权香花
2021-05-14 11:47:04 출처:cri
편집:权香花

[청취자의 벗] 2021년 5월 방송듣기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5월의 두 번째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박은옥(M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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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월

5월은 명절의 달이라고 할 만큼 기념일이 많은 달입니다. 행복한 가정의 달 5월을 보내시라면서 한국의 김연준 청취자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도로변 가로수 이팝나무의 꽃이 만발해 봄의 정취를 더해주고 들판은 봄 농사로 바쁜 농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중국에 계신 청취자들께서는 노동절 연휴를 즐기고 계시겠군요.

한국은 주말과 겹치면서 평일과 다름없는 노동절을 보냈습니다.

지난 달 중국 해남에서 개최된 보아오 포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영상축하 연설을 통해 보아오 포럼 창립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글로벌 거버번스 방안에 대해 몇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포용성이 강화된 다자주의 협력과  아시아에서 부터 코로나에 공동대응하고 녹색회복을 위해 기후위기는 세계가 공동으로 대응하며 신기술과 혁신 거버넌스 협력으로 미래를 대비하자는 내용 등이었습니다.

아울러 한국은 보아오 포럼의 창립국이자 책임있는 중견국으로 아시아의 공동번영을 위해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국의 코로나 백신접종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지만 지난주 매일 600명 대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3주 더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지방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일부 완화해 시행하지만 확진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할 만큼 기념일이 많은 달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코로나 조심하시고 행복한 가정의 달 5월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5월 3일 김 연준”

 

네, 5월 이달에 김연준 청취자님도 늘 코로나에 조심하시고 즐거운 일상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5월 이달을 맞이하면서 풀이 자라고 꽃이 피고 잎사귀가 푸르지만 아직도 앙상한 나무, 마른풀 잎들로 하여 화재의 위험성은 여전합니다.

중국 길림성 연길시의 리성복 청취자님이 소방대 선전원을 요청하여 소방상식을 학습했다고 전했습니다.

 

연길시 소방대대 선전원을 청하여 소방상식 학습하였다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항상 불조심하여야 하지만 특히는 봄철에 들어서서  앙상한 나무, 마른풀 잎들로 하여 작은 불로부터 큰 화재 위험성이 더 크다.  4월26일 길림성 연길시 북산가두 ,연길시9중사생들 9중학교 회의실에서 소방대대 선전원을 통하여 일반 생활에서의 화재의 발생 원인, 주의할 점에 대하여 영상을 보여줬다. 한편 화재 일어났을 때 신속한 대처,소화기로 불을 끄는 연습 ,소방차의 일체 장치를 설명하였다.

5월 11일 중국 관변측이 제7차 전국 인구 전면조사의 주요 수치를 발표했다. 2020년, 중국 총 인구는 14.1억명으로 세계 총 인구의약 18%를 차지했으며 여전히 세계 제일을 차지했다. 

한편, 중국 인구정세는 확실히 날을 따라 심각한 일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일례로 60세와 그 이상의 인구는 인구 총 규모의 18.70%로 2.6억명 이상이며 인구 고령화 정도가 더더욱 심해졌다.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사람들은 기증한 유체를 통해 인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또 인체의 병리를 더 잘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다.

얼마 전 유체를 의학교육사업에 기증하여 질병치료의 수준을 높이는데 마지막 힘을 기여하고자 한 노인들이 있었다고 길림성 연길시의 박철원 청취자가 소식을 보내왔다.

“우리를 해부하여  모든  암과  질병이  없는  미래를  연구하세요”

“죽어서도  쓸모 있다니  너무  기쁘네요”

룡정시  퇴직교원  주청룡의  저택에서는  친구들이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  죽음에  대한  이야기,  유체기증 이야기로  활기 넘쳤다.

주청룡은  일찍  2012년 5월 5일에  연변대학  의학원과  유체기증 협의를  완성한 사람이다.  그의  동창생들은  이  미거를  찬미하며  부러워하였다.  동창들의  간곡한  청구로  주청룡은  그들의  유체기증  욕망을  존중하여  연락을 달아주었다.

4월28일, 원  연변대학 의학부  유체기증 판공실   김범학(퇴직후 류임) 주임이  직접  룡정  주청룡의  저택을  찾았다. 체신계통에서  근무했던  림선생은  가치있게  살고  문명하게  사후를  실천해야  한다며  유체기증신 청서에  정중히  수표하였으며,  수리계통의  퇴직간부  지씨도  “죽은  후에도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수속을  마쳤다.

이 두 자원 기증자는  오랫동안  바라던  일을  하여  큰 시름을  덜었다며  기쁜  마음을  금치  못했다.

                             박철원   2021.4.28

네, 그럼 계속하여 ‘지명으로 읽는 이민사’, ‘연변 100년 역사의 비밀이 풀린다’ 이런 제목으로 재미있는 지명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의 세린하 지명 이야기입니다.

[고정음악]

매 바위 아래 헤엄치던 작은 물고기

뭔가 잘못된 게 아닐지 한다. 기실 그들은 살길이 막막해서 중국 동북으로 이주한 게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항일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했다는 식의 그런 이야기는 더구나 아니었다.

솔직히 김무석 가족의 이민사는 소설이라면 서두부터 별나게 엮어지고 있었다.

“그때 이웃집과 말다툼이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무석은 시초에는 자기도 도통 믿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그가 알고 있는 연변의 이민사는 판에 짜놓은 것처럼 생활난이 아니면 독립운동이 발단으로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살다보면 얼굴을 붉힐 때가 있는데요. 아마도 서로 소 닭 보듯 할 처지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조부는 이삿짐을 챙기고 정든 고향을 떠나기에 이르렀다. 두만강을 건널 때 조부는 27세의 열혈 나이였다. 그때 용정의 세린하細鱗河에는 증조부의 4촌 친척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용정 지명지地名志의 기록에 따르면 “세린細鱗”은 만족 말이며 작은 잉어라는 의미라고 한다. 세린하는 작은 잉어가 있는 강이라는 것. 그런데 잉어는 만족 말로 “무쥐후(mujuhu)”라고 하며 중국말의 “세린細鱗”과는 발음이 다르다.

어쨌거나 이 고장은 훗날 강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세린하로 불렸던 것이다.

1922년, 김무석의 부친이 세린하에서 고고성을 터뜨리며 나중에 김해 김 씨의 관파關派 18대손으로 족보에 기록된다. 이런 기록은 이민 2세의 부친이 마감부호를 찍으며 그 이상 뒤를 잇지 못했다. 함경북도 경성군 어랑면 부산동이라고 하는 옛 고향의 이름은 그렇게 김무석 가족에게 100년 전의 어렴풋한 기억으로 차츰 멀어졌다.

이민 3세인 김무석도 세린하에 태를 묻었다. 그러나 세린하는 그가 태어나던 지난 세기 40년대는 물론 그 후 오랜 기간 옛 고향의 이름보다 더 낯선 지명으로 되고 있었다.

“옛날 우리가 살던 고장을 ‘시런’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시런’은 중국글로 시린錫麟이라고 쓴다. 김무석은 이 말을 그대로 전하면서도 “시린”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있었다. 중국말 발음으로 볼 때 “시린錫麟”은 “세린細鱗”과 비슷하며 따라서 “시린”은 “세린”이 아닐지 한다.

그러나 “시런”이든 “세린”이든 모두 최초의 지명은 아닌 것 같다. 천 년 전 고대 주민들이 이곳에서 생활했다는 증거물이 있기 때문이다. 광서(光緖, 1875~1908) 초년 생긴 조선인마을 장성촌長成村은 바로 마을 서쪽 산등성이에 있는 옛 장성 유적지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지명지地名志는 장성 기슭에 살았던 고대 주민은 만족의 선조인 여진인女眞人이며 그래서 이 고장은 옛날부터 만족의 고향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고장의 옛 지명을 만족 말로 풀이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기실 이에 앞서 북옥저北沃沮인들이 이 고장에서 원주민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청나라 초기 이곳은 봉산위장封山圍場이었으며 광서(光緖, 1875~1908) 초년부터 비로소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세린하의 향 소재지와 촌 소재지가 있는 세린촌細鱗村 역시 첫 이름이 아니며 시초에는 황백동黃柏洞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황백黃柏은 운향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나무껍질을 벗기면 노란 색이 난다고 해서 황벽黃蘗나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김무석이 어릴 때 마을 노인들에게 들은 이 고장의 나무 주종은 분명 황백나무가 아니었다.

“옛날 강기슭에는 황철나무가 많이 들어서 있었다고 하던데요.”

황철나무는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황백과 이름만 비슷할 뿐이지 모양새 자체가 다르다. 하필이면 마을 이름에 황철이 아닌 황백이 달렸는지 궁금한 대목이다.

아무튼 세린하는 청나라 때 약 2백 년 동안이나 무인지대로 있으면서 이런저런 나무는 물론 고목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옛 집단부락 어구에는 수령이 몇 백 년이나 되는 당수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이 동네는 일본 강점시기의 잔재인 “집단부락”이라는 이름이 껄끄럽다고 해서 1950년대 문화촌文化村으로 개명하였다.

당수나무는 아직 그 자리에 남아있었지만 옛날 집단부락을 빙 둘렀던 토성은 오간 데 없었다.

이런 옛 토성은 세린하의 거부로 알려진 손영명孫榮銘의 저택에도 있었다. 손영명은 용정의 남군필과 훈춘의 한희삼과 더불어 연변의 3대 지주로 불린다. 김무석의 조부는 시초에 땅이 없어서 손영명의 소작농으로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조 농사가 위주였는데 가을이면 밭머리에 조를 여러 무지로 쌓아놓으면 지주가 와서 자기 몫인 절반을 먼저 골라 차지했다고 한다.

“손지주는 원래 산에 살던 마적 즉 토비이었다고 합니다.” 김무석이 어릴 때 옛말처럼 들었던 이야기이다.

나중에 토비들은 관군官軍에게 토벌되었으며 그때 어찌어찌하여 손영명만 달랑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토비들이 모았던 재물을 독차지하고 그걸로 땅을 사들여 원근에 소문난 대지주로 되었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은 몰라도 손영명이 토비들과 거래가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재산이 도대체 얼마 되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던 해 손영명은 1천 여 가구의 소작농과 1,200마리의 소 그리고 승용차와 트럭을 갖고 있었으며 뜰에는 70톤짜리 곡물 뒤주가 7개나 있었다. 그는 세린하에 기름집과 벽돌공장을 꾸렸고 연길에 상점과 식당을 두었으며 또 타성에 철공장을 운영했다.

그때 손영명의 저택은 발전기가 있어서 전등을 켤 수 있었다. 그는 수하에 총으로 무장한 자위대를 거느렸으며 집 주변에 토성을 쌓고 포루를 만들었다. 이처럼 으리으리한 저택은 당연히 백 리 안팎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건물이었다.

“애들이 장난을 하다가 토성 아래에서 탄환이 들어있는 상자를 발견한 적 있지요.”

손 씨의 저택은 지난 세기 60년대 훼손되었고 포루는 얼마 전 붕괴가 우려되어 일부러 허물었다고 한다. 지금은 동쪽 토성의 일부가 웬 농가의 동쪽 귀퉁이에 가까스로 기대어 있을 뿐이다.

김무석의 옛 가옥도 언제인가 거미줄이 드리운 폐가로 되어 있었다. 부친 때부터 살고 있었던 이 가옥은 그들이 1985년 연길로 이사하면서 누군가에게 200위안에 팔렸다고 한다. 그래도 기억까지 전부 팔아버린 건 아니었다. 앙상한 기억은 무릎을 치는 쑥대처럼 뜰에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그때는 돼지 굴(우리)에 새끼로 꼬아 만든 그물을 쳤습니다.”

이상한 이야기였다. 뭐 돼지가 날개라도 돋쳐 하늘로 날아갈까… 알고 보니 이 고장에는 늑대가 자주 출몰했다고 한다. 고요한 달밤이면 늑대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밤공기를 흔들었다. 새끼 그물은 돼지를 늑대의 아가리에서 지키려는 방책이었던 것이다.

들짐승은 늑대뿐만 아니었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동네어구에 어슬렁거리는 여우를 볼 수 있었다. 어느 때인가는 멧돼지가 마을에 내려와서 어느 아줌마의 다리를 물었다고 한다. 그보다 엄청난 사건은 뒤에 있었다. 1962년 경 마을 동쪽의 소 우리에 범이 내려왔던 것이다. 그날 아침 사육원이 소 우리에 가보니 말뚝에 매놓았던 소가 너부러져 있었고 소의 엉덩짝이 오간데 없었다. 주변에는 범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어미 범이 새끼 범 두 마리를 데리고 왔던 모양이었다.

약 반세기 전까지 마을을 제 둥지처럼 출몰하던 들짐승은 언제인가 종적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 무렵 골마다 있던 소학교도 차츰 이런 들짐승처럼 이 고장의 옛말로 사라졌다.

일신촌日新村의 원래의 이름인 함흥동네는 별로 아는 사람이 없으며 이화촌理化村의 이름을 만든 배나무 세 그루는 찾을 길 없다. 이화촌理化村은 이화촌梨花村의 변음이다. 그리고 물뱀이 많았다는 용호동龍湖洞에는 물뱀이 늘 헤엄을 쳤다는 늪마저 없다.

세린하는 예나 제나 없이 흐르고 있었지만 마을은 더는 옛날의 그 마을이 아니었다.

김무석은 어릴 때 또래와 함께 늘 마을 앞의 강에서 고기를 잡았다. 강은 크지 않았지만 물이 많을 때는 무릎을 쳤다고 한다. 미꾸라지가 많이 잡혔고 붕어나 버들치 따위가 채에 걸려나왔다. 그래서 그는 세린하의 이름이 이런 작은 비늘의 물고기라는 의미인줄 알고 있었다.

기실 세린하가 중국말로 “세린어細鱗漁”라고 하는 버들치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는 설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버들치는 잉어과의 민물고기로, 세린하가 작은 잉어의 의미라는 지명해석과 서로 맞물리고 있다.

그러나 이 고장의 명물은 더는 세린하의 물고기가 아니라 대리석 따위의 석재이다. 마을의 기업은 채석을 위주, 지난 세기 80년대 벌써 연간 2,000㎥를 채석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런 채석작업으로 산 하나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마을 동쪽에 있는 이 산은 옛날 꼭대기에 독수리가 둥지를 틀고 있다고 해서 “매바위산”이라고 불린다.

“매바위산을 지나면 바로 세린하라고 했는데요…”

소실된 옛날의 세계는 독수리가 웅크리고 있었던 매바위산 뿐만 아니었다. 김무석이 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세린하는 조부가 그리던 강 건너 쪽의 옛 고향처럼 그의 기억에서 어느덧 몇 조각의 편린으로 남고 있었다.*

네, 연변에도 고대 장성이 있었고, 그 장성의 근처에 고대 주민이 살던 옛 마을이 있었습니다.

장성촌과 더불어 세린하 등 지명의 이야기였습니다.

[퀴즈 한마당 코너]

MC: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계속하여 지명과 관련한 이달의 퀴즈를 내어드리겠습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에 ‘함박동’이라는 마을이 있는데요, ‘함박동’이라는 마을은 무슨 의미일까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지명 ‘함박동’은 무슨 의미일까요.

지난 주 한국 대구의 구원모 청취자님이 이메일로 정답을 보내주셨습니다.

네,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MC: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번,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 중앙방송총국 아시아아프리카지역 방송센터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말]

MC: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은옥(MC), 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취자의 벗]과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취자의 벗]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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