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균 선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 아무도 알수 없는것처럼 어떻게 살아야 바람직한 인생의 자세일지 묘망하기만 하다. 사람이 일생을 무난하게 마치며 고종명하는것은 참으로 축복받은 인생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붐비는 인생마당에서 국외인으로 살수 없고 더구나 진공속에서 살수 없다, 부딪치고 넘어지고 피터지고 상처속에 고름을 짜내며 아득바득 인생의 비탈길을 톺게 되였다.
인생길을 초행의 등산에 비유할수 있다. 험준한 산에 오르는 일은 신나기에 앞서 힘겨운 생명운동이라는것을 절감하게 된다. 대저 등산은 산기슭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오르는자가 제일 높이 오른자이다. 잘 닦아진 길로 가마에 앉아 올라가거나 자동차를 타고 오르는것은 아무 멋도 없는 등산이다. 직승기를 타고 산정에 훌쩍 오른것보다 더 싱거운 등산은 없을것이다.
자기 두발로 허위단심 올라야 산에 오르는 멋과 맛을 알수 있다. 산에 오르더라도 정상만 바라보지 말고 발밑을 살피는것이 요긴하다. 정상이 아득할수록 마음을 단단히 다잡아야 한다. 성급함이 걸음을 가볍게 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쉬지는 말라. 맨앞에서 오르면 일등을 할수 있지만 뒤따르는 사람보다 안전도는 훨씬 낮다. 밤새도록 걷는 사람이 제일 먼저 산정에서 장려한 일출을 맞을것이다.
따스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찬눈길로 세상을 투시하라. 그러나 필요없이 너무 많은 내막을 알려하지 말라. 그러면 누구나 꺼리는 사람이 될것이다. 세상도는 형편에 눈이 어두워도 안되지만 알지도 못하는 새 노래에 손벽을 치는 싱거운 짓도 삼가해야 한다. 서성거리는 의혹이 우유부단을 맞아올수 있지만 의혹이 만사통인것은 아니다. 세상만사는 좋고 나쁨이 상대적이다. 그래서 화복이 무상하다고 한다.
인생을 살면서 적어도 자신에게는 성실해야 한다. 자기에 대해 충실해야만 다른 사람들을 사기치지 않을수 있다. 사람은 자기 결함에 성실함으로써 오히려 사랑스러운 점을 드러낸다. 제 약점이 드러날 때처럼 속상한 일은 없지만 자아수련에는 명약이 된다. 성실한 사람이 바보취급을 받는 현실이다. 성실이 이미 손해의 대명사로 되였기때문이다.
인간이 얼굴에서 내심까지 읽을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있다면 아무도 웃음속에 칼을 품은 연극을 놀지 못할것이다. 선량한 한 마음은 황금보다 더 귀중하다. 죄악적 행각으로 자기 욕망을 만족시키려고 성실을 잃는다면 인간은커녕 그 무엇도 아니다. 자기를 기만하는 자들이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것을 직업으로 삼는다. 군자연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당신의 의견에 늘 동조한다해서 막역지우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누구나 웃음으로 대할수는 없지만 모두에게 등은 돌리지 말라.
생명은 촉박하고 세월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참고 견딜줄 알라. 인내야말로 운명을 좌우지한다. 인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빨리 걸으면서도 말이 없는 나귀의 미덕이다. 비는데는 쇠도 녹는다고 하지만 인내심도 모든 고난의 적설을 녹일수 있다. 진정 강한자는 끈질기고 초조함으로 기다림을 달랠줄 아는자이다. 참는다는것과 견뎌낸다는것은 의미의 차이만이 아니라 태도의 차원문제이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희망이 깨지면 인내를 지속시키라. 만약 당신이 꽃지는 현실에 참을수 없다면 결실의 미래도 잃을것이다. 허리아픈 김매기를 참아 내지 못하면 가슴이 뻐근한 풍년가을을 맞지 못할것이다. 그러나 첫번째의 귀?을 맞고 두번째, 세번째 귀?을 기다리는것은 인내가 아니라 나약이고 자존의 무덤이다.
일하는자는 고생을 먹으며 살고 놀고먹는자는 향락속에서 사는 인간세상이라도 자기가 먹을 밥은 자기가 벌어들여야 한다. 사람은 그저 먹고 변소에 가기 위해서 창조되지 않았다. 인간의 생명력은 아낌에서 오는것이 아니라 로동속에 소모에서 온다. 명상하고 느끼며 꿈꾸는것도 땀흘리며 일한뒤에 자연스레 오는것이다. 로동은 땅에서 축복을 파내는 작업다. 괴로울 때, 고통스러울 때 가장 좋은 량책은 일손을 잡는것이다.
가장 바람직한것은 자기가 할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인생자세이다. 로동으로 먹고사는 사람에겐 로동이 본성이고 공먹고 놀며사는 사람에게는 로동이 참을수 없는 질곡이다. 뜬 행복은 비리로 딸수도 있지만 진정한 행복은 로동이 구워낸다. 종래로 자기 하는 일에 재미를 붙인 사람들속에서 성공이 잉태되였다.
즐거운 인생이란 사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기쁨을 캐며 사는 인생이다. 구슬땀 휘뿌리는 로동속에는 잡근심이 둥지틀 자리가 없다. 하지만 일하며 사는 기쁨이 따로 있다는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죽는다. 이밥을 먹으면서 논김매는 농부를 련상하는 사람은 분명 지성인이다. 안일은 마음을 썩이고 로동은 육신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일한뒤 땀들이는 휴식만큼 개운한것이 없다. 늘 노는자는 휴식의 의미를 영원히 알수 없다. 온하루 그늘밑에서 부채질한자는 밤에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법이다. 일하며 사는 근로자들에게는 수면제가 낯선 약일수밖에 없다. 습관은 자신이 키운 마귀로서 성격배양도 맡기고 나중에 운명도 맡기게 한다. 움직일수 있는 때까지 일하려하는 국민만이 미래가 있는 국민이다.
울지 않는 아이만 볼수 없다. 인생은 자재적일수 없으므로 자기 하고싶은 일만 골라할수 있도록 넉넉하지 않다. 어떠한 연회상에든 구미에 맞지 않는 채가 있는법이다. 할 일이 없다고 변명하지 말라. 변명이 해석이 될지는 몰라도 결코 정당한 리유자체는 아니다. 고난은 시련의 험난한 협곡이다. 비상한 고난이 비상한 의지를 련마시킨다. 고달픈 인생길이여도 락이 장락일수 없고 고생이 장고생일수 없다. 모든 것이 끝이 있는법이다. 인생에는 어떤 핍박이 필요하다.
인생에는 유모아도 있어야 한다. 유모아가 없는 생활은 사막과 같고 물이 없는 저수지와 같다. 유모아를 모르는 남자는 련애에는 맹꽁이 될것이다 유모아가 없는 생활은 기름이 떨어진 등잔과 같다. 유모아는 지혜의 명함장이요 사상의 불꽃이다. 유모아는 여유로운 마음이 없으면 지어내지 못한다. 유모아감은 지성인들의 일종 풍도이다. 유모아는 웃기는것이 아니라 웃음속에서 찔림이 있게 하는것이다. 눈물 머금은 유모아야말로 유모아의 수석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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