权香花
2020-10-30 16:24:45 출처:cri
편집:权香花

2020년 10월 29일 방송듣기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10월의 다섯 번째 목요일의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박은옥(M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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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월

MC:

10월 29일은 양력 한해의 302번째 날로, 올해 한해가 아직 63일 남았습니다.

1993년의 이날 삼협공정은 정부로부터 실시 비준을 받았습니다.

삼협공정은 전칭 장강 삼협수리중주공정이라고 합니다. 삼협공정은 중국 장강의 중상류 구간에 건설한 대형 수리공정 프로젝트입니다. 공정은 중국 중경시(重慶市)부터 호북성(湖北省) 의창시(宜昌市)에 이르는 지류에 분포하며 큰 땜은 의창시 삼두평(三斗坪)에 위치합니다.

삼협공정은 세계적으로 규모가 제일 큰 수력발전소이며 중국 사상 최대형의 공정 프로젝트입니다.

이에 하루를 앞선 10월 28일은 ‘남성 건강의 날’입니다.

2000년부터 중국 국가인구계획생육위원회 판공청은 통지문을 발표하고 이해 남성 건강의 날 활동 주제를 확정했으며 남성 건강의 날 홍보활동을 배치했습니다. 2009년 10월 28일은 다섯 번째 ‘전국 남성 건강의 날’이며 ‘남성의 건강을 관심하고 생활 수준을 높이는 것’이 이번 활동의 주제로 되었습니다.

10월 30일은 중국의 유명한 ‘희망공정’이 설립된 날입니다.

1989년 10월 30일, 중국 공청단 중앙위원회와 중국청소년 발전기금회는 이날 진학하지 못한 빈곤지역의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공익사업을 발기했습니다. 이 사업은 희망 초등학교를 세우고 진학하지 못한 빈곤지역 어린이들이 학교에 복귀할 수 있게 하는데 취지를 두었습니다. 희망공정은 농촌의 학교조건을 개선하며 농촌의 학교설립을 지원하여 진학하지 못한 많은 어린이들의 운명을 바꿨으며 전 사회의 교육의식을 불러일으키고 기초교육의 발전을 촉진했습니다.

(고정 간주 6")

2. 지명과 연변

계속하여 ‘지명으로 읽는 이민사’, ‘연변 100년 역사의 비밀이 풀린다’ 이런 제목으로 지명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장백산 기슭의 길림성 연변 안도의 지명 이야기입니다.

밝은 달이 떠오른 골짜기

  명월구(明月溝)는 밝은 달의 골짜기라는 의미이다. 실은 달보다 바위투성이의 돌산이 더 유명했다고 한다. 시내 중심에 돌산이 웅크리고 있는데 이 때문에 시초에는 ‘옹성라자(甕聲砬子)’라고 불렸던 것. 라자砬子는 만족 말로 ‘바위벼랑’이라는 의미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바위벼랑이 왜서 항아리와 같은 소리를 냈을까?… 옹성라자의 기슭에 섰지만 의문은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이거 길쭉한 모양이 항아리를 닮은 건 아니구먼.”

  일설에 옹성라자는 못을 이웃한 바위벼랑에 물 흐르는 소리가 부딪쳐 메아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또 옛날 바위벼랑 위에는 늘 꿩이 무리를 지어 노닐었다고 한다. 이때 꿩이 우짖는 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로 울렸는데, 그게 마치 항아리에서 나오는 소리 같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와중에 누군가 바위벼랑에 올라 소리를 쳤는데 그 메아리가 마치 항아리에서 나오는 소리 같아서 생긴 지명이라는 설도 있었다.

  옹성라자는 거리를 달리는 차들의 소음으로 시끌벅적했다. 우레가 울어도 더는 메아리가 들릴 것 같지 않았다.

  기실 옹성라자의 옛 흔적도 꿩의 메아리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이슥하다. 옹성라자는 발해국 시기 노주(盧州)에 속했던 곳이다. 천 년 전부터 인간은 이 고장에서 군락을 이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청나라 때 봉금의 땅으로 되었다가 봉금령이 폐지되면서 인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때 남강(南崗,지금의 연길) 개간국 숭례사(崇禮社)에 속했다.

  1894년, 간민들이 차츰 군락을 이뤘으며 1912년 연길현 제3구 옹성라자촌으로 되어 경찰서를 설립했다.

  명월구는 1933년 돈화-도문 철도가 이곳을 지나면서 비로소 생긴 이름이다. 그때 ‘명월구 기차역’을 세웠고 이에 따라 명월구라는 이름이 옹성라자를 대체했던 것이다.

  8.15 광복 전까지 명월구는 선후하여 명월촌(明月村), 명월시(明月市), 명월구(明月區)로 개명을 거듭한다. 1949년 7월, 안도현 정부가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비로소 안도현 제일의 명소로 밝은 달처럼 떠오르게 된다. 안도라고 하면 곧바로 명월구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되었던 것이다.

  안도현은 선통(宣統) 원년(1909)에 설치되었다. 청나라 정부는 백두산 일대의 관할지역이 넓어서 미처 손길이 닿지 못하고 또 국경사단이 자주 일어나자 백두산 동쪽의 경내에 현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때 안도는 변강을 안정하고 두만강 강계를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안도’라고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안도에 현은 비록 늦게 설치되었지만 역사는 아주 오래다. 석기시대부터 청동시대, 철기시대에 이르는 유적은 곳곳에 널려있다. 인간은 수천 년 전부터 안도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도인(安圖人)’은 지금까지 연변에서 발견된 최초의 인류이다. 1963년 명월진 동쪽의 동굴을 발굴하면서 상고시대의 인간의 족적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안도인’은 호모 사피엔스 단계에 속하는 고인류였다.

  다문 잇발 화석 하나만 발견된 ‘안도인’에게 미스터리는 너무도 많다.

  그러나 훗날 안도 지역에서 살고 있던 고대 종족은 분명히 숙신(肅慎)이었다고 지방문헌은 일제히 기록하고 있다. 와중에 안도가 만족의 발상지라고 하는 설법은 밤하늘의 달처럼 유난히 부각되고 있었다.

  실제 만족 시조설화에 따르면 그들의 기원은 백두산 기슭에서 시작된다.

  옛날 선녀가 백두산 기슭의 호수 부르후리(布爾湖里)에서 까치가 떨어뜨린 주과를 먹고 잉태했으며, 나중에 태어난 아기가 성장한 후 부족의 추장으로 되어 두만강 기슭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만주滿州’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도 안도 지역에는 백두산 천지기슭의 제사대를 비롯하여 여진인의 유적지가 적지 않게 남아있다. 그런 연장선에서 안도는 만족 말 지명이며 ‘산의 양지쪽’이라는 의미라고 해석하는 주장이 있다. 안도가 만족의 발상지이니 그렇게 만족 말로 해석할 법한다.

  북쪽의 고속도로를 빠져 명월구로 진입하면서 만났던 바위벼랑의 산에도 만족 이름이 달려 있었다. 산은 ‘대석라자(大石砬子)’라는 이름으로 전한다. 기실 산 모양새를 본 딴 우리말 이름도 있는데, ‘칼 바위산’이라고 부른다.

  이러니저러니 명월구라는 새 이름은 벌써 내력이 불명한 지명으로 되고 있었다.

  “뭔지 모릅니다. 그런 걸 토박이 노인들이라면 알까요?” 현성 조선족학교에서 만났던 심 씨 성의 교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가 교장이라고 애당초 뭔가 기대한 자체가 잘못 된 것 같았다. 거기에 비하면 명월구의 이름을 뜻풀이를 해서 밝은 달이 떠오르는 골짜기가 아닌가 하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학자가 아닐지 한다. 일설에 이 고장은 보름달이 동쪽에서 두둥실 떠오를 때 골짜기가 마치 대낮처럼 밝다고 해서 ‘명월구’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사실 명월구라는 동명의 지명은 동북쪽의 다른 현성인 왕청에도 하나 있다. 왕청 현성의 동쪽에 위치한 마을인데, 밤이면 땅위의 사금이 하늘 위의 달과 서로 어울려 빛을 뿌린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명월구는 하늘에 두둥실 떠오르는 달과 그 무슨 연고가 있는 게 확실한 것 같다.

  현성 동쪽의 토월산(吐月山)은 바로 달을 토한다는 의미이다. 시내에서 보면 달은 항상 산 뒤에서 불끈 솟아오르는데 마치 산이 달을 토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남쪽의 산은 달을 맞이한다는 의미의 영월산(迎月山)이라고 불린다.

  일행은 일부러 토월산에 허위허위 톺아 올랐다. 눈이 녹으면서 안개가 산허리를 둘둘 감싸고 있었다. 산 아래의 풍경은 마치 백색의 베일에 가린 듯 했다. 산꼭대기에서 만난 현지의 등산객도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사방에서 흘러오는 강들이 산 아래에서 한데 모이지요. 맑은 날 굽어보면 정말 그림 같은데요.”

  북쪽으로는 장흥하(長興河), 서쪽으로는 양병하(亮兵河), 남쪽으로는 복흥하(福興河)가 흘러 와서 토월산 기슭에서 부르하통하와 한데 모인다고 한다. 장흥하는 장흥향을  흘러 지난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며, 양병하는 부르하통하의 원줄기로서 양병대를 흘러 지난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복흥하는 원래 도목구하(倒木溝)河라고 불리다가 도목구를 복흥이라고 개명하면서 불리는 이름이다. 장흥은 이름 그대로 오랜 흥성을 바란다는 의미이며 양병대(亮兵臺)는 청나라 말 양곡을 말리던 언덕 양미대(晾米臺)가 와전되면서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어쩌면 별이 달을 에워싸듯 강들도 토월산을 바라고 달려오는 듯하다. 달을 토하는 산은 하늘 아래에 산과 물이 모이는 기이한 정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MC:

네, 연변의 지명과 이 지명에 깃든 이야기이었습니다. 노래 한곡 듣고 다음 코너로 이어가겠습니다.

(노래 한곡)

[청취자 내신 고정간주]

갑: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개해드리는 ‘편지가 왔어요’ 시간입니다.

오늘은 먼저 길림성 연길시 박철원 청취자의 편지 사연을 만나 보겠습니다.

“2020년10월25일은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작전 70돐 기념일입니다.

이날 연길노인뢰봉반에서는 5명의 현역군인대표들과 함께 <로전사의 집>에서 일찍 ‘항미원조 보가위국’ 전역에 참가하였던 6명의 노전사들을 모시고 기념행사를 가졌습니다.

새로 꾸며진 연길 <노전사의 집>에는 항일구국, 조국해방, 항미원조, 나라건설, 노전사들의 만년생활 등 노전사들의 공적과 모습이 전시되었습니다.

행사 시작으로 전체가 <중국인민지원군군가>와 <중국인민 해방군군가>를 높이 합창하였습니다.

가슴에 수두룩한 메달을 단 할아버지들이 조선 상감령전투, 고사포로 적군의 비행기를 격추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피어린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소감발표회에서 현역군인대표는 노일대전사들의 불굴의 혁명정신에 숭고한 경의를 올리며 조국변강의 안녕에 충직하며 세계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국제주의전사가 되겠다고 다졌습니다.

항일투사 김명주의 딸 김진옥은 발언에서 부모들의 유지를 잘 받들어 중국꿈 실현에 자신을 잘 이바지하겠다고 피력했으며 노인뢰봉 김희숙 여사는 삼촌과 오빠가 모두 조선전쟁에서 희생된 열사로 오늘 군복을 입은 항미원조 노전사들과 한자리를 하니 친인들을 만난 것 같다며 뜨거운 눈물을 금치 못했습니다. 리련옥 회원은 눈물을 머금으며 렬사들을 추모하는 <그대들은 생각해 보았는가>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로인뢰봉들은 <고향의 봄>, <잊을 수 없는 그날> 등 노래를 합창했으며 젊은 군인들도 우렁찬 노래를 선물했습니다.“

네, 10월 25일은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 작전 7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박철원 청취자가 전한 이야기처럼 이날을 기리기 위해 중국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조직되었습니다.

이날 출판물 발행 기념식도 있었습니다. 중앙라디오TV총국은 최근 ‘영웅의 아들딸’, “평화를 위하여‘, ”항미원조 보가위국’ 등 대형 다큐멘터리와 ‘영웅의 아들딸“을 주제로 삼은 ’중국인민군지원군 항미원조 출국작전 70주년 기념 문예야회‘를 출범했습니다.

10월 25일 이날은 또 음력 9월 9일로 중양절입니다.

'역경‘에서 6은 음수이고, 9는 양수입니다. 9월 9일은 양수가 겹친 날이라는 뜻으로 중양절이라고 합니다. 이날 남자들은 시를 짓고 각 가정에서는 국화전을 만들어 먹고 놀았다고 전합니다. 아홉 구(九)는 또 오랠 구(久)와 동음인데, 이에 따라 얼마 전부터 노인절로 되고 있습니다.

길림성 장춘시의 김수금 청취지는 이날의 중양절 감회를 글로 적어 오셨는데요, 그 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싸늘한 가을바람에 울긋불긋 곱게 물들었던 단풍나무 잎들은 하늘에서 팔랑팔랑 춤추며 땅위에 사뿐사뿐 날아 내립니다. 오늘은 음력 9월 9일 중화민족의 전통명절인 중양절입니다.

 아침 여덟시가 되자 관광으로 외출했던 아들며느리가 위쳇으로 명절의 인사를 보내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명절을 축하합니다. 기뻐하세요, 오늘은 또 노인절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건강 장수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명절날 아들며느리의 효도의 마음에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우리 늙은 양주는 기쁜 심정으로 아침식사를 마쳤습니다. 밥술을 놓은 후 위쳇을 열고 보니 중양절 인사와 축복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노인 친구와 친척, 손자와 손녀 그리고 제자들의 인사와 축복이었습니다. 점심에는 또 딸애가 생신한 과일과 맛있는 과자를 가득 사들고 명절 인사를 왔습니다. "축하합니다!: "건강하세요!" "오래오래 앉으세요!" 정말 회갑을 다시 쇠듯 흥성했고 기뻤습니다.

  옛날 중양절이면 높은 곳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복'을 기도했다고 합니다. 가을철이라서 국화꽃을 감상했고 또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중양절은 춘추전국 시대에 형성되었다고 전합니다.

  1989년, 중국은 해마다 음력 9월 9일을 ‘경로절’로 정했으며 이날이면 전국 각 지역에서 풍부하고 다채로운 활동을 벌였습니다. 2013년 7월 1일 실시된 '노인의 권익 보장법'은 해마다 음력 9월 9일을 전국 '노인절'로 규정했습니다. 이해 중양절도 중국 첫 법정 노인절로 되었습니다. 2006년 5월 20일, 국무원은 중양절을 국가급 무형 문화재로 등재했습니다.

  저는 이번 중양절을 쇠면서 감명 깊게 느꼈습니다. 가정으로부터 사회, 나라에 이르기까지 노인을 존경하고 노인을 봉양하며 노인을 돕는 것은 중화민족의 전통적 미덕입니다.

  저와 우리 가족은 기쁨 속에서 중양절, 노인절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네, 음력 9월 9일, 양력 10월 25일은 중국 전통명절인 '중양절'이고 중국 전통의 경로의 명절입니다. 이 경사스럽고 즐거운 명절과 더불어 모든 노인들이 즐겁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노래 한곡]

[퀴즈 한마당 코너]

MC: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이달에는 지명과 관련한 퀴즈를 내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변 용정의 명동마을은 학교로 유명세를 탔던 마을인데요, 이 ‘명동마을’은 무슨 뜻으로 지어진 이름일까요.

  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명동마을’은‘ 무슨 뜻으로 지어진 이름일까요.

네, 길림성 장춘의 김수금 청취자는 26일 이 퀴즈의 정답을 보내오셨는데요, 아래에 그 일부 내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1899년 김약연 등 조선사람들은 두만강을 건너 연변에 정착한 후 여기에 마을을 세우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김약연이 교장으로 되었습니다.

지금 이 마을은 또 이름난 민족시인 윤동주의 고향입니다. 명동마을은 윤동주의 생가를 아름답게 꾸며놓고 답사자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윤동주 생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안겨오는 것은 큰 돌에 쓰인 시인 유동주의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입니다. 이 시는 당시 암울한 현실 속에서 생활했던 시인의 절절한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 등이 담겨져 있습니다. 윤동주는 1945년 4월 일본에서 옥사했습니다.

이 마을은 민족의 시인 윤동주가 (별처럼) 나타났으니, 명동의 이름을 그대로 표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네, 김수금 청취자는 이 답안을 보내는 장춘 애독애청자그룹 제1자동차그룹 분회의 라명희 , 주송숙, 주혜숙, 박숙녀, 량두봉, 오애화, 허희숙, 한란희, 리명희, 정기순, 윤영선, 김금녀, 박룡익, 정성갑, 박영희, 방태식 등 17명을 함께 편지에 적었습니다..“

네,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MC: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번,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말]

MC: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성에 진행에 박은옥(MC), 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취자의 벗]과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취자의 벗]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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