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풍행(風行)

소동파는 이런 시를 남겼다. "호연(浩然)의 기 한점은 천리를 부는 바람과 같도다". 자죽림(紫竹林)을 배회하든, 단고도두(短姑道頭)를 걷든, 조양각(朝陽閣)의 난간에 의지하든 시원한 여름의 바람이 불어와 부드럽게 귓가를 간지럽혀 선경에 이른듯한 감을 준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올까? 머리 들어 보니 창망한 바다위에는 흰 파도만이 넘실거린다. 강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가진 바람은 해천불국(海天佛國) 사계절 변화의 소식을 싣고 온다. 상왕봉(象王峰)앞에서 바람은 나뭇잎을 흔들며 중생의 따뜻한 정을 전하는 듯 하고, 관음도(觀音渡)옆에서 바람은 암석을 세차게 두드리며 격정을 토하는 듯 하고, 불정산(佛頂山)에서 바람은 혼자인듯 자유자재로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가며 우주를 담은듯한 넓은 흉금을 보여주는 듯 했다.

바람은 넓은 흉금과 비어있는 마음을 가진다. 한 스님은 이런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대나무속을 흐른 물이 차거웁고, 꽃속을 지나온 바람이 향기롭다". 물이 찬 것은 찬 대나무속을 흘러지났기 때문이고 바람이 향기로운 것은 꽃속을 경유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다른 인연때문에 그로부터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 다른 인생과 그로 무어진 다양한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리라.

바람은 불어온 끝도 없고 불어갈 끝도 없다. 과거의 이별과 다양한 인생은 어느새 바람처럼 사라지고, 과거의 애절함과 다정함도 순식간에 긴 세월속에 숨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