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회]신해혁명 100주년: 국민의 지혜 계발로부터 고등교육의 대중화에로
청취자 여러분, 중국에 심원한 영향을 미쳤던 신해혁명은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 혁명은 2000여년간 중국에 존재했던 봉건군주제도를 뒤엎고 민주 공화(民主共和) 관념을 영입했습니다.
이번 혁명은 그시대 사람들의 사상에 지대한 충격을 주어 중국의 전통교육 혁과 근대화에 사상기초를 마련했으며 또한 100년이 지난이후 중국이 고등교육의 제1대국으로 되는데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이런 뜻에서 신해혁명은 중국의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럼 이시간에는 신해혁명이 국민의 지혜를 계발하고 중국교육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한데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간주
신해혁명시기 국민의 지혜를 계발하기 위해 혁명당인(革命黨人)과 애국 지식인들은 많은 혁명간행물을 창간했습니다.
혁명당인들은 간행물을 통해 청정부의 우매와 서방침략자들의 폭행을 폭로했는데 이는 혁명사상의 전파와 혁명대오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놀았습니다.
동제(同濟)의과대학의 정요남(程曜南) 교수는 신해혁명인의 후손입니다. 그의 부친 정명초(程明超) 선생은 중국동맹회(同盟會)의 창시자와 조직자의 한사람입니다.
그는 일생동안 손중산을 따라 혁명에 나섰으며 1912년 임시대통령 손중산 선생의 사무총장직과 중화민국 제1임 교육부장직을 맡았었습니다.
정요남 교수는 선친이 일찍 일본에서 유학할때 혁명지사들과 함께 "호북학생계(湖北學生界)"를 창간하고 "동서방의 학설을 영입하여 국민의 정신을 환기시키다"는 취지로 민족독립을 선전하고 군주독재제도를 비난하고 국민들의 혁명사상을 계몽했다고 말했습니다. 음향1
" 이 잡지를 꾸린 목적은 바로 혁명을 선전하는것입니다. 청나라를 뒤엎고 중화를 건설할데 대한 손중산 선생의 이상을 주장했습니다. 당시 지방의 이름을 따서 잡지명을 만들고 혁명을 선전한것은 '호북학생계'가 처음입니다. 이 잡지는 당시 영향력이 아주 컸습니다."
유육지(喩育之) 노인은 신해혁명 제1차 무창봉기에 참가했던 오랜 혁명가입니다. 당년 그는 신학(新學)과 진보적 간행물의 영향을 받아 나라와 인민을 구원하며 낡은것을 버리고 새로운것을 추구하는 사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후손인 유동(喩東)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음향2
" 저의 할아버지는 강한(江漢) 중학교에서 공부할때 많은 진보적인 도서들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상을 이해하고 선진적인 조직에도 참가했습니다. 이런 단체에서 머리태를 자르는 운동을 벌렸는데 할아버지도 참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