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벽운사 정상에서 본 푸름)

벽운사 정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울울창창한 푸름만이 한 눈에 가득 안겨들었다. 백송이 산 마루를 덮고 바람에 푸른 소나무의 파도를 형성하는데 골격인 흰 가지는 푸른 바다를 헤어다니는 은색의 뱀을 방불케 하면서 그들의 생명력을 과시하는 듯 했다. 겨울의 흰 눈도, 가을의 붉은 단풍도 어찌 눈앞의 이 생명력으로 넘치는 푸름에 비할손가! 이 때는 언어도, 사색도 없이 있다면 산의 숨소리와 바람의 소곤거림과 수풀의 그림자와 푸른 인간세상뿐이었다! 서북쪽의 향로봉(香爐峰)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정상에 자리잡은 붉고 노란 색을 가진 절의 윤곽이 뚜렷이 보였다. 이 때에야 "로산의 참 모습을 모르는 것은 로산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사실 모든 사람의 생활속에서 어느 사물이나 목표를 멀리 떠나야 그의 변화와 참 모습을 볼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향산을 보려면 늦 가을이 좋다고들 한다. 중국인들은 지나치게 붉은 색을 좋아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은 푸른색이고 붉은 색은 짧은 한 순간의 색에 불과하다. 푸름이야말로 생명의 원색이고 생명의 원천이고 생명의 영원함을 보여주는 색갈이다. 나는 여름에 향산에 오른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온 산을 물들인 붉은 단풍은 없지만 자연과 인간의 생명의 노래를 들었으니 이 향산걸음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