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19-05-05 15:51:33 출처:cri
편집:朱正善

둥샹족의 역사

图片默认标题_fororder_东乡族

둥샹족(東鄕族)은 중국 감숙성(甘肅省)의 소수민족이며 그 민족언어는 알타이어계 몽골어족에 속하고 본 민족의 문자가 없다. 대다수 둥샹족은 한어에도 능통하며 한문은 둥샹족의 통용문자이다. 이들은 이슬람교의 수니파를 신봉한다.

둥샹족은 주로 감숙성 임하회족자치주(臨河回族自治州) 경내의 도하(洮河) 서부, 대하하(大夏河) 이동과 황하(黃河) 이남의 산간지대에- 살고 있다. 그외 화정현(和政縣), 임하현(臨河縣), 적석산(積石山)보안족둥샹족쌀라족자치현에 분산되어 살고 있으며 감숙의 란주시(蘭州市), 정서(定西)지역, 감남(甘南)티베트족자치주 등지에도 일부 산재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후 일부 둥샹족인들이 감숙에서 신강(新疆)으로 이주해 살았다.

2010년 제6차 전국인구보편조사 결과에 따르면 둥샹족의 총 인구는 62만여명이다.

둥샹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직접적이고 완정한 문헌기록이 없고 단편적인 기록과 전설들만 남아있다. 지어는 둥샹족이 세세대대로 살아온 하주의 주지에도 단독적인 기록이 없다. 현재 둥샹족의 민족내원은 회회색목인(回回色目人), 몽골인, 다민족융합 등 설법이 주를 이룬다.

1. 회회색목인설: 이는 둥샹족의 전설에서 기인한 것이다. 전설로 보면 둥샹족의 조상은 중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쌀타인인데 이들은 징기스칸의 서부정벌군대가 귀환할 때 따라 왔으며 현재의 둥샹족 거주지역에 정착했고 점차 현지의 한족과 몽골족 등 민족과 융합되면서 둥샹족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둥샹족은 “쌀타”라고 자칭한다.

12세기 말엽부터 13세기 초반까지 몽골부가 대초원 남북에서 흥기했고 징기스칸이 대규모의 서부정벌을 감행했다. 몽골군은 쌀타의 여러 지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회회군과 기술자들을 대동했다. 징기스칸은 정복과정에 중아시아 각국들에서 포로한 쌀타인을 “탐마적군(探馬赤群)”에 편입시켰다. 이런 쌀타인중에는 무기장인, 수군 등이 있었는가 하면 상인들과 귀족, 전도사 등도 있었다. 정복자들은 거주지내에 쌀타의 기술자들을 유형에 따라 한 지역씩 거주하도록 했으며 그 유형에 따라 마을을 명명했다. 예하면 대장쟁이촌, 은가공촌, 가죽기술자 등과 같은 이름으로 이들이 종사하는 생업과 연관이 되었다. 그외 둥샹족이 살고 있는 지역에는 “둔전(屯田)”, “둔지(屯地)”, “민지(民地)”, “신둔지(新屯地)” 등 명칭도 남아 있는데 이는 “탐마적군”이 당시 이런 지역에서 둔전을 실시했음을 유추해볼수 있는 대목이다. 그외에도 둥샹족은 체질특징으로 볼 때 중아시아인과 비슷한 점들이 있다. 남자들은 코가 오똑하고 눈확이 깊으며 수염을 길게 기르고 얼굴은 타원형이다. 여자들은 피부가 흰 것이 특징이다. 이런 특징들은 둥샹족이 이슬람교를 신봉하던 중아시아 쌀타족과 연관이 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2.몽골족설: 몽골족에서 기원했다는 설에는 또 두가지 갈래가 있다.

그 하나는 둥샹족이 징기스칸이 서역을 정벌할 때 하주(河州)일대에 주둔시킨 몽골군의 후예이며 이들이 점차 군대로부터 백성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징기스칸 통치시기에 많은 몽골군이 하주 일대에 주둔했다가 그후 철수했으나 여전히 일부 부대가 지금의 둥샹족 거주지역에 남아 있게 되었다. 후에 이슬람교가 서북지역인 청해(靑海), 순화(循化)를 거쳐 하주 일대에 들어 왔으며 현지의 대다수 몽골인들이 이슬람교를 믿으면서 점차 둥샹족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런 전설은 일정한 역사적 근거가 뒷받침한다. 1226년 징기스칸이 서하(西夏)를 진공하였고 이때 하주는 몽골군의 중요한 거점지역이었다. 그후 하주 일대는 몽골군의 중요한 요충지로 되었다. 13세기 말엽에 이르러 이 지역의 몽골족 친왕이 이슬람교를 믿기 시작했고 15만명에 달하는 부하들 중 절반이상이 이슬람교를 믿었다는 기록이 있다.

몽골족 유래설 중의 다른 할 설법은 둥샹족이 원나라 우구데이칸국의 일부 몽골족의 후예라는 것이다. 이들은 당시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주변 민족의 영향으로 이슬람교를 믿기 시작했고 이로 하여 불교를 믿는 몽골족과 충돌이 발생했으며 종교 이단자로 여겨져 결국 동부에로 이동했다. 이들은 몽골족과 연계가 단절되었고 몽골문과 이슬람교가 사용하는 아랍문이 달랐기 때문에 몽골어는 구사했으나 몽골문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다민족융합설: 이 설법은 동샹지역의 회족을 위주로 현지의 몽골족, 한족, 티베트족이 장기적으로 살아 오면서 둥샹족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전설로 보면 최초에 둥샹족이 형성될 때 서북에서 온 이슬람 교도들이 포함되었고 그 후 이곳에 정착한 몽골족과 일부 한족들이 이슬람교를 믿게 되었다. 청나라 동치 3년 즉 1864년과 광서 21년 즉 1895년에 서북의 이슬람 교도들이 봉기를 일으켰는데 이때 이슬람교에 교화한 한족이 많았다고 한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의 조사자료로 보면 둥샹족은 회족과 한족, 티베트족과 기타 민족의 요소들이 남아 있었다. 마(馬)씨와 목(穆)씨 성의 둥샹인은 대부분 회족에서 왔고 왕(王)씨와 강(康)씨, 장(張)씨, 고(高)씨, 황(黃)씨 등은 그 조상이 한족이라 한다.

전설과 역사자료로 볼 때 둥샹족은 14세기 후반에 둥샹에 거주하던 여러 민족이 융합되어 형성된 것이라는 일설이 있다. 이들을 구성하는 주요한 사람들은 몽골인과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색목인이었다.

역사적으로 둥샹족은 민족적인 압박과 계급적 착취를 당했다. 명나라 때에는 이갑(里甲)제도를 실시했고 청나라 때에는 회사(會社)조직을 설치했으며 조정에 충성하는 둥샹족 귀족들은 이장(里長) 혹은 갑수(甲首), 연총(練總), 회장(會長) 등으로 임명됐으며 이들을 통해 둥샹족인들은 통치하고 수탈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되기 전 몇십년간 둥샹족 거주지역은 감숙성에 소속되었으나 둥샹족이 집거한 임하지역은 사실상 봉건군벌들의 통치하에 있었다. 1928년에 집거지역은 화정(和政), 녕정(寧定), 영정(永靖), 임하(臨夏) 네개 현으로 나뉘었다.

1949년 8월 둥샹족 거주지역이 해방되었고 비준을 거쳐 둥샹자치구를 둥샹족자치구로 개명했다. 1955년에는 또 둥샹족자치현으로 개명했다. 그외 1953년과 1954년에 화정현의 양가사, 아리마무, 감고와 임하의 안가파, 부가, 호림가 등지에 민족향을 설립했다. 

공유하기:
뉴스 더보기 >
기타 플랫폼
CMG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