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8월의 세 번째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박은옥(M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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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은 “연변 로인절”이다. 1982년 8월 15일 지금의 길림성 용정시 동성용진인 연길현 동성용향의 각 촌 로인독보조 책임자들은 한자리에 모여 로인독보조를 로인협회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하였다. 이렇게 조선족 로인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중국의 첫 로년민간단체가 고고성을 울렸다.
당시 연변조선족자치주 조남기 당 서기는 로인협회 창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 경험을 널리 보급할 것을 제안하였다.
연변에서 중국의 첫 로인협회가 설립되였다는것은 그동안 로인을 존경하고 공경하는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온 조선족의 자랑할 만한 쾌거이다.
이를 바탕으로 1984년5월, 당시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는 연변조선족자치주 로인협회 공식 설립을 결정하였다.
1984년 8월 7일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원회와 정부는 연변조선족자치주로인협회 설립대회를 성대히 개최하고 8월 15일을 연변의 로인절로 결정하였다.
그때 지은 노래 <<오래오래 앉으세요>>(허동철 작사, 방룔철 작곡)는 그 후 연변으로부터 전국각지에 널리 류행되였다.
중국 길림성 연길시 박철원 청취지는 이런 내용을 정리해 보내오면서 현지에서 의미 있게 쇤 명절 이야기를 전해왔습니다.
8월 15일은 “연변 로인절”이다
먹고 마시고 향수만 하는 명절은 의미가 없다.
연길로인뢰봉반에서는 원래 로인절을 계기로 버스를 세 내여 농촌마을에가 련환모임을 가지려고 계획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생각을 바꾸어 그 비용을 후대사랑 행사에 쓰기로 하였다.
9일, 4명 대표를 화룡시에 파견해 두 자매중학생을 키우는 탄광 빈곤로동자가정을 방문하고 그들에게 학용품과 2000원의 조학금을 넘겨주었다. 또한 그들과 함께 전국 새일대관심사업 선진개인이며 ”연변 제일 아름다운 로인”인 리성진 할아버지를 만나 그의 사적을 학습하며 함께 생동한 애심교육을 받았다.
11일에도 4명대표가 올해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대학 공상관리학부에 진학한 안도적 고아 리모 학생에게 2000원의 조학금을 전해줬다.
이날 로인뢰봉반의 김봉련회원은 현금1000원을, 박계옥회원은 의료용 마스크 100개를 선물하였다.
모임대신 사랑의 손길 전하기로 로인절을 맞은 로인뢰봉들마다 코로나방역도 잘 되고 사랑의 마음도 전하게 되고 한푼 두푼 모은돈도 값지게 써 일거다득이라며 기뻐들하였다.
로인절은 인터넷을 통한 명절을 보내는 방식을 취하고 뢰봉반 위챗방에 <좋은말, 좋은글 한마디 올리기>활동을 하였다.
“인생살이 10계명”, “빛나게 살아가는 로후생활”. “나의 감수” .....로인들마다 마음속의 말, 자신의 소감을 올려 서로들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고 기여하며 살아가는 여생에 힘을 불어넣어 뜻 깊은 로인절을 보냈다.
네, ‘연변의 노인절’을 의미 있게 보낸 연길 뢰봉반 노인들의 이야기었습니다.
중국의 전국적인 노인절은 음력 9월에 있는데요, 올해의 중국 노인절은 양력 9월 15일입니다.
음력 9월 초아흐레 날은 중국의 전통명절인 ‘중양절’이며 또한 중국 전통적인 경로의 날이다. 노인들의 합법적 권익을 보장하고 실버사업을 건강하게 발전시키며 노인을 존경하고 노인을 봉양하며 노인을 돕는 미덕을 선양하기 위해 2013년 7월 1일 ‘노인 권익보장법’을 실시하고 해마다 음력 9월 초아흐레 날을 전국 ‘노인절’로 정했다. 이해의 중양절도 중국 첫 법정 노인절로 되었다.
국제 노인절은 양력 10월 1일입니다.
1991년, 제45차 유엔 총회는 제106호 결의를 일치하게 통과하고 해마다 10월 1일을 국제 노인절로 정했다. 국제 노인절은 오늘날 국제적으로 공인하는 공식 노인절로 되었다. 2021년 10월 1일은 24번째 국제 노인절이다.
미국의 노인절은 조부모의 날이라고 하는데, 1978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때 카터 미 대통령은 법안에 수표하고 해마다 9월의 미국 노동절 후 첫 일요일을 미국의 조부모의 날이라고 정했다. 이날 미국 각 지역에서 모두 경로활동을 벌이는데, 실제상 미국의 경로의 날 축제로 되었다.
캐나다는 효도 축제를 벌이는데, 웃는 날이라고도 한다. 해마다 6월 21일이면 서점은 특별히 노인들을 위해 여러가지 유머 서적을 코너에 올린다. 코미디언들은 양로원에 가서 자선 공연을 하며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모시고 유람을 한다. 방송국은 특별히 노인들을 즐겁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저녁이면 자식들은 다른 일을 제쳐놓고 부모를 모시고 함께 천륜지락을 누린다.
칠레의 노인절과 노인주간은 해마다 10월에 있다. 칠레 정부는 해마다 10월 15일을 전국 노인절로 정했으며 15일이 들어있는 그 주일을 노인주간으로 정하고 여러 가지 경로 행사를 개최한다.
그리스는 해마다 황금빛 가을이면 길일을 선택하여 노인절을 개최한다. 명절 행사에는 예술공연뿐만 아니라 노인 경주를 진행한다. 이때 경주에 참가하는 노인은 모두 나이가 70세 이상이다.
일본의 경로절은 9월 15일이다. 해마다 이날이면 전국 각 지역에서 노인을 위해 여러 가지 경축행사를 벌인다. 노인들은 명절의 옷차림을 하고 자식과 친지들의 축복을 받으며 여러 명절 행사에 참가한다.
한국은 1973년부터 원래의 5월 8일의 어머니의 날을 경로절로 고쳤다. 이 경로절 기간 여러 가지 경로 활동을 벌인다.
[지명과 연변]
계속하여 ‘지명으로 읽는 이민사’, ‘연변 100년 역사의 비밀이 풀린다’ 이런 제목으로 지명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옛날 이주민이 정착했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의 마을 이야기입니다.
아흔아홉 굽이의 강을 만든 미꾸라지
그는 마을의 이름이 화제에 오르자 대뜸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런 걸 말할라치면 젊은 사람들은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 하고 묻지요.”
기실 말이 젊은 사람들이지 마을의 웬만한 노인들도 옛 지명을 잘 모른다고 한다.
그는 80대라는 고희의 연세는 물론 경력도 마을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토박이였다. 일찍 일곱 살 때 부친을 따라 함경북도에서 이 고장에 이주했던 이민 1세라고 한다. 동네어구에서 만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모두 최일권 옹을 소개하던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최일권 옹은 금방까지 밭에서 기음을 매던 매무시 그대로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있었다. 그는 마당에 스스럼없이 쭈크리고 앉아서 밭고랑처럼 굵직한 손가락으로 주섬주섬 엽초를 말아 피웠다.
흙냄새가 다분한 시골의 한 장면이 마치 하늘의 흰 구름처럼 소리 없이 마당을 흘러 지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집 남쪽의 동네를 ‘연화동蓮花洞’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때 부근에는 작은 호수가 있었으며 또 호수에는 연꽃이 소담스레 피어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3대(隊, 촌민소조) 마을, 이웃한 동네와 한데 뭉그러뜨려 이도포촌二道泡村이라고 부르지만 옛날에는 이 연화동을 제외하고 봉무동鳳舞洞, 남화동南花洞 등 세 자연부락이 있었다. 봉무동은 지금의 4, 5, 6, 7대 마을이며 남화동은 8, 9대 마을이라고 한다.
웬걸, 이런 낯선 지명 뒤에는 또 다른 지명이 숨어 있었다.
“연화동도 원래의 이름이 아니지요. 예전에 노인들은 그냥 ‘늪 초리’라고 불렀으니까요.”
초리는 무엇의 가느다란 끝부분을 이르는 말이다. 연화동은 호수 가장자리에 있었다고 하니 ‘늪 초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을 수 있다. 최초에는 서너 가구의 작은 동네였지만 8.15 광복이 지난 후부터 몸통을 크게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당에 옹기종기 모였던 동네 사람들은 모두 귀를 솔깃하고 있었다. 뒷이야기이지만 그들도 마을이름이 그냥 이도포인 줄 알았지 ‘늪 초리’는커녕 ‘연화동’이라는 이름마저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도포는 경신敬信 일대의 두 번째 호수 서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경신은 훈춘 동남쪽의 두만강 기슭에 있는 향鄕이다. 일찍 강희康熙 53년(1714), 훈춘에 협령協領을 설치할 때 마을을 세우기 시작, 그때는 봉금封禁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이 가물에 씨 나들듯 했다고 한다. 광서光緖 7년(1881) 4월 경내의 흑정자黑頂子에 초간국招墾局을 설립하면서 조선인을 비롯한 간민들이 밀려들었다. 흑정자는 경신 북쪽에 있는 산으로 바위가 검은색을 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광서 20년(1894), 무간국撫墾局 진원보鎭遠堡에 소속, 산하에 경신敬信 등 8개 사社를 두고 관할하였다. ‘경신’이라는 이름은 이때부터 출현하게 된 것이다. 훗날 훈춘청琿春廳을 설립할 때 경신사의 이름은 향의 이름으로 고쳐지며 경신향의 시원으로 된다.
옛날 경신에는 이도포를 망라하여 무려 아홉 개의 호수가 있었다. 사람들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서 셈을 세듯 두도포부터 시작하여 이도포, 삼도포… 구도포로 호수의 이름을 지었다.
항간에서는 이 아홉 호수를 두고 천년 미꾸라지의 전설이 전하고 있었다.
태고연한 시절, 경신지역은 일망무제한 하나의 호수였다. 그때 호수에는 큰 미꾸라지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 미꾸라지는 물속에서 천 년의 수행을 거쳤고 일월의 정화를 받아들여 마침내 호풍환우呼風喚雨의 요정妖精으로 되었다.
언제인가 동해의 용왕이 순시를 하던 길에 이 호수에 들리게 되었다. 미꾸라지는 이 기회를 빌어서 작은 호수를 떠나 큰 바다에서 살려고 했다.
“이놈이 언제 이렇게 욕심 많은 존재로 되었지?”
용왕은 괴력의 미꾸라지가 아무래도 그의 왕좌를 위협할 것 같아서 꾀를 부렸다. 스스로 물곬을 파헤쳐서 강까지 나오면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우직한 미꾸라지는 그 말을 곧이듣고 즉각 땅에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미꾸라지가 꿈틀꿈틀 기운을 뽑는 대로 땅이 구불구불 파헤쳐졌다. 그렇게 아흔아홉 굽이가 생겨났고 드디어 마지막 한 굽이가 남았다. 그런데 미꾸라지는 눈앞에 막 다가온 “용왕”의 꿈에 너무 흥분했던 모양이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땅을 떠박지르는 순간 허리가 폴싹 꺾이면서 꼬꾸라졌던 것이다.
실제 권하에는 여든 하나의 굽이가 있으며 항간에서는 통칭 구구九九 굽이라고 전한다. 이처럼 기이한 강은 천하에 보기 드물다고 하니 진짜 ‘미꾸라지’의 전설을 낳을 법 한다. 이 전설에 따르면 미꾸라지가 있었던 아홉 호수는 이때 천년의 미꾸라지가 물곬을 파면서 생긴 큰 물웅덩이라고 한다.
전설의 강은 예나 제나 없이 흐르고 있지만 일부 호수는 둑에 막혀 한데 이어지면서 ‘미꾸라지’처럼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밥 짓는 연기는 마냥 마을의 상공에 솟아오르고 있었지만 일부 옛 지명은 세월과 더불어 색깔이 바래지면서 어디론가 종적을 감췄다.
육도포六道泡 마을은 워낙 ‘놀기밭(‘노루 밭’의 방언)’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옛날에는 노루가 늘 산발을 타고 벌판까지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민국(民國, 1912~1949) 초년 태평천太平川이라고 불리다가 1937년 집단부락을 세우면서 여섯 번째 호수 부근에 있다고 해서 육도포로 불렸던 것이다.
권하의 출구에 있는 마을은 워낙 강굽이 마을이라는 의미의 ‘개 굽이’로 불렸다. ‘개’는 도랑이나 강을 이르던 우리말이다. 그 후 괴뢰 만주국 시기 권하가 이곳에서 두만강에 흘러든다고 해서 물가나 강어귀를 이르는 말인 개 포浦를 넣고 또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의미로 은혜 은恩을 이름자에 넣어 ‘포은동浦恩洞’이라고 개명하였던 것이다.
일부 마을이름은 중국글로 옮기면서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도포 남쪽의 마을 ‘玻璃登’은 자칫 ‘유리 등잔’이라고 해석되기 십상이다. 기실 조선말로 벌과 그 옆의 더기를 합쳤다는 ‘벌 더기’ 마을이었다고 한다. 중국말로 지명을 옮기면서 ‘벌 더기’와 비슷한 발음의 ‘玻璃登(bo-li-deng)’으로 적었던 것이다.
사실 그쯤하면 일소一笑의 여담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지명 지등평池登坪은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 이름에 늪 지池자가 들어있지만 부근에 늪이나 못이라곤 없기 때문이다.
최일권 옹은 ‘지등평’이 실은 우리말로 ‘지름평’이라는 이름이라고 했다. ‘지름’은 ‘기름’의 방언이니 ‘기름진 벌’이라는 뜻이 되겠다.
지명 노전魯田도 지등평처럼 단지 중국글자만 보고서는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다. 지명지地名志의 기록에 따르면 노전은 만족 말로 ‘엉성한 땅’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나 노전이라는 지명이 최일권 옹에게 남긴 유일한 기억은 그게 아니었다.
“노전에는 참으로 인물이 많았지요. 시장 어른이 나왔고 촌장 어른이 나왔지요.”
최일권 옹이 맨 처음 살았던 마을의 이름도 이처럼 오래전에 벌써 집단기억에서 말끔히 지워지고 있었다. 일명 아래부락, 조양골朝陽溝의 남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었다. 조양골은 골짜기가 양지 바른 남쪽을 향했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었다. 중국글로 지명을 적으면서 아래 조양이라는 의미의 ‘하조양下朝陽’으로 되었고 그래서 통칭 ‘조양촌’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여하튼 조양이라는 이 이름은 최일권 옹의 어린 기억에 떠올리기 싫은 고통의 깊은 골짜기를 파고 있었다.
두만강을 건넌 얼마 후 부친은 초가에 이영을 얹기 위해 동쪽 넓덕에 풀을 베러 갔다. 넓덕은 장고봉 부근의 넓은 더기를 이르던 말이다. 그때는 1938년 여름, 러시아와 일본이 장고봉長鼓峰에서 격전을 벌릴 무렵이었다. 러시아군은 산기슭의 숲속에서 누군가 언뜻거리자 일본군 정찰병으로 오인하고 포를 쏘았다. 부친은 이역 땅을 밟자마자 그만 억울하게 한줌의 연기로 산화되고 말았다.
그 무렵 경신 벌판에는 적어도 20여개의 부락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역시 아홉 호수처럼 꼬리와 대가리가 거의 잇닿아 있는 셈이었다. 와중에 금당촌金塘村은 훈춘 일대에서 조선인 간민이 세운 최초의 마을이라고 전하고 있다. 마을은 시초에 세 번째 호수 부근에 있다고 해서 ‘삼도포자三道泡子’라고 불렸다. 1936년 경, 호수의 물과 기름진 땅이 햇빛을 받아 금빛을 뿌린다고 해서 ‘금빛 호수’라는 의미의 ‘금당’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집단부락이 섰던 1936~1938년 경신 촌공소村公所가 설립되어 있었다.
경신처럼 산 저쪽의 러시아 핫산 지역에도 크고 작은 호수가 여럿이나 있다. 이 지역은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조선시대의 고지도에 ‘여덟 호수’라는 의미의 ‘팔지八池’로 표시되어 있다. 공교롭게 팔지의 세 번째 호수 기슭에도 동명의 금당촌金堂村이 있었다. 이 금당촌은 조선왕조의 창건자인 이성계의 5대조 목조가 살던 옛터이다.
정말이지 산 양쪽의 두 금당촌은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를 방불케 한다. 저쪽의 팔지八池가 하늘의 조화로 이쪽에 와서 구도포九道泡로 복제되었을까… 어쩌면 경신의 금당촌에도 그 무슨 옛 이야기가 ‘미꾸라지’처럼 숨어 있을지 모른다. 아흔아홉 굽이의 전설은 채 끝나지 않은 것이다.*
[퀴즈 한마당 코너]
MC: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계속하여 지명과 관련한 이달의 퀴즈를 내어드리겠습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도문에는 ‘까울령’라는 산 이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명 ‘까울령’은 도대체 무슨 의미로 지은 이름일까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지명 ‘까울령’은 무슨 의미로 지은 이름일까요.
네,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MC: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번,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 중앙방송총국 아시아아프리카지역 방송센터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MC: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은옥(MC), 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