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19-05-05 15:23:18 출처:cri
편집:朱正善

바이족의 문화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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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문자:

바이족의 민족공통어는 백어(白語)이다. 중국민족언어학계는 바이족의 언어가 시노.티베트어계 티베트.미얀마어족에 속한다고 보편적으로 인정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백어와 한어간 관계가 더욱 긴밀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20세기 50년대 백어방언에 대해 조사연구를 거쳐 백어를 남부의 대리 , 중부의 검천(剑川) ,북부의 노강(怒江) 등 3대 방언으로 분류했다. 기타 소수민족의 언어에 비해 백어 방언은 큰 차이가 없어 교류에 별로 지장이 되지 않았다.바이족은 평소 생활에서 백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대리주 경내의 일부 한족들도 백어를 사용한다. 바이족 지역에서 영화나 방송, 신문은 모두 한어를 사용하지만 민간문예활동시에는 백어를 주로 사용한다. 또 바이족 집거지의 중학교와 초등학교들에서는 백어와 한어를 겸용한다. 현재 백어는 여전히 바이족 집거지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로 되고 있으며 앞으로 한 시기동안 바이족의 가장 중요한 교제공구이고 민족특색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현재 전국적으로 백어 사용자가 약 130만명에 달한다.

바이족은 노백문(老白文)과 신백문(新白文) 두가지 문자가 있다. 노백문은 한자를 토대로 발전한 것이고 신백문은 새 중국 창건 후 창제된 병음문자이다. 바이족은 일찍부터 한자를 빌어 백어를 기록해왔으며 한자의 편방(偏旁)과 부수(部首)를 조합해 ‘백문’을 창제했다. 이런 문자는 역사적으로 ‘북문’(僰文)이라고도 하며 건국 후 창제된 병음 백문과 구별하기 위해 ‘노백문’이라고 부른다. 문헌자료로 볼 때 노백문은 각종 비문(碑文)과 역사저서, 문학작품에 많이 사용되어 왔다. 허나 명나라 이래 조정이 운남에서 한문화를 보급하면서 그 사용범위가 크게 줄었으며 지금은 당, 송, 원, 명, 청 시기의 소수 백문 비문과 서면문헌에서만 노백문을 찾아볼 수 있다. 신백문은 라틴자모를 부호의 기반으로 한 병음문자이다. 창제 초기에는 널리 보급되지 않았지만 수차 개정을 거치면서 나중에 두가지 문자를 변체(變體)겸용하는 새로운 문자방안을 형성해 검천, 대리 등 지역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다.

민간문학:

‘남조중흥국사화권’(南詔中興國史畵卷)의 기재에 의하면 남조시기 바이족은 이미 ‘장씨국사’(張氏國史) 등 역사저서를 지었다. 대리국시기에도 ‘백사’(白史)등이 저술되었지만 이미 실전되고 명나라 비문에서만 그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명나라 때에는 바이족 학자 양사운(楊士雲)이 이해지역 역사를 고증하는 ‘군대기’(郡大記)를 펴냈고 청나라 바이족 사학가 왕숭(王崧)은 운남을 저술한 책자 61종을 취합해 ‘운남비징지’(雲南備徵志)를 펴내 운남 민족사와 지방사 연구에 중요한 참고자료를 제공했다.

시가:

바이족은 자기 민족만의 창세 서사시와 신화전설이 있다. 민간에서 유전된 장편 서사시 ‘창세기’는 반고의 천지개벽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또한 남조시기의 유명한 ‘사자춤’은 당나라 때 이미 중원에 전파되었고 ‘남송봉성악’(南宋奉聖樂)도 당나라 궁정에서 당나라 14부 음악의 하나에 입선되었다.

민요:

바이족의 민간에는 대량의 산 노래와 소곡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여러가지 제재와 형식의 서사가요도 있다. 바이족의 민요는 가사 내용과 제재가 풍부하며 생동하고 활발하다. 가장 사랑을 받고 널리 유전된 바이족 민요로 우선 ‘백족조’(白族調)를 꼽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리, 검천, 이원(洱源) 서산의 ‘백족조’가 가장 대표적이다. 산이나 들판에서 부르는 이런 민요들에는 생산노동가와 사랑가가 망라된다. 그외 바이족 인민들의 전투의지를 보여주는 ‘추어조’(泥湫調),  유머러스한 ‘참새조’도 있다. 바이족은 또 기타 민족과 마찬가지로 대가(對歌)의 방식으로 서로에 대한 사모의 정을 표달한다. 허나 대가의 의미는 사랑전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지혜의 겨룸이기도 하다. 때문에 바이족의 대가는 미혼남녀나 기혼 남녀, 중노년을 막론하고 모두가 부른다.

무용:

바이족은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는 민족으로 정평이 나있다. 일찍 진한남북조시기 바이족의 선민의 한갈래인 전북(滇僰)은 이미 노래와 춤, 음악을 유기적으로 융합시켰다. 지금까지 산간지역에 유전된 여라가지 원시무용 종류에는 답가무, 조수류(鳥獸類)무용, 무무(巫舞) 등이 있다. 그 중 조수류 무용은 음악이 없이 추는 순 무용으로서 노강 바이족 청년 여성들이 즐겨춘다. 

조각:

바이족의 조각 예술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주로 석조와 목조로 나뉘는데 석조는 검천 석종산(石鐘山) 석굴과 대리국 경당(經幢)을 대표로 한다. 그 중 남조 대리국 연간에 파기 시작한 석종산 석굴은 중국 남방의 가장 대표적인 석굴의 하나로 ‘서남돈황’으로 불린다. 그리고  ‘지장사경당’(地藏寺經幢)으로도 불리는 대리국 경당은 조형이 아름답고 조각기술이 뛰어나 ‘전중예술의 극품’으로 불린다. 바이족의 목조는 주로 궁정과 사찰, 주민 건축의 장식용이며 검천 목조가 가장 유명하다. 베이징인민대회당 운남청의 대문과 목조병풍이 바로 검천 목공의 작품이다.

천문:

바이족은 남조시기부터 자신의 역법이 있었다. 명나라 바이족 학자 주사렴(周思濂)의 ‘태화갱누중성표’(太和更漏中星表)와 이성위(李星煒)의 ‘기험방서’(奇驗方書) 등은 모두 고대 천문과 의학을 총화한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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