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나무 항아리에 담은 분채)
분채(盆菜), 동이에 담은 요리라는 의미는 말그대로 모듬요리를 말한다. 다양한 요리를 동이에 담아 놓으면 세상만사를 다 담은 듯 한데 사실 요리 한가지를 만들기는 쉬워도 다양한 요리를 한 곳에 모아 그 맛을 살린다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오늘날 중국에서 분채는 즐거움과 맛, 전통을 한 몸에 두루 갖춘 명절 최고의 요리로 부상하고 있다. 모두가 한 동이에 담겼다는 것 하나만으로 분채는 오붓한 모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분채의 뿌리에 관해서는 다양한 설이 난무한다. 그 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다. 송(宋)조말의 대장군 문천상(文天祥)이 싸움에 져서 군대를 이끌고 오늘날의 광동(廣東, Guangdong)성 동관(東莞, Dongguan)에 이르렀는데 날은 저물고 밥 지을 먹거리는 없고 그릇도 몇 개 안 되어 머리를 앓았다. 그러는 중에 현지인들이 각자의 돼지고기와 무, 닭, 오리를 가지고 각자 요리를 만들어 와서는 큰 대야에 담아 문천상과 군대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밖에도 다양한 설이 있는데 오늘날 동관에서는 분채풍속이 형성되어 해마다 음력으로 3월 23일이 되면 온 동네 사람들이 필가산(筆架山)아래 모여 분채를 먹으며 복을 기원한다.
분채를 만드는 방법은 가문대대로 전해진다. 모듬요리라고 해서 아무나 한데 넣는 것이 아니라 까다로운 선택표준과 요리순서가 있다. 돼지고기와 닭고기, 오리고기, 전복, 해삼, 상어지느러미, 생선, 새우, 버섯 등을 주요 식재로 하고 오징어, 죽순, 무 등을 보조 식재로 한다.
먼저 각기 요리를 만든 다음 제일 밑바닥에 무와 죽순 등 요리를 두고 그 위에 돼지고기, 제일 위에 닭고기와 오리고기, 생선과 새우 등을 얹는다. 큰 항아리를 둘러싸고 앉아 요리를 먹으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새록새록 새로운 요리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분채의 매력이다.
(사진설명: 대야에 담은 분채)
광동의 동관외에 홍콩에서도 분채가 인기이고 더욱 풍성한 식재로 더 큰 항아리에 더욱 많은 층을 두어 끝간데 없는 깊음을 보여준다. 홍콩분채의 제일 윗층에는 기름에 구운 새우와 닭고기 요리가 있고 그 아래로 두번째에는 기름에 튀긴 장어요리와 어묵요리, 세번째는 버섯과 야채, 네번째는 돼지고기 요리와 돼지족발요리, 다섯번째는 죽순과 오징어, 여섯번째는 무요리가 담겨 있다.
전통요리를 현대식으로 먹는 것은 이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늘날 레스토랑에서는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놓고 손님의 주문에 따라 그 손님만의 분채를 무어준다. 또한 뷔페식으로도 하고 손님의 주문에 따라 배달까지 해준다.
또 하나, 분채의 문화를 살펴보면 다른 음식문화와 다른 점이 있다. 다른 요리를 먹을때는 다른 사람의 앞에 둔 요리에 젓가락을 대고 마구 뒤집으면 무례한 행위로 인정되는데 분채를 먹을때는 아무리 뒤집어도 욕은 커녕 다른 사람이 도와주면서 함께 힘을 모아 더 새로운 요리, 더 맛있는 요리를 찾는다. 그 중에서 모임의 즐거움과 단합의 힘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