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의 송영옥 청취자의 편지 만나봤구요, 계속해서 장춘의 조동관 청취자의 편지사연입니다.
편집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장춘의 애청자입니다.
장춘의 애청자협회의 김수영회장 선생님의 많은 관심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저의 문장 두편을 보내니 많은 수정을 거쳐서라도 발표된다면 초학자인 나에게 그것은 더없는 기쁨이고 영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장춘에서 조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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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인심"이라는 글과 "이혼 풍파"라는 방송소설을 보내주셨는데요, 조동관 청취자의 열성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방송 소설은 편폭상 청취자의 벗 프로에 담기에는 좀 무리인 것 같구요, 저희가 자료로 잘 간직하겠습니다. 그럼 이번 순서에 "돈과 인심"이라는 글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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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인심:
김정순네는 여러 해 동안 아이들을 공부시키면서 빠듯하게 살아왔다. 후에 남편과 함께 남보다 한발 앞서 6년동안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와 아이들도 학업을 마치고 가정형편도 눈에 띄이게 좋아졌다.
이제 살만하다 싶었는데 뜻밖에 남편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들딸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까지 해서 큰 걱정은 없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돈을 벌어오고 또 살림집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그에 상응한 돈을 손에 넣다보니 마을에서 중등권 수준에 이르게 됐다. 4,5년전만해도 만원호들이 대단했었는데 지금 김정순의 손에는 수십개의 만원호가 들어앉아 있으니 말그대로 부호였다.
그때만 해도 한국 초청장 하나가 7-8만원까지 치달아 올라갔을 때라 한국은 가고싶지만 마음뿐이지 천문수자의 돈을 해결할 방법이 없는 사람이 흔했다. 그러니 누구의 집에 돈이 있다는 소문만 나면 한번 힘써보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김정순네 친척 몇은 이 돈을 믿고 모든 노무수출은 모두 지원했다. 김정순네는 친척이 많기로 친정에 6형제, 친정 큰집에 5형제, 시집에 5형제 그리고 사돈의 8촌까지 합하면 30집도 더 된다. 그 친척들이 다 김정순의 돈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제일 처음 찾아온 사람은 작은 시누이의 작은 아들이었다. 그는 식당을 해서 돈 4만원을 장만한 착한 젊은이었다. 그런데 초청장이 7만원이어서 수속비용까지 4만원이 모자란다며 운을 뗐다.
"4만원만 꾸어주세요. 3푼리자를 계산해 드리죠. 한국에 가면 꼭 일년안으로 갚겠습니다."
그에 김정순은 "그래 좋다. 3푼리자다~"라고 말을 건네며 문서를 작성하고 은행에 가서 돈 4만원을 인출해 주었다.
그 당시 초청장을 빌미로 사기치는 사람이 많아 사기를 당하면 돈을 꾸어준 사람까지 함께 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큰 모험이 따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만원, 2만원씩 여러 친척이 와서 돈을 빌려갔다. 그런데 은행에 출근하는 여동생이 찾아와서 언니를 나무람했다.
"아니, 언니는 돈을 그렇게 쉽게 꿔줘?"
"꾸어달라고 그렇게 사정하는데 어떻게 안주겠니?"
"그럼 사정한다고 갚을 능력도 보지 않고 빌려줘? 은행에서도 갚을 능력을 보고 또 보증인까지 있어야 하는데~ 돈이란 예로부터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고 하잖아…."
"아이구, 걔들이 한가방씩 물건을 사갖고 오는데 어떻게 안꿔주겠니?"
그 다음으로 찾아온 사람은 친정 큰집의 둘째 매부였다. 그는 동생네 논까지 3쌍을 부치고 새 벽돌집도 지은 농촌의 "만원호"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바람이 이런 사람까지 휩쓸었는지 모를일이다. 돈 3만원을 꾸어달라고 한다. 김정순은 두말없이 돈 3만원을 해결해 주었다. 역시 3푼이자였다. 헌데 그 사람의 국장 처남이 소개해서 한 일인데 결국 브로크한테 속아 넘어가서 돈 3만원을 날리고 말았단다. 그러니 책상머리에 앉은 간부도 속아 넘어갔으니 그의 일가 친척이 두루두루해서 약 30만원을 날려보냈다고 한다. 나중에 이 매부는 온갖 방법을 다해 한국땅을 무사히 밟고 5년동안 일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다음으로 찾아온 사람은 큰 시누이의 둘째 사위다. 그런데 이 사람은 역시 사기를 당해 돈 7만원을 날린 사람이다. 그러니 빚성화에 낯을 못들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런데 후에 한국에 있는 친척을 찾아 초청장이 도착했으나 돈 만원도 대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김정순은 두말없이 시원스레 돈을 빌려주었다. 그가 한국에 가서 첫번째로 전화한 사람은 김정순이었다. 이외에도 김정순은 또 다른 사기를 당했던 사람에게 두번씩이나 돈을 꾸어준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한번 속았으면 됐지 또 돈을 꾸어주는가?"라고 묻자 "그렇지 않으면 일어나지 못할 것이고 꾸어준 돈도 받을 길 없지 않냐, 그러니 그 사람을 끝까지 살려야지."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김정순한테서 만원 이상 꾸어간 사람만 해도 12명이나 된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순은 돈을 꾸어줄 때는 3푼이자로 약속하고 주었지만 받을 때는 모두 1푼리자로 받았다. 그때 은행의 대출도 1푼리자가 넘을 때였다. 그런데 3푼 이자라고 한 것은 그래야 이자가 많아서 빨리 갚을 것이고 돈이 돈다고 해서 돈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돈을 꾸어주는 사람들 가운데는 3푼이자로 돈을 꾸어주었다가 기한이 만기되기 전에 돈을 갚으려 해도 만기되면 그때에 돈을 가져오라고 되돌려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왜냐, 빨리 갚으면 이자가 줄어드니까…
하지만 김정순은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빨리 갚는 것을 환영했고 또 여러 해만에 갚는 사람은 3년 이자만 계산했던 것이다.
김정순은 한번도 빚재촉을 하지 않았다. 물론 김정순이 첫시작부터 1푼이자를 생각한 것은 아니다. 신문, 잡지를 보면서 국내외의 자선사업에 대한 글을 읽고 계시와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그때 돈을 빌려간 사람들은 모두 갚았고 또 다 부자가 되었단다. 그들은 설이나 명절때마다 찾아와서 인사를 했고 또 멀리 한국에 있어도 꼭꼭 전화를 걸어왔다.
2년전에 김정순의 환갑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음식을 도맡은 사람, 큰상을 맡은 사람, 악대를 맡은 사람, 돈이 수요되는대로 그때 당시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모두 도맡아 나섰다.
이에 또 다시 감동을 받은 김정순은 향후 자선사업에 자신의 여행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해부터는 해마다 2만원씩 곤난학생기금회에 기증하고 있다. 김정순은 지금까지도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일-바로 남을 돕는 일-바쁘고 의의있는 일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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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中送炭-눈 오는 날 숯을 보내 따뜻하게 해준다는 뜻인데요, 살다보면 누구나 급할 때가 있고 또 급히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분들이 그처럼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김정순할머니가 바로 많은 분들에게 그런 고마운 분중의 한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씩 보게 되면 도움을 받을 그 당시에는 그처럼 고맙기 그지없던 마음이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오히려 흉을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서 막바지에 그때 당시 돈을 빌려간 사람들도 나중에 모두 돈을 갚고 부자가 되고 또 김정순 할머니를 계속 고맙게 생각하시고 서로서로 챙겨가면서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훈훈해 납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나 초심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녜, 조동관 청취자 덕분에 생동한 실례를 접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외에도 연변의 이철수, 김화자, 주룡린, 주룡준 청취자, 장춘의 박영희, 윤련자, 김경복, 김선희, 송영옥, 송철봉, 박인숙, 리종광, 김애락, 정순애 청취자 등 많은 분들이 10월의 퀴즈의 답안을 보내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열성적인 참여에 재삼 감사드립니다.
여: 녜, 지금까지 편지 사연 소개해 드렸습니다. 계속해서 퀴즈한마당 코너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