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11-05 15:50:05 | cri |
그럼 계속해서 연변의 손화섭 청취자가 보내주신 사연 만나보겠습니다.
남: 아들애의 래일의 태양을 위해
길림성 룡정시 룡정실험소학교에는 장애인 아들을 위해 21년간 간고분투하면서 아들을 떳떳한 대학생으로 키워내고 이와 동시에 교육사업에도 최선을 다해온 훌륭한 어머니이자 훌륭한 교사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주옥란(朱玉兰)선생입니다.
21년전의 하루 주옥란은 체중이 4킬로이상이나 되는 남자아이를 출산했는데 득남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의료 사고로 아이의 소뇌(小脑)에 손상이 발생해 뇌성마비 질환이 왔다는 것입니다. 한 연세가 많은 산부인과 의사는 그의 남편에게 가만히 말하기를 "당신들 부부는 아직 젊기에 이후에 다시 아이를 낳을수 있으니, 이 아이가 커도 지력상수가 령으로 될 확율이 높습니다. 그러니 포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하지만 주옥란 선생은 금방 태어난 아이를 놓고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20여일을 거치면서 주옥란씨는 기적이 일어나 아이가 괜찮길 바라며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8개월간의 반복 적인 검사를 했지만 번마다 의사들은 "장래에 애가 잘 자란다고 해도 지력상수가 영일 가능성이 50%이며 걸을 수 조차 없을 수 있다"라는 똑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게다가 현유의 의학술로는 치료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옥란씨는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습니다. 주옥란씨는 온종일 눈물로 얼굴을 씻으며 아이를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지만 이 병을 알기 위해 관련 국내외 서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중추신경(中枢神经)연습부터 시작해 매일 같은 시간대에 아이에게 반복해 같은 그림책을 읽어주고 읽게 했으며 집안 곳곳마다 자신이 쓴 네 모난 한자를 붙여 매일 아이가 읽으면서 알도록 했습니다. 또 아이를 안고 계단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숫자 세기를 알려주었습니다. 아이의 반응이 어떠하든 주옥란 씨는 아이에 대한 교육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5살이 되어도 길을 걷지 못했습니다. 말도 떠듬떠듬하고 똑똑하지 못했으며 자기절로 아무일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학습 열정은 매우 높았습니다.
어느 하루 이들은 하북성 석가장에 한 중의가 이런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때로부터 의사를 찾아 병을 치료하는 노정에 올랐습니다.
이 과정에 신심수립이 가장 관건이었습니다.
부부가 분공하여 남편이 나가서 일하고 주옥란이 집에서 아이 병치료에 전념했습니다. 아들애는 어릴때부터 다른 사람이 학교에가 공부하는 것을 매우 부러워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가 병을 치료하는 동력이 됐습니다. 학교에 다니려면 고심한 훈련이 있어야 했습니다. 아들애도 어느날엔가 다른 아이들처럼 뛰놀고 싶어했습니다. 주옥란은 한편으로 아이를 치료하고 한편으로 안마법을 자습했습니다. 아이가 13살나던 해 일당 취침 시간이 5시간 밖에 안됐는데 매일 아침 4시반에 깨워서 한쪽 다리로 꿇어앉았다 일어나기를 500번 하게 했습니다. 초기에는 아이가 너무도 아파해서 마음이 갈기갈기 찟기는 것 같아 주옥란씨는 한편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한편으로 계속 아이를 이끌어 무슨 일이 있어도 임무완성하게 했습니다.
가장 사람을 애태우는 것은 이런 병은 호전되는가싶다가도 상태가 심각해져 늘 사람을 절망시켰는데 매일 절망속에서 희망과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매일 식사 후의 반시간을 이용하여 신화자전을 가지고 아이에게 말하기, 옷입기, 밥먹기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저녁에는 잠자기전에 꼭 안마를 해주었습니다. 아이는 매일 11시반에 잠을 잣는데 주옥란씨는 분초의 시간을 다투어 회복훈련을 시켰습니다. 소뇌(小脑)에 상처를 입은 아이의 모든 운동기능은 어른에 의거해 단련할 수 밖에 없는데 가장 어려운 것은 길걷는 자세를 바로 잡는 것이었습니다.
춘하추동, 명절과 휴식일을 막론하고 모두 어려웠는데 아이가 조금만 조심하지 않으면 상하기 쉬웠습니다. 어른들이 5분이면 걸을 길을 아이는 한시간을 걸어야 했고 겨울에 뼈를 에이는 추위에 아이의 얼굴은 얼어서 빨갛게 상기되어도 이를 악물고 견지하게 했습니다.
주옥란씨는 학교에서 늘 수업을 하고 학교 일에 영향주지 않기 위해 길가에서 그리고 밥짓고 그릇씨는 시간에도 비과(备课)를 했습니다.
습관이 승패를 결정합니다.
아이의 관찰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매번 슈퍼마켓을 지날때 마다 아이가 무엇을 보았는가고 시험쳐보았으며 말을 못하면 다시 돌아가서 보도록 했으며 장기적인 배양은 아이에게 습관을 양성해주었으며 길옆에 써붙힌 글자, 광고패의 글자등을 모두 읽게 하여 알도록 하여 무형중에 매우 강한 자습능력을 키워주었습니다. 시계를 보거나 달력에 있는 음력과 양력등을 모두 어른들 의 말가운데서 배우게 했습니다. 어떤때는 주동적으로 알려고 했 으며 학교에 다니기전에도 벌써 간단한 가감승제법을 계산할줄 알았으며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됐습니다. 어느 병원으로 가든지 아이를 데리고 당지의 도서관을 알게 하여 데리고 가서 는 책을 사는데 급급해 하지 않고 여러번가서는 자기가 좋아하 는 책을 찾아내게 했습니다.
아이가 9살 때 결국 소원대로 룡정실험소학교에 입학하여 전인순(全仁顺)선생의 학생이 되였는데 자애로운 어머니같은 분인 전인순 선생은 마음으로 알아듣기 힘들고 말하기 어려운 아이를 받아들여 노심초사해주었습니다. 전인순 선생의 막대한 이해와 관심으로 아이는 학교가는 기회를 매우 아끼였으며 매일 다른 아이들은 5분이면 완수할 숙제를 이 아이는 매일 4, 5시간씩 써야만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소학교 6학년일 때 룡정시 적십자회와 룡정실 험소학교 지도부와 사생들의 도움으로 한국에 가서 수술을 받고 결과적으로 자기절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수술하는기간 아이는 매우 견강했으며 자기절로 집에서 자습하고 졸업시험준비를 견지하여 시험장에서 시험에 참가했습니다. 그해 그의 소학교 졸업시험성적은 전교 3등에 표창받은 10명 학생 중 유일한 남학생이었습니다. 그가 초중에서 학습하는 기간 그의 성적은 줄곧 전교 3위권에 들었고 이로 인해 연변1중에 추천 입학하게 됐습니다.(保送到延边一中) 고중 기간의 학습성적도 줄곧 우수했습니다. 그리고 최종 554점의 성적으로 길림재정 경제대학 회계학부(会计系)에 입학했습니다.
아이는 곤난에 대해 견강하게 배워냈으며 의력을 배양하고 자립(自立), 자리(自理)를 배워 알게 되였으며 은혜를 감사할 줄 알고 생활을 열애하며 타인을 리해하고 부모를 관심하게 됐습니다. 이들 부부는 아이가 장래에 잘 생활할 수 있겠다는 것을 신심있게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고난의 발걸음으로 결국 대학교문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바로 어릴때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생활은 우리에게 오직 생활에 대해 희망을 품고 견정불의하게 노력하기만 하면 날개가 부러져도 천사마냥 날아갈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매개 부모들은 능히 아이들을 위해 내일의 태양으로 받들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기에 주옥란씨는 지난번에 소집된 전주 표창대회에서 주 "5호가정 자녀교육에 훌륭한 부모"로 선정돼 표창받았습니다.
손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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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이 편지를 접하고 보니 같은 부모로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네요. 주옥란선생의 끈질긴 노력과 의지력에 탄복이 갑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뜻에 잘 따라주어 장애를 딛고 굳건한 대학생으로 자라난 아들의 모습도 참 대견스럽습니다. 이 가정에 항상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하면서 다음 사연 만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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