. 이런 상황은 동한 왕조에서 가장 뚜렷하게 찾아볼 수 있다.
황위 계승제도의 국한성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한후 자신을 "쌓은 덕이 3皇보다 높고 공적은 5帝를 초월한다"고 여겨 양자를 결합해 "황제"라고 자칭했으며 일련의 황제와 관련된 제도를 확립했다. 그 중 황위 계승제도는 가장 중요한 제도 중의 하나로서 진시황은 자신의 후대가 영원히 황위를 계승하기를 바랐다. 비록 진나라는 황제 2대를 거쳐 멸망되었지만 진시황이 확립한 황위 계승제도는 계속 전해져 동한시기에 이르러 완벽하게 실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황위 계승제도는 계승인의 범위가 황제의 후대로 집중되었기에 선택여지가 작고 일단 황제가 요절하면 어린 왕이 즉위하는 확률을 높게 했는데 그중 동한 시기를 가장 전형적인 대표로 뽑을 수 있다. 동한때 광무제, 명제, 헌제를 제외하고 기타 황제는 모두 36살을 넘지 못하고 사망했다. 황제들은 후궁이 많고 결혼을 일찍 했으며 신체발육 미숙 등 원인으로 건강이 영향받았을뿐만 아니라 후대들도 천성적으로 체질이 약하거나 요절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또한 후궁들의 질투와 폐립, 고대의 낙후한 의료기술 등 원인으로 장수하는 황제가 적다보니 황위계승인의 선택범위는 매우 적었다고 할 수 있다. 동한때 황제들이 대부분 요절했기에 황위를 계승하는 황자는 필연적으로 나이가 어렸으며 황제의 후대는 반드시 황위를 계승해야 했기에 동한때의 어린 황제가 많은 상황은 전반 봉건제도에서 해결할 수 없는 고질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