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균 선
흔히들 인생을 길에 비기여 인생려정이니 인생행로이니 하지만 또 다른 시점에 서는 한권의 책, 미완성일수밖에 없는 장편실화에 비길수 있지 않을가 싶다.
그러나 느낌과 생각대로 엮어지는 인생실록이 아니다. 각자가 써내려가는 인생 실화에서 매하루의 생활이 한단락으로 될것이다. 회억록이나 자서전은 기억의 지팽이를 짚고 추억의 비탈길을 오르면서 적어내려가지만 인생실화는 어디까지나 현재형으로만 서술할수 있을뿐 앞당겨 추측할수도 없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래일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모르고있다. 한것은 그 래일이란 수자가 없는 저축통장에 불과하고 날자가 없는 빈계약서에 불과하기때문이다. 오늘이 과거로 되고 래일이 오늘로 되여 지는 나날, 하루라는 그 한단락 혹은 그 한페지에 적혀지는 생명의 흔적이 그렇듯 소중하지만 사람들은 무심히 넘기기가 십상이다.
앞날의 매 하루는 이제 곧 다가올 오늘이다. 인생이 워낙 그리 길지 않으므로 간략한 서술이란 있을수 없다. 인생실화는 무수한 수정을 념두에 두고 초고지에 쓸수도 없으며 한글자도 고칠수 없다. 인생엔 그대로 실전이고 연습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일차성이다.
혹자는 인생실화란 한권의 쓸모없는 책이라고 말할수도 있다. 아무리 잘 쓴다해도 종당엔 한장한장씩 떨어져나가 바람처럼 사라져버릴것이기때문이라 한다. 혹시 그 한장이나 일부분을 주은 사람이 있다해도 책을 쓴이의 마음을 알아낼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한다.
물론 그 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것만이 아니라 책을 주어서 읽은 사람마저 이 대지에서 사라진다는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자기의 인생실화쓰기를 포기할수 없다. 포기한다는것은 곧 자기 생을 스스로 끊어버리는것과 같으니 누구나 꺼리는 일이다.
확실히 자기 인생의 한페지ㅡ하루의 생명운동을 잘 쓴다는것은 퍽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흔히 편안으로 자기 인생을 수식하려들지만 도를 넘은 편안은 무료함을 선물할뿐이며 그 무료함은 할일이 없다것만이 아닌 일종의 참을수 없는 시달림 이라는것을 느낄 때 그의 인생실화에 공백이 생길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바로 할일 없는 나날을 보내는것이기때문이다.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냥 불만하고 불평을 부리며 자포자기 할수는 없는것이다.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지 않는 사람에겐 결코 관대하지 않기때문이다. 절승경개의 산이 우리에게 다가올줄 모르기에 우리들이 다가가는것이 아니겠는가? 현시대는 행동하는 인간성, 노력형인간, 자기 관리에 근엄한 사람만이 살아남게 되여있다.
인간은 복잡하지만 정교하게 만들어진 예술품이며 교묘하게 꾸며진 조물주의 걸작이다. 아무리 위대한 정신도 결국은 조물주의 손에서 녹아난다. 이 모든것이 생명은 근근히 한권의 아무 쓸데없는 책, 실패한 책이 될수밖에 없는 운명을 결정한다. 물론 당신은 이 사실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사람은 비극작가의 태도로 위대한 쓸모없는 책, 실패한 책을 쓰고있다.
하는님의 앞에서 천지와 무한대한 시공간을 종이로 나와 그리고 중생들은 거대한 열정으로 끝없는 고난과 재난성적인 필묵으로 인간을 초월한 세계비극을 쓰고있다. 이 책은 심심한 정과 은밀한 책이다. 장막극에 제목이 없고 대서에 서명이 없다. 이 책의 독자는 오직 하느님이다.
나는 이제 얼마후 인간과 이 우주에서 사라진다는것을 너무나 명백히 알고있다. 그러나 나는 의연히 날마다 아득바득하고 노래를 부른다. 아무튼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상 하루하루 존재하면서 내 생각대로 살아간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나의 존재를 과시할 것이며 한마당의 생명에 미안하지 않게 할것인가?
나는 알고있다. 언젠가는 무궁한 허무한 밤의 바다에서 버림을 받는다는것을, 그러나 나는 생각하며 분투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러지 않으면 나의 머리가 너무 억울해 할것이고 나의 정신과 심령을 헛되이 소모해버리는것이 아닌가? 나는 이 세상에 왔다. 나는 모든것을 바친다. 나는 안다. 나와 같은 모든 생명들이 한번가면 다시 돌아올길 없는 심연속에 묻혀버린다는것을,
그러나 나는 의연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분노하고 미워하며 생각의 준마를 달린다. 그러지 않으면 열정으로 충만된 넋이 안녕할수 있겠는가? 나는 알고있다. 생명은 쓸데없는 책이라는것을, 그러나 나는 고집스레 그냥 써내려간다. 나는 이 세계속에 한분자이고 세계는 곧 나이기때문이다.
오늘은 어제로 말하면 곧 래일이고 래일로 말하면 곧 어제이다. 오늘을 잘 포옹하는것은 바로 래일을 포옹하는것이라 오늘을 잃으면 곧 래일도 잃게 될뿐만 아니라 어제도 함께 잃는것이 된다. 그래서 당신의 과거를 읽으면 당신의 오늘을 알수 있고 당신의 오늘을 보면 곧 당신의 래일을 미리 읽을수 있다고 하는것이다.
흘러가버린 래일을 두고 후회만 하는 사람은 래일도 후회할것이다. 오늘이 더없이 아름답거나 의기저상하거나 오늘이 더없이 쾌락하거나 슬프거나 다른 사람이 분담할수 없다. 그것은 오직 당신만의 오늘이요 다른 사람도 그만의 오늘을 가지 고있기때문이다. 누구나 자기의 오늘을 가지고있지만 그 오늘은 천태만상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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