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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마지막 한수
2009-04-23 17: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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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어처구니없는 생각만 떠올리면서 시간 끌것 없다. 그는 인도교 란간곁으로 다가갔다. 고속도로로 차량들이 아까보다는 좀 뜸하게 오가고 있었다. 그는 뼈도 추스리지 못하게 깔아뭉갤 육중한 트럭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 트럭이 나타나지않고 승용차들만 시야에 들어왔다. 승용차에 치였다가 죽지않고 병신만 되면 그는 이중 지옥에 떨어진거나 다를바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트럭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고속도로로 달려오던 자그마한 트럭에서 직경에 한메터가량되는 둥근모양의 광주리 하나가 떨어졌다. 도로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가던 광주리가 뚜껑이 열리더니 그안에서 노란 물체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첫눈에 무슨 과일인가고 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 노란 물체들은 움직이는 생명체였다.

병아리였다. 달려오던 차들이 끼익하고 귀청을 아프게 긁는 소리를 내면서 급정거했다. 노란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소리를 질러대면서 고속도로에서 이리 몰렸다가 저리 몰리면서 우왕좌왕한다. 순식간에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멈추어선 차들은 경적을 울려댔다. 그러나 병아리떼는 자리를 내주지 않고 한곳에 몰려서 삐약삐약 소리만 질러댄다.

참으로 재미나는 광경이다. 병아리마저 몸보신에 좋다고 고아먹던 인간들이 살아 움직이는 병아리앞에서는 어쩌지 못하고 제발 길을 내달라고 경적만 울려대는 것이 희한했다. 인간이 병아리앞에서 그렇게 약할줄은 몰랐다. 병아리지만 그것이 엄연한 생명체이기에 인간은 차마 그것을 깔아뭉갤 수 없었던 것이다. 병아리와 인간이 대치하고 있는 희한한 광경을 지켜보면서 그는 대학시절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

독일군 탱크가 굴러온다. 수류탄을 안고 탱크로 돌진하다가 쓰러지는 군인, 탱크는 쓰러진 군인을 깔아뭉개면서 그냥 오만하게 굴러온다. 무적의 거물앞에 마음의 방선까지 무너져내린 군인들이 무기를 내던지고 도망친다. 탱크는 도망가는 군인들을 화력으로 쏘아눕히지 않고 뒤쫓아가면서 한사람 한사람씩 깔아뭉갠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군인들. 한 녀위생병이 부상당한 병사를 부축해 가면서 남자군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나 남자군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도망치기에 여념이 없다.

탱크가 부상병을 부축해 가는 녀위생병을 발견하고는 머리를 돌려 천천히 굴러온다. 공포에 질린 녀위생병의 두눈이 클로즈업된다. 도망갈데 없는 쥐를 놓고 양공질을 하는 고양이처럼 탱크는 이리저리 피하는 녀위생병을 희롱하듯 녀위생병의 앞길을 막다가도 길을 내주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속력을 내여 녀위생병의 등뒤까지 와서는 멈춰섰다가 천천히 뒤를 따라간다. 깔아뭉개기보다는 혼비백산한 녀위생병의 혼을 완전히 빼는 것이 더 재미나는 모양이다.

나중에 녀위생병은 끝내 쓰러진다. 뒤를 따라오던 탱크가 멈춰선다. 뛰는 사냥물을 잡는 것이 사냥군에게는 더 자극적이고 운치있듯이 탱크는 녀위생병이 다시 일어나 뛰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녀위생병은 부축해온 부상병의 입가에 자기의 입술을 가져대 대고는 간신히 일어나 탱크를 향해 마주선다. 한참이나 탱크를 노려보던 녀위생병은 입가에 경멸에 찬 웃음을 지으면서 웃옷을 벗는다. 그는 웃옷을 벗어서는 부상병의 몸우에 덮어준다. 그러곤 내의까지 벗어버린다. 다치면 터질듯한 녀인의 젖가슴이 드러난다.

젖가슴을 드러낸 녀인과 탱크가 한참 대치하고 있다가 나중에 머리를 돌린 것이 탱크였다. 탱크는 녀인이 서 있는 반대 방향으로 휘청대듯이 굴러간다. 멀어져가는 탱크를 지켜보던 녀인이 젖가슴을 싸쥐며 오열을 터뜨린다…

그 때 영화감상이 끝난후 열띤 토론이 벌어졌는데 왜서 남자군인들을 무자비하게 깔아뭉개던 탱크가 젖가슴을 드러낸 녀인앞에서는 머리를 돌렸는가가 화제로 올랐다.

적이지만 이성앞에서는 남성이 약하다는 설이 나왔고 또 전쟁은 남성들 사이의 자존심과 용기의 결투이기에 결투장에서 녀인은 상대가 되지않기 때문이라는 설도 나왔다. 이밖에도 녀위생병과 부상병은 련인같은데 사랑의 힘앞에서 악마가자리를 피했다는 견해도 나왔다. 나중에 그가 이런 견해를 피력했다.

《내 생각엔 탱크의 머리를 돌리게 한 것은 이성이나 사랑의 힘이 아니고 녀위생병 자체가 생명체이고 더욱이는 생명을 낳아 키우는 모체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그의 견해에 많은 사람들이 동감을 표시했다.

그는 고속도로에서 차량들과 대치하고 있는 병아리를 향해 박수를 쳤다. 생명의 존엄, 생명의 경외감, 생명의 의미 등 엄숙한 화제를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이 병아리였기 때문이다. 교통경찰까지 출동해서야 병아리와 차량들과의 대치가 막을 내렸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 그것을 일별했다.

《내 시신을 거두어주는 분에게;

일가친척 하나도 없는 혈혈단신인 몸이니 거적에 싸서 조용히 화장터로 직행하면 됩니다. 화장비용은 양복 안주머니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막힌 웃음이 나왔다. 그는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 고속도로에 던졌다. 고속도로에 눈꽃마냥 내려앉는 종이쪼각을 차량들이 깔아뭉개며 지나간다. 그는 그 종이쪼각들이 분해된 자기의 령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인도교에는 령혼이 떠나버린 인간의 허울만 남아 있다. 이제 그 허울속에 새로운 령혼이 깃들기를 그는 두손 모아 빌었다.

인도교에서 내려온 그는 길 옆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두 늙은이곁에 가서 걸음을 멈췄다. 장훈을 받은 뚱뚱한 늙은이가 한수 물려달라고 사정하고 있었고 장훈을 부른 버쩍 마른 늙은이가 배포유한 자세로 앉아 장기수를 물려줄수 없다고 고개만 가로젓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노라니 유태인들속에서 전해내려오는 《마지막 한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이야기가 이러하다. 한 박물관에 사람과 악마가 장기를 두고 있는 그림이 붙어있었는데 악마가 인간에게 마지막 한수를 걸고 있는 그 그림의 제목이 《마지막 한수》였다. 그 그림을 보던 장기 고수가 크게 고함질렀다.

《악마가 인간에게 마지막 한수를 걸고 있다니 이럴수가 있나 말이야. 악마에게만 마지막 한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있단말이야. 악마를 이길수 있는 마지막 한수는 어디까지나 인간에게 속한것이야.》

역경속에서도 항상 최후의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교훈적인 뜻이 담긴 이야기다.

《로인님 한수 물려달라고 사정하지 말고 마지막 한수를 잘 써보십시오.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그는 장훈을 받은 늙은이에게 이렇게 권고하고는 자리를 떴다. 사실 이 말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였다. 한 것은 죽음을 포기한 그에게도 마지막 한수를 쓸 기회가 아직 남아있으니까.

 

2000년 구정 북경에서 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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