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베이징 정원내의 길상물은 여러가지가 있는바 담, 복도, 대문, 실내장식 등 건축과 물건에서 표현되며 그 길상물의 모양은 동물, 식물, 용기, 신선 등을 포함한다. 이와같은 길상물은 베이징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고 또한 베이징 주민들이 이런 길상물에 대한 기탁을 표출하고 있다.
고대 베이징 정원내의 길상물은 동물과 관련된 종류가 아주 많았다. 동물류 길상물은 오늘날 우리가 볼수 있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상상해서 만들어낸 길상동물도 있다.
호랑이는 민간에서 "신의 짐승"으로 여겨지며 사람들은 호랑이의 용맹함으로 액막이를 하고 안정을 빌었기 때문에 일반 관원이나 귀족들의 집안에는 모두 "호랑이 신상"이 걸려 있었다. "호랑이"는 단지 주민들의 액막이에만 쓰인것이 아니라 실내의 각 부위에 장식용으로도 쓰였는데 어린이의 신발, 모자 등에도 호랑이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그 외 민간에서 사자는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짐승의 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고대 주택의 대문밖에는 사자동상이 많이 놓여져 있었다.
기린(麒麟)은 민간의 주택에서 보기 드문 길상물로서 보통 고등 왕부에서만 실체의 조각이 존재했을뿐 민간에서는 대부분 그림으로 표시되었다. 기린이 나타내는 길상의 의미는 하루 빨리 자손을 얻고 후손들의 만복을 기구하는 것이다. 자금성안의 "자녕궁(慈寧宮, 황태후가 살던 방)" 문앞에 놓여진 기린상은 일반 주민과 왕부에서는 만들수 없었다.
사슴도 제왕의 상징이다. 사슴의 鹿자는 복祿자와 같은 음을 내기 때문에 민간에서의 5복 즉 福, 祿, 壽, 喜, 財 중의 하나로도 여겨졌다. 때문에 사슴은 박쥐와 함께 복, 장수의 뜻을 상징했고 사슴과 학은 "학녹동춘(鶴祿同春)"으로 불려졌다.
원숭이, 역시 고대 베이징 정원내의 길상물중의 하나이다. 원숭이가 민가에서 길상물로 여겨진 것은 고대 국가에서 규정한 예식중 "王候"에서 기원된 것이며 따라서 오승은이 쓴 "서유기"중 손오공의 형상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원숭이"는 높은 관직을 상징했으므로 일반 민가에서는 원숭이가 단풍잎위에로 올라가는 그림을 걸어 승진을 빌었다.
백운관산문앞의 돌원숭이는 베이징인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산문앞의 돌원숭이는 경건한 제자들이 지나치게 만진 이유로 새하얀 한백옥이 까맣게 반질거리게 되었는데 이는 원숭이 길상물의 가장 좋은 사례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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