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一课:我在语言大学对外汉语学院学习。
제11과: 저는 언어대학 대외한어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공자
공자 (BC551년-BC479년) 는 대 사상가이고 교육가, 이름이 구 (丘, qiū) 이고 자가 중니 (仲尼, zhòng ní) 이며 춘추시기 노나라 사람이다.
공자는 중국의 위대한 철학가로 중화 문화사상을 집대성했다. 공자는 유가학파를 창설하였고 최초로 "인" 의 학설을 내놓았다. "인" 학설은 통치하는 자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백성을 아끼며 지나치게 억압하지 말로 계급갈등을 완화시킬것을 주장했다. 공자는 또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가혹한 정치와 혹형을 반대했다. 공자의 철학은 "인의" (어짐) 와 "예악" (예의와 음악), "덕치교화" (덕으로 다스리고 가르치며 감화시킴) 와 "군이민위체" (군주는 백성을 몸처럼 생각함) 을 제창했다. 유가사상은 중국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 깊이 배여 그뒤 2000여년동안 중국 봉건사상의 정통이 됐으며 후세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공자는 또한 교육대가이다. 노예사회에서 귀족자제들만 교육을 받을수 있었으며 관아가 문화교육을 독점했다. 공자는 널리 사학을 세우고 제자를 받았으며 관아의 독점을 깨뜨리고 교육대상의 범위를 늘렸다. 공자는 인재시교 (사람에 따라 가르치다) "를 주장하였다. 공자는 배운것을 늘 복습하여 끊임없이 새 지식을 얻어야 하며 배움에 있어서 성실해야 하고 알면 안다고 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 하며 배우는것과 생각하는것을 어느 하나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공자는 말년에 중국 옛 문화의 경전이 된 "시" 와 "서" 등 책을 썼으며 노나라의 역사자료에 근거해 "춘추" 를 편찬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서적들은 고대문화를 보전하고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과거 중국의 시험
과거시험은 봉건사회 조정이 관리 선발을 위해 만든 시험으로 수나라에서 시작돼 명조와 청조에 이르기까지 계속됐다. 명조와 청조를 예로 보면 과거시험에는 이하 몇가지가 있다.
동생시:
"동생시" 는 오늘날의 입시시험과 비슷하다. 동생시험은 참가자의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참가자들이 동생이라고 불리웠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동생시험에는 현시, 부시와 원시가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것이 현시로 현시는 각 현의 관리들이 사회하며 일단 합격하면 "생원" 자격이 부여됐다. 여기에서 말하는 "생원" 이 통상적으로 말하는 "수재" 이다.
향시:
향시는 "생원" 자격을 딴 사람들이 참가하는 시험으로 3년에 한회씩 각 성의 도읍지나 서울에서 치러졌다. 대부분 향시가 가을철에 치뤄졌기에 향시는 "추시"라고도 불리웠으며 합격한 사람을 "거인" 이라고 불렀다.
회시:
회시는 3년에 한회씩 각 성의 거인들이 서울에 모여에 모여 보는 시험이다. 회시는 통상적으로 봄철에 치러졌기에 "춘시" 라고도 부른다. 합격자는 "공생" 이라 불리웠다. 공생이란 합격자가 인재임이 증명됐기에 황제에게 충성할 자격을 갖춘 벼슬을 할 자격이 갖추어진 생원이란 뜻한다.
전시:
공생자격을 얻은 응시자는 서울에 가서 입궐해 황제가 친히 내는 시험에 참가할수 있다. 궁궐에서 황제가 친히 내는 시험이 전시이다. 전시에 합격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전시에서는 삼갑만 합격시키는데 일갑에 세명씩 있다. 1갑과 2갑, 3갑의 첫 세명은 모두 "진사" 라 불리우며 1갑에서 1등한 사람을 장원 또는 전원, 정원이라고 불렀고 1갑에서 2등한 사람을 방안, 3등한 사람을 탐화라고 불렀다. 청나라때에는 전시에 합격한 진사들을 모아놓고 조시라는것을 봤는데 특히 조정대신을 파견해 시험을 보았다. 황제는 전시의 순위와 조시의 성적에 따라 벼슬을 내렸으며 진사가 된다는것은 조정의 관리가 된다는것을 뜻했다.
여러가지 시험제도로부터 볼때 과거제도는 조정에서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라고 할수 있다. 때문에 과거에도 "글을 읽어 관리가 된다" 는 말이 있었다.
과거 중국의 박사, 석사, 학사
박사
옛날 중국에서 박사는 관직명이였다. 박사라는 말은 최초로 전국시대에 나왔다. 진시황시대 박사는 정부의 고문역할만 했다. 한나라 이후 박사는 글을 가르치는 학관에 임명돼 글을 가르쳤다. 당시 박사는 글을 가르치는 학관직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전문기술과 전문학문과 연관된 직도 수행했다. 위조,진조, 이후의 태의박사, 점박사가 그 예로 된다. 당조와 송조이후부터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도 박사라 부르기 시작했다. 예하면 차박사, 술박사와 같은 것이 있다.
석사
옛날 중국 사람들은 덕망이 높고 박식한 사람들을 석사라 불렀다. 그러나 옛날 사책에 석사라는 단어가 적게 나오는것으로 보아 석사가 공식적인 관명이나 직명은 아니였던것으로 보인다. 옛날 석사와 비슷한 뜻으로 많이 쓰이던 말로 석노, 석유라는 말도 있다.
학사
최초로 주조시기에 나온것으로 짐작된다. 최초 학사는 학교에서 글을 읽는 귀족 자제들에 대한 호칭이였으나 점차 관직명으로 바뀌여 학문이 있는 사람이거나 학자의 열에 오른 시간이 긴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 됐다. 위조와 진조이후 학사는 높은 기술과 예술로 조정을 섬기는 관리에 대한 공식 호칭이 됐다. 당조때 학사의 지위가 크게 향상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정도가 되였다. 특히 한림학사를 대표로 하여 학사들이 황제와 가까운 사람들의 고문이나 서기관 역할까지 하였기에 밖에 알려지지 않은 재상이란 뜻으로 "내상" 이라 불리우기도 했다. 송조때에 와서는 한림학사가 된다는것이 재상이 될 덕목을 갖췄다는 뜻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청조때에도 학사는 큰 권력을 갖고 있었다. 청조에서 학사는 정일품이였고 문관들의 수장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