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凤海
2019-04-18 15:08:16 출처:cri
편집:林凤海

독후감

송휘, 이명란, 한창송 선생님:그간 안녕들 하셨습니까? 

예쁜 꽃들이 향기와 고운 빛깔로 우리를 유혹하는 4월, 봄 맞이로 분주한 4월입니다.
 
오늘은 '윤영학 문고' 독후감을 보내드립니다.
 
고 변철호 선생님과 윤영학선생님은 우리 장춘애청자애독자클럽의 창시자입니다.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제가 윤선생님을 처음 만난지도 벌서 10년이 되였습니다.
 
제가 2010년 말에 장춘시 조선족노인협회 부회장 직에서 물러 났을때 변철호 선생이 전화를 걸어와서 자기네 집에 한번 놀러 오라고 하였습니다.변선생은 나보고 애청자조직에 참가 하라고 권하였습니다.그때 저는 참가하여 심부름 같은 일은 아직도 나이 젊으니까 얼마 든지 완성 할수 있지만 라디오방송만은 절대 못듣겠다고 딱 잡아 뗐습니다.
제가" 라디오 방송" 이란 말만들어도 질색 하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지마세요)
저는1994년 정년퇴직후 심심 풀이로 반도체 라디오를 사서 한국의  kbs  방송을 듣기 시작하였습니다.그때 당시도 매일 저녁 퀴즈풀이 시간이 있었는데 5원 40전 우표를 붙여 퀴즈 답안을 보내면 방송에 김석찬 이름이 나올 뿐만 아니라 녹음테잎, 한중소사전 등 물건을 보내주었습니다..저는 그 재미에 쏠려 온 밤을 새워가면서 귀에 이어폰을 끼고 퀴즈 문제도 들을 겸 한국 노래도 배우면서 꼬박 1년동안 방송을 계속 들었습니다. 하여 기념품도 많이 타고 한국 노래도 많이 배웠으나 그때부터 절반 귀먹쟁이가 되여버렸습니다.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을 하여 뼈저린 대가를 치렀으니 오늘날 까지도 후회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때부터 "라디오"란 소리만 들어도 구역질이 났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윤영학선생님과 김수영 회장님이 함께 남양춘 호텔에서 저를 부르기에 찾아가보니 이번에는'중앙인민방송 조선어방송'이 란 글이 박힌 반도체라디오까지 한 대 주시면서 시간이 있으면 이어폰을 끼지 않고 들을 수 있으니 한번 들어보라고 하였습니다.저는 참으로 난감했습니다.그러나 저에게 형님 벌이 되는 두 선생님이 보잘것 없는 저를 이같이 믿어주고 사심없는 기대와 권고를 하시는데 못이겨 하는수 없이 라디오를 받았습니다.(지금도 그 라디오를 쓰고 있습니다)

윤선생과 마경옥선생 부부는 수양이 높고, 겸손하며,인자한 분들이여서 법이 없어도 살 사람 들입니다.뿐만 아니라 그들은 너무도 선량 하여 남을 돕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분들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일 만 하더라도 2017년 '화룡시 3중 애심 기증식'에 참가해 2만원을 기증한 것입니다. 또 신문에서 내몽골 조선족소학교 여선생 한 분이 고아 9명을 돕고 있다는 보도를 읽고 그때부터 그 여선생을 도와 나서서 수년간 적지 않은 돈을 보태 주었습니다.뿐만 아니라 그 여선생이 창춘을 거쳐 훈춘에 있는 집으로 돌아갈 때 장춘시 조선족중학교와 연게하여 학생들에게 보고까지 하게 하였습니다.그리고 작년에 우리 애청자클럽에서 12월 26일 새해맞이 친목회를 열 때에도 비록  건강관계로 참석하지 못했지만 전화로 저에게 부탁하여 돈 1000원을 기부하였습니다.넉넉지 못한 퇴직금으로 생활하는 그들 부부의 소행은 저를 매우 감동 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윤선생님께서 '윤영학 문고'를 받은 후 394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을 한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감명깊게 읽었습니다.윤선생이 작가 못지 않게 재미나게 쓴 글은 매 편마다 감동되는 점이 너무나 많았습니다.그러나 오늘은 편폭상 관게로 그 중 2편 독후감을 간단히 말씀드리려 합니다.

1 .'양정우 장군 열사능을 찾아서'의 독후감:
2014년 윤영학선생 양주가 장백산 천지 관광을 마치고 돌아올 때 그들은 오늘날 행복을 준 선열들의 불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특히 길을 바꾸어 정우현 삼도위자 양정우 장군의 순국지를 찾아 갔습니다.그 곳은 가파롭고 깊은 118층 경사도가 60도가 넘는 계곡 길이여서 주위의 사람들은 그의 연령과 몸을 고려하여 내려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그러나 그는 이곳 까지 와서 양정우 장군의 열사비도  참배 못하고 되돌아 선다는것이 너무도 양심에 허락 되지 않는다며  118층계로 된 계곡길을 끝내  내려갔습니다.거기에는 '인민영웅 양정우 열사 영생불후'라는 주덕 장군의 친필 제사가 씌여져 있는 열사비가 하늘 높이 솟아 있었습니다.
양정우 장군은 영하 40도나 되는 장백밀림속 엄동 설한의 간고한 환경속에서도 추호의 굴함이 없이 장장 7년간 동북 해방전쟁을 지휘한 강철의 령장으로  항일 전쟁에 불후의 공훈을 세운 항일민족 영웅입니다.1940년 2월 23일 35세의 젊은 나이에 장렬히 희생됐습니다.
윤선생 량주는 이번 참배를 마치면서 마음속으로 장백의 울창한 밀림속에 고이 잠든 항일 민족영웅 양정우 장군이 천추에 길이 빛날 것을 기도했습니다.

 2 .'한국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 묘지를 찾아서'의 독후감:
윤영학 선생 량주는 '길림신문'에서 연변대학 예술학원 남희철 교수가 쓴 '화해와 평화로 가꾸어진 한국의 중국인민지원군 묘지>라는 기사에서 한국 정부와 인민들이 한국 땅에 묻혀있는 중국인민지원군 유해를 이장하여 정성스럽게 묘지를 가꾸며 참배하고 있다는 사연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아 2018년 한국 파주시 덕성면 답곡리에 위치한 중국인민지원군 묘지를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정결한 환경에 설비까지 구전한 묘지를 보면서 한국정부와 국민들의 노고와 지성에 고마움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줄지어 선 그 많은 묘비 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들 부부는 눈앞이 흐려짐을 어쩔수 없었으며 마치도 그 많은 비석 하나하나가 중국인민지원군 용사가 되여 눈물을 휘뿌리며 두팔을 벌리고 달려와 자신들을 포옹하고 조국과 고향 친인들에 대한 그리움을 하소연 하는듯 해 감개무량 하였습니다.
이들 부부는" 만물은 새봄이 오면 다시 소생 하지만 한국 땅에 잠든 충혼들은 영원히 잠들어있다.그들을 뒤에 두고 막상 떠나려니 걸음이 되지 않아 오래도록 다시 다시 되돌아보며 열사들이여 생전에 꼭 다시 한번 찾아오리라 "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송휘,이명란 선생님 저는 글쓰는 재주가 없어 두서없는 편지를 길게 늘여놨습니다. 힘들더라도 다듬어서 방송해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장춘애청자애독자클럽      록원구분회     김석찬  올림    2019.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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