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21-07-19 17:56:21 출처:cri
편집:李仙玉

중국국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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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녜얼(왼쪽)과 톈한(오른쪽))

‘9,18’사변 후 일본군이 동북 3성을 강점하면서 중국 전역에서 항일구국운동이 시작되었다. 1935년 5월 24일, 영화 <풍운의 아들딸(風雲兒女)>이 상하이(上海)에서 방영되었고 영화의 주제곡 <의용군 행진곡(義勇軍行進曲)>이 역경에 처한 중화민족의 외침을 상징하며 전국적으로 전파되었다.

톈한(田漢)이 <의용군 행진곡>의 노랫말을 쓰고 나서 곧 국민당 당국에 의해 투옥되자 그의 절친인 녜얼(聶耳)이 작곡하겠다고 나섰다. 1935년 녜얼은 영화 <풍운의 아들딸> 주제곡의 작곡을 마쳤다. 녜얼은 노래의 제목을 ‘행진곡’이라고만 했는데 영화 투자자가 ‘행진곡’의 앞에 ‘의용군’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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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영화 <풍운의 아들딸> 포스터)

1949년 9월 27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기 전체회의는 <의용군 행진곡>을 중화인민공화국 국가로 결정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국가평선 토론에서 일부 대표들이 <의용군 행진곡> 중 “중화민족이 가장 위험한 시기에 이르렀다”는 노랫말을 수정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그에 마오쩌둥(毛澤東)은 “이 구절은 지금 고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고쳐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안녕 속에서 위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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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녜얼이 쓴 <의용군 행진곡>)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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