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화 프로필
1978년 3월 길림성 서란 출생.
현재 소주 모 전자회사 근무
연변작가협회 회원
소설 <바늘>, <창>, <우울한 그녀> 등 십여편
수필 <죽은 자의 노래>, <당신의 날개> 등 20여편 발표.
제25회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제2회 중국조선족수필문학상,
도라지 장락주문학상 등 수상.
[문소리]
이진화
툭, 하는 기척소리가 났다.
한참을 뒤척거리다 겨우 잠이 들었는지라 그 소리가 여간 귀찮고 짜증나는것이 아니였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왜 이렇게 부산을 떠는거지 하면서 그녀는 속으로 아줌마를 나무랐다.
이불을 머리우까지 덮어쓰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다시 미약하게 딸각, 딸각 하는 소리가 났다. 발자국소리도 둬번 들리는것 같고 작은 금속물체가 서로 마찰하는 소리가 딸각딸각 끊기지 않고 계속 들려왔다. 그때에야 비로소 지금은 날도 새지 않은 이른새벽이라는것과 불도 다 끈 거실에서 누가 무엇을 하고있을가 하는 생각에 경계심이 부쩍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아마도 저쪽 방에서 자고있는 아줌마가 화장실을 쓰는가부다 했지만 여직 들은 그 소리들은 절대로 변기의 물을 내리는 소리나 화장실 미닫이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아니였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방금까지 쏟아지던 잠기가 한시에 가셔져 자리를 벌떡 차고 일어났다. 방안은 불을 켜지 않은 상태라 어둡긴 했지만 카텐을 반만 드리워서 어느 정도 사물의 륜곽은 알아볼수 있었다. 우선 안방문부터 잠그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거울앞 화장대에 놓았던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경찰신고전화 110을 누르려다말고 혹시나 해서 다시 폴더를 닫고 문앞에 쪼크리고 앉았다.
그때였다. 문틈사이로 정체 모를 불빛이 힐끗하고 스쳤다. 삽시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것은 절대로 골고루 부드럽게 퍼지는 거실의 조명이나 도로우를 달리는 차량이 뿜어내는 헤드라이트불빛이 아니였다. 그것은 분명 작은 광원체가 뿜어내는 차거운 불빛, 아마도 손전등 같은것이리라. 머리카락이 쭈삣 섰다. 그래도 애써 진정하고 혹시 정전이 아닌지, 아줌마가 손전등을 켜고 무엇을 찾는건 아닌지 확인부터 해야 했다. 설사 정말로 도적이 들었다고 해도 일단 자고있는 아줌마부터 깨워야 되지 않는가. 집에는 남편도 출장가서 없고 이제 겨우 한살 난 딸아이와 나, 아줌마까지 고작 녀자 두명에 갓난애기 한명이였다.
잠시 쌔근쌔근 잠자고있는 딸아이를 돌아봤다. 그리고 급기야 전화폴더를 열어 2번 단축키를 눌렀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거실 탁자우에 놓여있던 전화벨이 자다가 놀란 짐승처럼 요란스레 마구 울어댔다. 이제 무슨 돌발상태가 벌어질지 몰라 가슴이 후두둑 뛴다.
몇초가 지났을가. 저쪽 방문이 삐걱 열리는 소리가 나고 아줌마가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았다.
"쉬고있었어요?"
"냐."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
"못 들었는데."
"밖에 누가 있는것 같아요."
"누구? 없는데."
거실벽의 스위치를 누르는 소리에 이어 아줌마가 출입문을 닫는 소리가 났다. 잠시후 방문을 열고 아줌마가 들어섰다.
"문을 잘 닫지 않아 바람에 열린것 같소."
"문이 열려있어요?"
"냐. 문이 열려있고 쇠고리가 떨어졌습데."
"그게 바람에 끊길리가 없지요. 분명히 누가 들어왔을거예요."
"글쎄 말이요. 물건은 다 제자리에 있긴 하다만."
시계를 보니 그때가 새벽 다섯시였다. 한참후 날이 서서히 밝기 시작하고 그때까지 밖에서 별다른 기척은 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들어오기를 시도했고 전화벨소리에 놀라 달아났음이 분명했다. 지은지 오래된 낡은 건물인지라 출입문은 쉽사리 열었는데 문을 안쪽으로 미는 순간 거기 걸려있던 쇠고리 하나가 뜻밖의 장애물이 되였던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비틀어 마스는 과정에 딸각 소리가 났고 그 기척에 내가 잠에서 깨여났던것이다. 때론 작은 쇠고리 하나가 그렇게 뜻밖의 효력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난 어째 하나도 아이 무셉소. 하나님 보호해준단 말이요."
파랗게 질려있는 나에게 독실한 크리스천아줌마가 여유작작 한마디 했다. 여기서 웬 하나님소리가 나오지 하면서도 정작 그 얼굴에 피여나는 평화가 나는 어쩜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아침이 오기까지 그 몇시간은 무슨 정신으로 앉아서 버텼는지도 모른다. 바닥에 떨어져 동강이 난 쇠고리, 그 차거운 물체를 손에 움켜쥐고 나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누군가 우리를 엿보고있음이 분명했다. 아니면 그 허다한 날중에 하필 남편이 출장간 날을 택했을가. 알수 없는 눈동자, 어쩌면 그 한쌍의 숨은 눈동자가 오늘낮도 내뒤를 미행할지도 모른다.
도적일가? 무엇이 욕심났고 무엇이 필요했을가? 출입문에는 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쇠고리 하나만 아니였다면 나는 그 모든것이 단순하게 내 착각이였다고 새벽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아예 신경을 끄고있을지도 모른다.
문은 이미 열렸는데 그 문으로 누가 들어왔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도적이라면 왜 하필 보기에도 허술한 이 동네를 눈독 들이고 그것도 새벽 다섯시란 그 시간을 택했을가.
의문들이, 쇠갈구리 같은 그 하나하나의 의문들이 내 신경을 고집스레 뚫고 악착스레 매달려서 흔들거렸다.
"어제 몇시에 들어왔소?"
아침밥도 먹지 않고 출근을 서두르는 나에게 아줌마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엊저녁 나는 무엇을 하고 집에는 또 몇시에 들어왔지? 그제서야 나는 간밤에 일어난 일을 돌이켜보게 되였다.
어제저녁 S거리에 위치한 맥주바. 나는 거기 있었다. 왜 갑자기 귀신한테 홀린것처럼 내가 그런 곳을 혼자서 찾아갔던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은 요란한 음악이 쿵쾅쿵쾅 흔들어대는 그곳에서 나는 20대처럼 요란스레 머리를 흔들고 허리까지 마구 비틀어대며 광란의 춤을 췄다. 맥주를 마셨다. 와인도 마시고 양주도 마셨다. 저주롭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조명들이 나를 어지럽게 하고 깊이 잠자던 세포 하나하나를 흔들어깨워 웃음이 보물처럼 터지게 했다. 너무 흥분해서 춤을 추다가 그대로 뒤로 벌렁 나자빠지기까지 했다. 그때 내 주위에서 휘리릭하던 날라리들의 휘파람소리, 오우― 오우― 하며 녀자들이 광분하는 소리, 그랬다. 어제저녁, 그것은 나에게 속하는 완벽한 밤이였다. 한결 넓어져서 달 하나가 걸릴수 있던 밤. 새카맣게 어두워져 별찌가 하늘을 헤가를수도 있던 밤.
"아마 열한시쯤 됐을거예요. 시계를 안 봐서 모르겠는데. 아홉시 되면 쿠아 깨워 밥먹여요. 그럼 수고하시구요."
진심으로 관심과 걱정이 어린 아줌마의 얼굴을 피하며 다급히 문을 나섰다. 저녁 늦게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혼자서 애 보고있었을 아줌마를 생각하니 여간 미안한것이 아니였다.
어제저녁 정확히 나는 열두시 십분이 되여서야 집에 도착했다. 집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잠시나마 벅차게 안고있던 그 투명하고 엷은 즐거움이 어디 부딪치기도전에 저절로 산산이 부서져 깨여졌다. 그리고 나는 시계를 쳐다보았지. 점수가 이상하게 나온 학교시절 내 자신의 성적표를 바라보듯 의아하고 호기심이 가득 찬 눈길로.
남편이 없는 틈을 타서 녀자 혼자 외출했다는것. 질벅하게 미친듯이 혼자 놀아대고 술까지 퍼먹었다는 사실. 일편단심 하나님을 따르는 아줌마의 순한 양 같은 그 눈길에 비친 나는 구경 어떤 모습일가. 구겨지고 망가지고 죄 많은 얼굴, 언젠가는 아줌마의 말마따나 류황불에 던져져 죄의 대가를 치를지도 모를 그런 한심하고 처참한 몰골이겠지. 그래서 아줌마는 매일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고있다고 한다. 나의 죄를 용서하라고. 보이지 않는 눈을 어서어서 뜨게 해달라고.
언젠가 나는 꿈에 땅밑의 세상을 걸었다. 아줌마가 입구에서 나를 반겨주었고 어딘가로 나를 인도했다. 그것은 해빛이 비추지 않는 어둡고 낮은 공간이였고 숨막힐듯 갑갑한 그 환경에서 나는 어디론가 자꾸자꾸 걷고있었다. 좀체로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던 거기, 수많은 추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살고있고 드디여 아줌마의 얼굴마저 보이지 않던 거기, 지옥이였을가.
사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하느님도, 부처도, 신령도, 보살도. 나는 워낙 적자생존의 치렬한 고리속에 인간이란 이름으로 태여난 하나의 악한 생령일수 밖에 없고 내가 하는 모든 짓거리들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어차피 내가 피해서 갈수 있는 길은 아니였다. 내가 지은 죄가 있다면 그것은 내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은 죄, 내 스스로를 망가뜨린 죄, 아름답고 순수하게 피여날수 있는 그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거꾸러지고 넘어지기를 원한 죄, 그것밖에 없다. 세상사람에 대한 원망을, 내 마음대로 안되는 세상을, 그 모든것을 부시고 망가뜨리고싶은 마음을 돌려 나는 그 칼날을 나 자신에게 꽂았을뿐이다. 만약 그것이 죄라면, 그것이 바로 내 스스로 치러야 할 죄라면 나는 구경 어디로 피해서 어디로 도망간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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