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연변의 황순금 청취잡니다.
시어머님께 효도하는 한족 며느리
연길시에 거주하고 있는 한족 여성 장모씨와 조선족 남성 김모씨는 민족은 다르지만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고 어머님께 효도하면서 민족단결의 꽃을 피워가고 있습니다.
90년대에 그들은 모 음식점에서 일하면서 서로 알게 됐습니다. 첫눈에 장모씨의 미모에 반해버린 김모씨는 깔끔하면서도 잽싼 그의 일솜씨에 완전히 넘어갔다고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도우면서 1년 남짓이 사귀어오다가 마침내 오붓한 가정을 꾸리게 됐습니다.
장모씨는 사남매 중 막내인 김모씨에게 시집와 일심으로 남편을 챙기고 연로하신 시어머니를 정성을 다해 모셨습니다. 살림 집 한칸을 내어 이발점을 오픈하고 가장 저렴한 가격에 최고의 서비스로 손님을 맞이하면서 성심성의로 일해왔습니다.
시어머니는 중년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후 자식들을 공부시키면서 갖은 고생을 하시면서 몸이 극도로 지쳐 지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여 매일 약으로 끼니를 채우듯 했습니다. 2011년에는 넘어져 팔이 골절되면서 1년 남짓이 모진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날마다 10여시간의 고된 노동으로 몸은 지칠대로 지쳤어도 장모씨는 항상 시어머니의 건강회복에 유리한 음식들을 푸짐히 준비해 시어머니를 대접했습니다.
시형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생활을 자립하지 못하자 시형의 수발까지 하면서 "저를 그저 동생으로 생각하면 많이 편할 것입니다"늘 이렇게 말하며 내색없이 병수발을 해왔습니다. 친형제면 이보다 더 하겠습니까.
시어머니에 시형의 병수발까지 지치지 않는가는 주위분들의 말에 장모씨는 "저의 시어머니는 중년에 남편을 잃고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한 시형을 매일과 같이 등에 업고 학교를 오가면서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습니다. 제 자식을 곱게 키우면서 어머님의 노고를 잘 알 것 같습니다. 우리도 조만간 늙게 될 것입니다. 시어머님이 존경스럽고 불쌍합니다."
장모씨의 시어머니는 늘 "민족이 다른게 대수입니까, 저들이 끔찍하게 잘 사니 만족이구요, 이 늙은이를 나무람하지 않고 이 같이 잘 챙겨주고 하니 나 같이 다복한 사람도 드물것입니다. 만족하고 행복합니다."라며 한족 며느리 자랑에 여념이 없습니다.
연변애청자 황순금 드림.
2014년 2월 23일
***
다민족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인데요, 음악에 국경이 없듯이 사랑에도 국경 또는 민족차별이 없다고 봅니다. 서로 이 사람이 맞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장모씨와 김모씨 항상 알콩달콩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사연 보내주신 황순금 청취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