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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거미이야기-1
2009-04-08 17:48:02               
cri

《이 집이…》

《그래요. 저의 집이예요. 그런데 이렇게 만날줄은…》

나는 손에 쥔 걸레를 만지면서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앉으시죠.》

《괜찮아요.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일은 나중에 하시고 잠간 앉아 얘기나 나누자요.》

나는 쏘파모서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이쪽으로 편히 앉으세요.》

《괜찮아요. 집이 참 좋군요.》

《빛갈뿐이예요. 커피 드시겠어요?》

《아니…》

《그럼 콜라 드시겠어요?》

《괜찮아요.》

나는 송구스러워서 그저 괜찮아요만을 곱씹었다. 녀인은 랭장고에서 콜라 한병을 꺼내 병마개를 따서 나의 앞에 놓아주었습니다.

《파출부로 일한지 오래됐나요?》

《북경에 와서부터 했으니 인젠 해수로도 2년이 돼요.》

《그럼 파출부로 일하면서 아이를 피아노공부 시키고 있다는 얘긴가요? 피아노공부에 드는 돈이 엄청나겠는데…》

《집에서 애아버지가 피아노공부에 드는 학비는 보내오고 저는 생활비와 세집값을 해결하는 셈이지요.》

《그 돈만해도 꽤나 들겠는데 파출부 일을 해서 그 돈이 마련되나요?》

《한시간에 5원씩이니까 하루에 여러집을 다니며 10시간정도 하면 세집값과 생활비 정도는 나오죠.》

《힘드시겠는데요?》

《힘들어도 할수 없지요.》

《애아버지는 무슨 사업을 하시는 분이신가요?》

《음악선생이얘요.》

《로임만 가지고는 피아노공부에 드는 학비를 대기 힘드실텐데요.》

《그런대로 두루두루 맞춰가고 있어요.》

이때 웃층에서 그 녀인의 딸애가 내려왔습니다. 이미 나하고 면목이 있어 그 애가 먼저 인사했습니다. 그러곤 녀인보고 물었습니다.

《왔다는 청소부는 어느 방에 있나요?》

이말에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걸레를 그 애 몰래 쏘파밑에 밀어넣었습니다. 아들과 한반인 녀인의 딸앞에서 청소부신분으로 나설수 없었습니다. 눈썰미 빠른 녀인이 내 마음을 인차 짚어냈습니다.

《아직 안 온 모양이다.》

《피아노선생이 아까 문을 열어주었는데요.》

《아마 볼 일이 있어 잠간 밖에 나간 모양이구나.》

녀인이 내 사정을 봐주느라고 그렇게 말했지만 그 순간 내 자존심은 여지없이 허물어져 내렸습니다. 곤혹한 당근질을 당하는 느낌이였습니다.

《청소부는 왜 찾느냐?》

녀인이 딸에게 물었습니다.

《방금 조심하지않아 꽃병의 물을 쏟쳤는데 바닥을 닦아야겠어요.》

《그만한 일은 너 절로 하려무나.》

《피아노치던 손으로 걸레를 쥐겠나요?》

《지금 애들은 다 저래요.》

녀인은 몸둘바를 모르는 나에게 어이없는 웃음을 적당히 지어보이고는 딸과 함께 이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는 더는 그 자리에 있을수 없었습니다. 하여 조용히 문을 열고 그 집을 나왔습니다. 피아노치던 손으로 걸레를 쥘수 없다던 그 녀인의 딸이 한 말이 가슴을 아프게 자극해 왔습니다.

나의 아들도 피아노를 치지만 그러나 그 애는 짬만 나면 날 도와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방 청소도 하고 설걷이도 합니다. 양말이나 속옷같은건 자기 절로 씻습니다. 피아노를 치는 손도 살아가는 사정에 따라 귀천이 따로 있는 모양입니다. 걸레 한 번 쥐어서는 안되는 손이 귀한 손이라면 우리 애처럼 걸레나 행주를 쥐는 손은 천한 손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애 손도 세상 귀한 손입니다. 귀한 자식 귀하게 키우라는 말처럼 귀하게 키우지는 못해도 우리 애는 지금 귀염성있게 자라고 있습니다.

북경으로 떠나 오던 날 남편은 역에서 아들의 손을 꼭 잡으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넌 이 손을 그저 손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베토벤의 손이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휘여잡은 운명교향악을 울리게 했다면 너의 이 손은 장차 네 인생의 새로운 악장을 울릴 손이다.》

인생의 새로운 악장을 울릴 손, 내 아들의 손은 바로 그런 손입니다.

《어머머머, 저걸 어쩌나…》

엄마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뽑았습니다. 엄마는 지붕에서 내려온 뱀 한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며 거미를 노리고 있는 것을 보았던것입니다.

《우쉬우쉬…》

엄마는 두 팔을 내저으면서 밭에서 새를 쫓을 때 내던 소리를 냈습니다. 새를 쫓는 소리로 뱀을 쫓자니 참으로 코막고 답답합니다. 엄마가 발을 동동 구르며 열심히 새를 쫓는 소리를 질러대니 거미를 노리던 뱀이 스르르 지붕너머로 사라졌습니다.

《어휴…》

그제야 엄마는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땅바닥에 무너지듯 주저앉았습니다.

저녁에 아버지한테 엄마가 뱀 말을 하니 아버지는 하품 문 소리로《새끼가진 놈 쉽게 안 당해》라고 말하곤 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그 녀인의 집에 갔다온 이튿날 아침, 나는 학교정문앞에서 어김없이 그 녀인을 만났습니다. 그 날따라 녀인은 차에서 내려 나한테 다가왔습니다.

《그날 죄송해요》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나온 제가 오히려 죄송해요.》

《어디가서 잠간 이야기나 나눌까요?》

《그러지요.》

《저의 차안으로 가시죠.》

《할 이야기가 있으면 그냥 여기서 하시죠. 바깥 공기가 훨씬 좋은데요.》

돈을 주면서 앉으라해도 그 녀인의 차엔 앉을수 없다는게 그 때 나의 오기였습니다.

《청들 일이 하나 있는데 자주 우리 집에 와줄수 없겠나요?》

천만에 말씀. 모르고 한 번이지 난 다시는 안가요!

《청소부로 와달라는게 아니얘요.》

청소부가 아니면 뭐로? 보모로? 아니면…

《그저 같은 학부모신분으로 자주 놀러오면 고맙겠어요.》

같은 학부모?

《다른 뜻은 아니구요. 북경에서 같은 조선족 학부모를 만난다는게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요.》

난 그런 반갑다는 마음을 가져볼 여유가 없는 사람이얘요.

《사실 애 공부 때문에 일가친척이 하나도 없는 북경에서 홀로 보낸다는게 얼마나 외로운지 모르겠어요.》

외롭다?! 하긴 그렇겠지. 허구헌날 하는 일없이 궁궐같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느라면 외롭기도 하겠지. 그러나 난 외로울새도 없는 사람이지. 하긴 가끔 남편의 품이 생각날 때도 있지만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그리움이야.

《그저 자주 놀러와서 말동무를 해주면 파출부로 일하면서 받는 보수보다 더 드리겠어요.》

술을 마시면서 말로 안주한다는 말이 있다더니 나보고 외로움을 달래는 말동무가 돼달라구? 웃기네 정말. 이봐요, 아무리 돈 있고 잘산다고 해서 사람 그렇게 보면 못써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세상 비웃어도 가난만은 비웃지 말라고.

《저의 말을 혹시 다른 뜻으로 오해하고 계신지…》

나는 녀인의 말을 가차없이 잘라버렸습니다.

《말동무를 찾으시려면 구연단에나 가보세요. 구연단 배우들은 말이 변설이니까요.》

그러곤 나는 자리를 떴습니다. 자전거를 타고가다가 나는 내 두빰으로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뒤늦게야 감촉했습니다. 나는 울고 있었던것입니다.

그 뒤로도 그 녀인은 학교정문앞에서 나를 만나면 그냥 예전과 다름없이 목례를 보냈습니다. 나도 그저 목례로 답례했습니다.

어느덧 락엽이 지는 마가을이 왔습니다. 북경에서 두 번째 맞는 마가을입니다. 올해 북경의 마가을엔 어디서 날아왔는지 까마귀의 청승맞은 울음소리를 시 중심에서도 자주 들을수 있습니다. 북경석간에는 실린 글은 북경에 까마귀가 떼를 지어 나타난 것은 북경의 쓰레기 처리장에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들이 그냥 로천에 방치되여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까마귀는 썩은 것을 먹기좋아하기에 조류중에서 《청소부》로 불리우는 익조라고 하지만 도심에서 까마귀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희한스러우면서도 어쩐지 기분이 께름직합니다. 섬찍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날 아침 아이를 자전거뒤에 앉히고 거리로 나오니 어디선가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길가던 한 늙은이가 그 소리를 듣더니 침을 역정스레 세 번 내뱉으며 뭐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저 할아버지가 왜 저래요?》

아이가 물었습니다.

《까마귀소리를 듣고 기분 나쁘다고 그러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침을 아무데나 뱉으면 돼요?》

《글쎄 말이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는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맘때면 남편은 출근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입니다. 전화를 두 번 쳤지만 신호음만 갈뿐 받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녀동생 집으로 전화를 하니 마침 동생이 받았습니다.

《나 언니다…》

《언니 막 전화를 하려던 참이얘요. 언니 빨리 집에 와야겠어요.》

녀동생의 다급한 소리에 몸이 오싹해났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니?》  

《아저씨가 뇌익혈로 쓰러졌어요.》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나는 무작정 그 길로 역전에 가서 그날 연길행 기차표를 끊었습니다. 기차표를 끊고나니 아들이 걱정되였습니다. 늙은 량주만 사는 주인집에 맡길수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하는 애를 데리고 갈수도 없었습니다. 막상 급한 목을 당하니 그래도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 녀인이였습니다. 지난번에 자주 놀러오라고 하는 그 녀인의 청을 몰인정하게 거절해버린 것이 못내 후회되였습니다.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고려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내가 체면불구하고 그 녀인의 집으로 찾아가 사정이야기를 하자 그 녀인은 두말없이 내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허리를 여러번 꺽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곱씹었습니다. 정말 고맙게만 느껴지는 녀인이였습니다.

남편은 조용히 병상에 누워있었습니다. 말을 할수 없었고 두눈도 뜰수 없었습니다. 곁에서 하는 말은 알아듣는지 가끔씩 고개를 약간씩 움직였습니다.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보일 정도로 여윈 남편의 몸을 만지며 나는 울고 울었습니다. 남편은 낮에는 출근하고 밤이면 아이의 학비를 버느라고 가정교사로 나갔습니다. 쉬는 날이 따로 없었습니다. 집에 가 보니 랭장고에는 먹다남은 김치와 고추장밖에 없었고 방한구석엔 빈 라면상자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혼자 살면서 때시걱을 그냥 라면으로 에때운 모양입니다. 남편은 자식의 출세를 위해 혼신을 다 바쳤습니다.

남편은 조용히 병상에 며칠 누워있다가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그이는 세상을 떠나면서 입가에 애써 흐뭇한 미소를 떠올렸습니다. 그 미소는 아들이 떠올리게 한것입니다. 그날 나는 녀동생의 휴대폰으로 북경에 있는 그 녀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마침 애가 학교에서 돌아와 있었습니다. 나는 아들보고 지금 곧 전화에 대고 피아노를 쳐보라고 했습니다.

《왜 그래요?》

아들이 물었습니다. 나는 남편이 운명직전이라는 말을 아들에게 할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먼곳으로 출장 가시게 됐는데 네가 치는 피아노소리를 록음해 가지고 가려고 그런다.》

《아버지 곁에 있나요?》

《출장준비를 하느라고 잠간 어딜 나가셨다. 어서 네가 가장 잘 치는 곡을 몇곡 치거라.》

《어머니, 아버지보고 출장갔다 돌아오실 때 북경에 꼭 들르라고 전해주세요. 아버지 보고싶어요.》

아들은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휴대폰을 남편의 귀전에 바싹 가져다 댔습니다. 남편의 얼굴표정은 변함없이 조용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지나 남편의 눈귀가 촉촉이 젖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남편은 아들이 치는 피아노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남편의 입가에는 알릴락말릴락하게 흐뭇한 미소가 실렸습니다. 남편은 그 미소를 지닌채 떠나갔습니다. 남편은 조명이 황홀한 무대에 피아노연주가로 당당하게 나선 어엿한 아들의 모습을 두눈에 담은채 떠나갔을것입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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