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부 작품 "인기도(人騎圖)"
조맹부는 호주(오늘의 절강성 오흥) 출신으로 자는 자앙, 호는 송설도인인데 조오흥, 조영록, 조문민이라고도 한다.
다섯 살부터 서예를 습득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로부터 줄곧 몇 십년간 매일 새벽에 일어나 세수한 후 서예를 익혔는데 날마다 적어서 몇 천자 많아서 몇 만자를 썼다고 한다. 그는 송(宋)나라 황족 출신이지만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와 그 후 다섯 황제를 섬겼다. 특히 인종의 총애를 받고 한림학사승지, 영록대부가 되었다.
조맹부는 서화시문에 출중한 원나라 제일의 문인으로 그림은 산수, 화조, 죽석, 인마 등을 모두 잘 그렸다. 그는 당나라와 북송 화풍을 본뜬 복고주의를 주장하고 실천하면서 원나라시기 산수화에서의 지도적 역할을 했다. 조맹부는 서예에서 왕희지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왕희지의 글씨를 열심히 배웠다. 그는 여행 중에 우연히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 탁본을 얻어 배를 타고 가던 중 13일 동안 매일 그것을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난정13발"이다.
조맹부는 "난정13발"에서 "서예를 공부하는 데는 두 가지를 배워야 하는데 첫 번째가 운필이요, 두 번째는 자형이다. 운필이 능숙하지 못하면 잘 써도 오히려 좋은 글씨가 못되고 자형이 묘하지 않으면 능숙하게 써도 오히려 어설프다. 글씨를 공부하는 사람은 이를 바로 이해해야 비로소 글씨를 논할 수 있다."고 했다. 조맹부는 여러 서체에 모두 뛰어났으며 그의 서풍은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림에서 "작화추색도권"은 그의 대표작이다. 이 그림은 중국 산수화 역사에서 이정비적인 작품이다. 이 그림은 현장에서 그린 것이 아니고 고향에 돌아온 후 친구 주밀과 함께 북방의 경관을 그려보면서 완성한 작품이다.
주요작품으로는 그림 "강촌어락도", 서예작품 "난정첩십삼발", "여중봉명본척독" 등이 있고 문집에 "송설재문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