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강의 제1도시-의빈(宜賓)
지식경연문제:
*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영화 중 어느 영화가 민남죽해에서 촬영했는가?
* 이장고진은 장강 옆에 위치해 있는가?
오늘은 만리장강의 제1도시로 불리는 의빈시로 여행을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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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들으신 것은 2001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와호장룡>의 한대목이었습니다. 영화 와호장룡을 보신 분들은 아마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할 것입니다. 그중 <죽해에서 싸우는>장면은 더더욱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끝간데 없이 푸른 참대숲이 바다를 이룬 장관속에서 제비처럼 몸이 가볍고 날쌘 여배우와 무예에 정통한 남배우가 서로 쫓고 쫓기면서 참대숲을 가르는 장면은 중국무술의 높은 기예를 남김없이 보여주는 대표장면의 하나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죽해가 바로 사천성 의빈시의 동남쪽에 위치한 촉남죽해입니다. 이곳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림의 하나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면적이 약 120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촉남죽해풍경구내에는 도처에 푸른 참대숲이 우거져 있고 산새들이 자유롭게 날아예며 비단같은 폭포가 아름다운 물보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살결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과 참대숲의 은은한 향이 온몸 깊숙히 스며드는듯합니다. 중국의 시구에 "먹을 음식에 고기가 없더라도 자는 곳만은 참대와 함께 하고 싶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참대는 중국인들의 마음속에서 숭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대는 또 중국문화와 동방문화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촉남죽해의 역사는 이미 천년이 넘으며 중국참대문화의 발상지의 하나입니다. 촉남죽해풍경구 관리국의 백호 국장은 사람들은 죽해에서 동방죽문화의 시적인 정취를 느낄수 있을 뿐만아니라 더더욱 죽해를 마음을 다스리는 천당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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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구에는 3개 특색이 있는데 씻을 세를 써서 "삼세"라고 합니다. 즉 세가지를 씻는다는 말인데 하나는 "세안" 눈을 씻는다는 의미입니다. 전중국 심지어 전세계적으로도 이같은 남죽은 유일할 것이며 전 중국에서 유일하게 참대류자원을 특색으로 한 국가급 풍경명승구입니다. 두번째 특징은 "세페" 즉 페를 씻는다는 의미입니다. 풍경구의 공기속에 함유된 음양이온 입자의 함량은 아주 높기 때문에 사람들의 휴양에 아주 적합합니다. 세번째로 "세위"로 위를 씻습니다. 우리 풍경구는 아주 특색이 있는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죽해에서 나는 참대의 모든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팬더요리"라고 불립니다.>
죽림에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다보면 도처에서 검푸른 장년대나무와 연한 신록의 대나무순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갓 비가 내린 뒤에 가없는 죽림속에서 조용히 귀를 귀울여보면 팍팍 하면서 참대들이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죽림속에서 산책하다보면 산토끼나 들돼지 같은 짐승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운이 좋으면 신선한 투망버섯도 딸수 있습니다. 이런 버섯은 맛이 담백하고 신선하기 때문에 현지의 최상식자재로 꼽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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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남죽해풍경구에는 4만평방미터에 달하는 호수가 있는데 현지인들은 이 호수를 <해중해> 즉 바다속의 바다라 부릅니다. 다시말해서 죽해속에 있는 또 다른 바다라는 의미입니다. 호수물을 가르는 대나무뗏목위에서는 푸른 호수물과 푸른 참대숲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환상적인 장면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간혹가다 무리지어 노니는 백로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현지인 진림씨는 이곳은 영화 <와호장룡>의 명장면인 죽림에서 싸우던 장면을 촬영하던 곳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현지인들에게 있어서 이곳은 또 차를 마시면서 한담하기 딱 알맞춤한 곳이기도 합니다. 진림씨의 말을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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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호장룡'은 해중해 이곳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온 여행객이라면 해중해에 와보지 않는다면 정말 유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죽해청차를 맛볼수 있습니다. 차의 향은 비교적 짙은데 주로 현지에서 나는 죽근수(竹根水)로 빚은 것입니다. 찻잎은 이곳 산에서 나는 찻잎으로 맛이 일품입니다.>
일망무제한 죽해를 본 모든 여행객들은 죽해의 매력에 푹 심취되어 돌아갈 생각마저 잊어버리게 됩니다. 사천 성도에서 온 여행객 풍휘씨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생장면을 보고 마음의 세례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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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남죽해에 와서 이처럼 아름다운 대나무를 보고 정말 감동했습니다. 마치도 인간천당에 온듯한 느낌입니다. 대나무외에도 호수도 있고 미식도 있어 모든 피로가 한번에 가셔지는 것 같아서 정말 행복합니다.>
촉남죽해와 마찬가지로 유명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의빈시 교외에 있는 이장(李庄)입니다. 이장은 장강 남쪽기슭에 위치해 있는데 무려 14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문화동네입니다. 자그마한 이 강변동네는 지금까지도 규모가 대단한 고대건축군을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대건축군은 중국 14세기중엽에서 20세기초기에 이르는 기간 사천남쪽지방 주민들의 특색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행하면서 이곳은 절대로 빠질수 없은 필수코스의 하나입니다.
이장진 서쪽에 있는 장씨사당은 부지면적이 4천평방미터에 달하는데 기원 1840년에 건설되었습니다. 이 사당은 이장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고대건축의 하나입니다. 사당의 주체건물은 사합원식으로 된 목조건축으로 문틀이 아주 특색있습니다. 매개 문틀마다 상등 녹나무(楠木)로 만들었으며 두마리 학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문틀은 모두 쉰개로 따라서 학은 백마리입니다. 매 학마다 그 자태가 다르고 살아있는듯이 생동해 <백학상운(百鶴祥云)>창문이라 불립니다. 가이드 장혜씨의 소개에 따르면 공예가 정교한 백학창문은 그 제조가치가 아주 높으며 당시 공예의 최고수준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장혜씨의 말을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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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은 일반적으로 길상스럽고 장수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장씨의 족보기재에 따르면 이같은 문틀 하나를 조각하려면 인건비만 해도 은 14냥이 수요되었는데, 당시 청나라 정일품관원의 봉록이 한달에 겨우 열닷냥밖에 안되었습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인건비가 조각공예의 정교함을 더욱더 잘 구현해주고 있습니다.>
장혜씨는 지난 세기 40년대 대량의 중국대학과 연구기구가 분분히 이장에 입주하면서 이장은 항일전쟁시기 중국 대후방의 문화중심의 하나로 부상했다고 소개했습니다. 당시 고궁박물관의 수천점의 진귀한 문화재들이 어렵게 이장으로 운반되어 장씨네 사당에 무려 5,6년남짓 보존되었다고 합니다.
풍부한 자연자원과 인문자원외에도 여행객들은 의빈시에서 짙은 민족풍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의빈시 동남쪽에 있는 흥문현(興文縣)에는 세계지질공원-흥문석해가 있습니다. 석해라는 말그대로 이곳에는 기세가 방대하고 웅위롭고 장관인 돌바다가 있는가 하면 종유동과 같은 지질기관도 있습니다. 이곳은 또 사천에서 가장 큰 묘족집거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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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또 사천의 오랜 민족의 하나인 중국어로 버런, 박인(僰人)의 최후 생활지이기도 합니다. 흥문석해풍경구의 가이드 양정씨는 묘족처녀입니다. 그는 박인은 중국 서남의 가장 오래된 소수민족의 하나로 흥문현은 고대 박인들의 황궁소재지이고 최후 멸망된 곳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석해풍경구내에서 박인문화의 유적인 현관(懸棺)을 볼수 있는데 양정씨의 소개를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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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머리위에 있는 현관은 암장장(岩'木庄'葬)이라고 하는 일종의 매장법입니다. 관을 매단 곳이 높을 수록 죽은이의 신분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암장장은 바로 암벽에 구멍을 뚫어 말목을 하고 그 위에 관을 놓아두는 방법을 말합니다. 이 관목은 수백년동안 보존되었지만 하나도 부식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관목의 재료가 녹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기원 16세기때 신비하게 멸종된 고대박인은 후세들에게 많은 수수께끼를 남겨주었습니다. 박인이 과연 무엇때문에 관목을 이처럼 높은 절벽위에 걸어두었을가 하는 것은 아직도 학술계의 쟁점으로 되고 있습니다. 사천대학의 교수이며 민속학자인 모건화씨는 그중 한가지 설법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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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관장은 중국의 장례풍습중에서 가장 특색있는 습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고학계는 이런 설법이 있습니다. 현관을 일반적인 절벽에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물을 가까이 한 절벽에 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죽은이의 영혼이 선조를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박인들은 자신의 선조는 물길을 따라 왔다고 믿었으며 때문에 선조를 따라가려면 물길이 있어야 한다고 인정했습니다.>
오늘은 사천성 의빈시에 있는 촉남죽해 등 곳들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