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9일, 12월의 두번째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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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시곡 1'02" 혼합)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12월의 두번째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박은옥(M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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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목요일은 9일은 양력으로 올해의 343일째 되는 날입니다. 어느덧 올 한해가 마감할 때까지 22일 남았습니다.
이번 주 역사상의 이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2월 9일은 12.9운동 기념일입니다. 이 기념일은 1935년 12월 9일, 그때의 북평 즉 지금의 베이징에서 발생한 시위활동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날 중국공산당의 조직으로 베이징학생들은 대일작전을 요구하여 시위활동을 벌였습니다. 12.9운동은 일정한 정도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연합 항일을 촉성했습니다.
12월 9일은 또 세계 축구의 날입니다. 1863년 12월 26일, 영국은 세계적으로 첫 축구협회인 잉글랜드 축구협회를 세웠습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탄생은 축구운동의 발전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1863년 12월 26일 다시 말해서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설립된 날을 현대축구의 탄생일로 공인합니다. 1978년, 유엔은 12월 9일을 세계 축구의 날로 정하고 이 운동이 사람들에게 준 즐거움을 기념했습니다.
12월 9일은 또 국제부패척결의 날입니다. 반기문 유엔 전 사무총장은 사람마다 청렴하고 법을 지켜 세계적인 부패 위협을 이겨내는데 기여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청취자의 내신]
길림성 연길시에 있는 ‘연길감옥 항일투쟁승리기념비’ 근처의 문화광장이 ‘초심광장’으로 명명되었다고 연길시의 박철원 청취자가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관련 소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길림성 연길시 하남거리 원 <연길감옥 항일투쟁승리기념비>가에 자리 잡은 문화광장이 <초심광장>으로 명명되여 12월3일 제막하였다.
부지 8000여평을 점한 이 광장은 '초심을 찾아 '《寻找初心》,'초심 연마'《砥砺初心》,'초심의 깨달음' 《感悟初心》,'초심 실천' 《践行初心》 등 4개 구역으로 나뉘어여 연길감옥항일투쟁사, 력대 당대회, 견정한 리상 신념, 입당 선서문들이 안치되였다.
홍색구역을 더욱 찬란히 밝히고, 홍색유전자를 폭넓게 전파하는 이 광장의 설립은 당사교양이 실내로부터 실외로, 봉페식에서 개방식으로, 당내에서 대중에로의 발전모식을 실현하였다.
연길시에서는 <당건설+문화+선전+레저>모식으로 홍색 명함장을 펼치고 있다.
지금 연길시에는 258곳의 혁명전적지가 있으며 홍색유전자를 전파 계승하는 전통교양기지로 당사교양의 훌륭한 진지로 새롭게 보수되고 있다.”
네, 홍색 이야기는 제일 생동한 교과서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현대 중국 역사의 풍운을 알 수 있고 중국공산당의 성장 여정을 감수할 수 있으며 중국인민의 용감한 항쟁 장면을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박철원 청취자가 보낸 ‘초심광장’의 이야기였습니다.
2019년 말 코로나19 사태의 발생은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중대한 위기를 갖다 주었습니다. 세계에는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변화가 아닌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세계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해법을 찾고 있습니다.
글로벌 코로나 사태 대응에서 중국은 인류운명공동체의 이념을 견지하고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의 경험과 중국방안, 중국책임을 세계와 공유했습니다.
네, 중국 길림성 장춘의 김수금 청취자가 글을 보내와 방역 전선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는 노인들을 자랑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방송을 들을 때마다 귀가 크게 열리고 시야가 넓어지니 가슴이 뿌듯하고 기쁘게 됩니다. 오늘은 펜을 들어 장춘 제1자동차그룹 조선족노인협회가 코로나19 방역 전선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는 우리 노인들을 자랑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노인들의 건강을 보장하여 주면서 우리 협회의 건강 안전을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올해 76세의 김선분 노인과 올해 73세의 정군호 노인을 자랑하고 깊습니다. 이 두 노인의 이름을 부르면 회원들은 모두 엄지손가락을 들고 “노인들을 위해 쉴 줄 모르고 사심없이 일하는 살림꾼”이라고 칭찬합니다.
2019년 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악마가 나타나 확산되었습니다. 중국은 사람마다 일떠서서 금성철벽을 쌓아가며 방역통제에 나섰습니다. 우리 협회는 코로나19 예방통제 사업에 따라 협회의 활동을 정지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또 겨울이 되니 활동실이 음침하고 습하고 공기가 통하지 않아 오락기구와 장고, 북, 무용 복장에 곰팡이가 끼는 등 손해가 발생했습니다.
이때 김선분, 정군호 두 노인은 주마다 하루씩 협회에 나가서 활동실을 멸균, 소독하고 창문을 열어 통풍을 했으며 장판을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이렇게 1년 반을 견지했습니다.
협회가 올해 5월 25일 문을 열고 정상활동을 시작하자 그들은 더욱 바삐 돌았습니다. 정군호 노인은 정상활동을 시작하기 한 시간 전에 나와서 활동실을 소독하고 창문을 열어 통풍을 합니다. 김선분 노인은 활동실에 일찍 나와 체온기를 들고 체온을 측정하며 회원들에게 소독수를 내주는 등 엄한 검사를 했습니다. 정군호 노인은 협회의 일을 제일처럼 여기고 언제나 발 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하수도 보수, 지붕 보수, 환경 정리 등등 어느 일에서나 그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김선분 노인도 활동실 보수와 청소에서 언제나 앞장을 서는 분입니다. 여기저기에서 노인의 모습을 만나고 부지런한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노인은 지금도 날마다 활동실에 출근하면서 협회의 코로나19 예방과 통제에 각별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력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도 감히 우리 이곳에서는 머리를 쳐들지 못하고 꼬리를 감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노인 같은 분들은 우리 협회에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의 애심의 마음이 넘쳐흘러 우리 협회 활동실은 사랑의 집, 행복의 낙원으로 되고 있습니다.
네, 애심의 마음이 흘러 코로나 바이러스도 감히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수금 청취자가 보내준 ‘사랑의 집, 행복의 낙원’ 이야기었습니다.
2. 중국 대륙의 조선인 옛 마을
이 시간에는 ‘대륙의 옛 마을에 조선인의 옛 얼굴이 나타난다‘ 이런 제목으로 중국 대륙의 옛 마을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북성의 김씨는 왜 조선족의 계보에서 사라졌을까
마을에서 먼저 만난 건 사람이 아니라 고목이었다. 가문비나무는 고산식물이라서 평지에서 웬만해서는 보기 힘들다. 그런데 장장 360년의 수령이라니… 또 이 수령처럼 오랜 전설이 길가에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있었다.
건륭(乾隆)황제가 평천(平泉)에서 수렵을 하다가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그때 잠깐 모자를 벗어서 걸어놓았던 옛 나무라고 한다.
고목은 정말로 황은을 입었는지 원뿔형의 모자처럼 생기고 있었다. 실제 건륭황제는 하북성(河北省) 승덕(承德)의 이 고장에 가끔 다녀갔다고 한다. 승덕의 행궁은 1703년부터 강희(康熙), 옹정(雍正), 건륭 등 3개 조대의 89년 동안 건설된 청(淸)나라 제왕의 궁원이자 피서지이다.
고목 근처에 생긴 마을도 황제의 덕택을 승수(承受)하고 있는 듯 했다. 김장자(金杖子)’는 김씨가 황제의 은혜를 받아 장자 마을의 우두머리로 되었다는 뜻이다. 이름을 그대로 풀이한다면 김씨가 말뚝을 박아 땅 지경을 삼은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이웃한 마장자(馬杖子)와 더불어 사합원(四合園)이라고 이름한 촌락을 이루고 있었다.
사합원의 마을보건소에 들렸더니 의자에 앉아있던 웬 중년 사나이가 알은체를 했다. 마침 그는 김장자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고 또 김씨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일행이야말로 그 어느 황제의 덕택을 입는 것 같았다. 사내의 말에 따르면 김장자는 100여 가구나 되는 큰 동네이며 이 가운데서 김씨는 반수 정도의 50여 가구라고 한다.
마을의 고목은 김씨의 증조부가 이주할 그때 벌써 있었다고 한다.
청나라 말, 김씨의 증조부는 기근을 피해 이곳 평천으로 살길을 찾아왔다고 한다. 증조부의 고향이 어디인가고 물었더니 남쪽의 산동(山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족명(族名)은 분명히 한족(漢族)이 아니라 만족이라는 것이다.
만족 김씨는 황실의 성씨를 나타내는 성씨이다. 청나라 시조 애신각라(愛新覺羅)의 애신(愛新)은 한자로 ‘금(金)’을 뜻하며, 각라(覺羅)는 성, 씨족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애신각라는 김씨(金氏) 성을 가진 씨족이라는 의미이다. 청나라는 중국을 통치한 초기부터 여러 지역에 8기군을 주둔하고 있었다.
그때 만족의 김씨는 장성 남쪽의 산동에도 나타났다. 아직도 산동의 청주(靑州)에는 옛날 만족이 살던 집거촌이 현존한다. 김씨는 오히려 보건소에 내놓은 기자의 신분증 이름을 일장 기문으로 읽고 있었다. 김씨 계보에 조선족이라는 민족이 있는가 하고 되물었다.
시초부터 김씨의 족명에 흥미를 가진 것은 우리 일행이었다. 그러나 둘의 시각을 바꿔보면 해답이 나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신각라 즉 김씨가 만족의 이름난 혈통의 성씨라면 또 조선반도의 274개 성 가운데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성씨의 유명한 씨족이다. 김씨의 본관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623본이 나타난다. 여러 김씨는 상당부분이 신라의 알지(閼智)를 시조로 하는 경주 등 김씨의 계열과 가락국 수로왕(首露王)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의 계열로 연원을 두고 있다.
조선에는 귀화한 김씨도 있다. 제일 많은 것이 여진족(女眞族)에 뿌리를 둔 김씨이다.
조선왕조 실록(實錄)》의 기록에 따르면 세종(世宗)은 귀화한 여진족 수백 명에게 김씨 성을 하사했다. 귀화한 여진족에게 김씨 성을 내린 것은 12세기 여진족이 세운 금(金) 왕조에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여진족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하나도 없는 것으로 전한다. 족보가 대량 나오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반 후인데, 그때 사대주의가 만연한 조선에서 ‘만주 오랑캐’라고 하면 멸시의 대상이었다. 여진족의 김씨는 그의 조상이 귀화인이라도 이를 감췄을 것으로 보는 게 통설이다.
조선의 일부 김씨도 만주 8기에 귀속되고 있었다. 요녕성(遼寧省)에서 발굴된 《김씨통보(金氏通譜)》에 따르면 김씨의 제4대 김유성(金有成)은 순치(順治) 2년(1665) 정황기(正黃旗)의 내무부 대량장두(大糧庄頭) 즉 곡물생산지의 관리인이었다. 김씨 가족은 명나라 말 세조 김포감에 의해 대륙에 이주하고 있었다. 이 통보가 발굴 되던 1980년대 말 김씨 가족은 벽지의 시골에서 농부로 살고 있는 14대손 김경지(金慶志)에 의해 보존되고 있었다.
김씨처럼 만족 8기의 조선인(人丁, 인부)는 또 한씨, 이씨, 박씨 등 40여개나 되며 와중에 대량의 조선인 성씨는 8기의 포의(包衣) 즉 노복에 대응하고 있었다고 《만족씨족통보(滿族氏族通譜)》에 기재되었다.
조선인의 김씨는 이로써 새로운 씨족으로 만족씨족의 계보에 들어가며 조선씨족의 계보에서 퇴장하는 것이다. 설사 조선인의 후예가 원래의 조선 성씨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그의 조선반도의 이주민 신분을 더는 가려내기 힘들다. 수백 년 세월이 흐르면서 풍속과 언어 등이 모두 현지의 타민족과 동화(同化) 되었기 때문이다.
3백 년 전의 명(明)나라 말, 청나라 초의 조선인이 이러하거늘 하물며 8백 년 전의 원(元)나라의 고려인들임에랴. 고려인들은 일찍 13세기 때 벌써 중국 경내에 대량 천입하고 있었다고 옛 문헌이 기재하고 있다.
대륙에 이주한 고려인은 일부의 문헌에 약간의 인명을 남겼을 따름이다. 그들이 한데 모여 공동체를 이뤘던 옛 마을은 대부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려촌', '고려골(高麗溝)', '고려골목(高麗巷)' 등 옛 지명처럼 고려인의 옛 마을 옛 이야기를 가까스로 떠올리고 있다.
《김씨통보(金氏通譜)》나 박씨의 가계도는 그들의 조선인 후예의 신분을 족보로 전승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김씨나 박씨 등이 모두 조선인 후예의 신분을 금방 족명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륙의 방방곡곡으로 산재하는 옛 박씨 마을이지만 하북성 평천현의 박씨는 만족이며 길림성(吉林省) 서란(舒蘭)의 박씨와 흑룡강성(黑龍江省) 수화(綏化)의 박씨는 한족이다. 또 하북성 평천의 박씨는 만족이지만 하북성 관성현(寬城縣)의 박씨는 조선족이다.
해와 달이 바뀌어도 지킴이처럼 박씨 마을의 복판에 서있는 고목이 있었다. 이 느릅나무는 박씨의 선인(先人)이 옛날 박장자(朴杖子)에 정착하면서 일부러 말뚝처럼 박아 심은 나무라고 한다. 이웃한 김장자의 가문비나무처럼 역시 옛 전설을 마을에 심고 전하고 있지만, 박씨의 후손은 어느덧 족명을 개명하고 다른 계보의 ‘성씨’로 잇고 있는 것이다.
네, 조선반도의 김씨와 박씨는 국 대륙에 이주한 후 여러 민족 신분으로 바뀌어졌습니다.
“북성의 김씨는 왜 조선족의 계보에서 사라졌을까”이런 제목으로 렸습니다.
[퀴즈 한마당 코너]
MC: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계속하여 성씨와 관련한 이달의 퀴즈를 내어드리겠습니다.
반도의 고유한 성씨라고 하는 박씨는 중국에도 있으며 또 여러 족명 즉 여러 민족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데요, 그러면 박씨는 중국에서 어떤 족명으로 되어 있겠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반도의 고유한 성씨라고 하는 박씨는 중국에서 어떤 족명 즉 어떤 민족의 이름으로 되어 있겠습니까.
네, 중국 길림성 연길시 박철원 청취자는 중국에 사는 박씨의 족명과 함께 본인이 알고 있는 박씨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편지 사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반도의 고유성씨 박씨는 중국에도 있으며 또 여러 족명으로도 되여있는데 만족, 한족, 조선족 등 족명으로 되여 있습니다.
물론 조선족의 박씨가 제일 많을 것이고 타민족의 박씨 선조들도 조선반도와의 연역이 있다고 봅니다.
저의 친구인 박씨성의 한족 박경천(朴景天)은 고종할아버지가 조선 땅에서 바다 건너 산동 땅에 와서 살면서 이어온 후손이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사전 ‘사해(辭海)’를 찾아보니 박(朴)씨는 조선족 성씨라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네,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MC: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번,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 중앙방송총국 아시아아프리카지역 방송센터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말]
MC: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은옥(MC),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취자의 벗]과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취자의 벗]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