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19-05-15 17:23:56 출처:cri
편집:朱正善

수이족의 문화예술

图片默认标题_fororder_吹起芦笙,载歌载舞欢度端节

(노생을 불며 단오절 경축)

수이족 민가:

수이족의 민가는 그 형식에 따라 단가(單歌), 쌍가(雙歌), 조가(調歌), 힐가(詰歌) 등으로 나뉘며 그 내용에 따라서는 옛 노래, 송가(頌歌), 생산가, 풍물가, 풍속가, 사랑가 등으로 분류된다. 그중 쌍가는 제일 특색이 있는 설창형식이라 할수 있다. 쌍가는 팀을 단위로 하며 노래하기 전의 독백과 주체로 되는 노래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함축적 내용을 담은 쌍가일 경우에는 유머러스하고 재미가 있으며 현장의 분위기와 노래의 내용을 결부해야 그 뜻을 알수 있다. 쌍가는 열렬하고 장중한 술자리에서 주인과 손님이 서로 주고받는 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용강현(榕江縣) 수미향(水尾鄕) 일대의 수이족들은 죽통가라는 형식도 사용한다. 이때는 남녀가 직접 얼굴을 볼수 없으며 각자가 서로 다른 집에 있으면서 뱀가죽을 씌운 죽통을 통해 대창을 한다. 이런 “전화방식”의 대창은 감정표달에 있어서 더욱 깊고 부드러운 정을 전한다.

수이족 민가의 특점은 곡조의 변화가 많지 않고 선율이 간단하다. 그러나 그 노랫말은 시간이나 사건, 사람에 따라 변하며 새로운 내용이 계속 추가되면서 자신의 감정을 토로한다.

수이서(水書):

수이서는 수이족문화의 전승코드라고 할수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동파(東巴)문외에 여태껏 존속해 있는 상형문자이며 갑골문과 금석문(金石文)과 유사한 일종의 고대문화부호이다. 수이문은 수이족의 고대의 천문지리, 종교, 민속, 윤리, 철학 등 문화정보를 담고 있어 상형문자의 “활화석”으로 불려왔다. 수이서는 상장권(喪葬卷), 혼가권(婚嫁卷), 기조권(起造卷) 등 여러가지가 있으며 그 내용도 다양하고 글자체가 은나롸 상나라의 갑골문과 비슷하다. 상형문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해서를 뒤집어 놓은 모양, 비스듬히 쓰거나 거꾸로 쓰는 등 방식으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혀 알수가 없는 “천서”이다. 수이서가 반영한 천상, 역법자료는 소중한 역사문화재이며 그중의 기본이론 예하면 9성, 28수, 천간지지, 일월오성, 음양오행, 60갑자, 7원력제(曆制) 등 내용은 수이족 선민들의 지혜와 예술의 결정체이다.

전문가들은 “수이서”가 한족의 “역경(易經)”과 그 위치가 비슷하며 내용이 광범하고 깊이가 있다고 분석한다. “수이서”는 주로 수사본 혹은 구두형식으로 전해졌기에 많이 유실된 상황이다. 최근 연간에 와서 이 문화적재부를 보호하기 위해 귀주성 관련부문은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면서 “수이서”를 대량으로 모으고 보호를 실시했다. 지금까지 약 6천여권에 달하는 “수이서” 원작을 발굴,보호했다. 2006년 6월에 수이서는 수이족의 단절(端節), 마미자수(馬尾繡)와 함께 국가급 무형문화재로 등재되었다.

수이족 생황무:

생황무는 수이족의 설날을 경축할 때 추는 무용으로 제사무용에서 기원했다. 그 특징은 악기연주와 무용이 일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 무용을 표연할 때 남자는 생황을 손에 들고 연주를 하면서 춤을 추고 여자는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노생무는 원래 묘족의 무용이었으며 수이족은 오래전부터 이를 배워 지금에 이르렀다. 수이족은 지금까지도 생황을 “묘족의 악기”라 부르고 생황무를 “묘족의 춤”이라 한다. 춤을 출 때는 머리에 은으로 된 장신구를 쓰거나 달며 오색의 꿩깃을 꽂으며 색상이 짙은 고대복장을 입은 무녀를 남자가 앞에서 안내하면서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무녀는 생황의 리듬에 맞춰 춤사위를 펼쳐보인다. 소생황의 음은 부드러우면서도 챙챙하고 여러가지 생황의 합주일 경우는 높고 웅혼하며 리듬이 분명하고 그 분위기가 사람을 취하게 한다.

수이족 구리북무용:

구리북무용은 고대의 제사행사에서 기원했으며 제단에서부터 민간의 일상무용으로 변화했다. 그 역사는 몇백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에 와서 수이족은 명절을 쇠거나 풍작을 경축할 경우, 혼인을 하거나 장례를 치르는 기간에 이 춤을 추군 한다. 무용은 농사와 관련된 벼모 뿌리기, 탈곡 등 여러 동작들을 춤에 가미시켰다. 표연자들은 북의 리듬에 따라 씩씩한 동작을 표현하며 북소리는 늦다가 빨라지고 낮다가 높아지며 클라이막스에 가서는 비방울이 떨어지듯 하다 불시에 멎는다. 춤사위도 그 리듬에 따라 변화하는데 이는 관객들을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한다.

수이족 투각무(鬪角舞):

이는 소 두마리가 서로 싸우는 모습을 형상한 춤으로 귀주(貴州) 도류강(都柳江) 상류의 삼도 일대의 수이족 집거지역에서 많이 볼수 있다.

소는 농군의 제일 충실한 친구이며 농경에서 중요한 생산도구였다. 하여 예로부터 농경민족들은 모두 소를 사랑했으며 여러가지 예술형식으로 소를 노래하고 소에 대한 애착을 표달했다. 이는 또 농업풍작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이기도 하다. 일부 민족은 소와 관련된 풍속과 지어는 명절도 있다. 중국민간무용중에서 한족은 “물소춤”, “소등(牛燈)” 등이 있고 장족은 “춘우무(春牛舞)”, 뚱족은 “두춘우(逗春牛)”, 바이족은 “사우무(耍牛舞)”가 있다. 마찬가지로 수이족도 자신들만의 특색을 갖춘 “투각무”를 창작했다. 수이족의 조상은 고대 백월인의 한갈래였으며 그들은 벼농사에 능했고 부림소를 아꼈다. 이들은 이웃의 묘족, 뚱족들이 설날에 투우경기를 하는 것을 보고는 구경하기를 좋아했으나 소들이 상처를 입는 것을 가슴 아파했다. 하여 이들은 소뿔을 소품으로 하여 소를 대신하고 두 사람이 이 소품을 들고 소가 싸우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는 경기표연의 방법이며 이 춤을 “투각무”라고 불렀다. 이 춤을 출 때는 머리에 소뿔을 쓰고 몸에는 검은 색 망토를 걸치며 생황의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투우경기를 형상화한다. 이는 마치 물소가 들에서 장난을 치거나 싸움을 하는듯 한데 그 동작이 힘있고 절도가 있다.

투각무는 명절이나 장례, 제사 등 행사에서 추는 경우가 많다. 특히는 밭에서 이삭이 날 때면 투각무를 추어 풍작을 기원한다. 이 무용은 소에 대한 수이족들의 사랑을 보여주며 결국 경작문명의 구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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