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19-06-19 15:03:52 출처:cri
편집:朱正善

하니족의 세시풍속과 금기

* 하니족의 가정

하니족의 가정은 부권제이다. 남자가 생산, 가축 판매 등 가정의 대사를 주관하고 여자가 가축 사육, 밥 짓기 등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도맡는다. 허나 여자가 아들을 많이 낳을 경우 가정에서의 지위가 남편과 기본상 평등해진다. 자식들은 결혼하면 보통 분가하지만 부친이 세상을 뜨면 장남이 부모의 집으로 다시 들어와 세대주가 되어 노인을 봉양한다. 그 외 기타 자식들은 결혼만 하면 분가하여 따로 살림을 차린다. 과거에는 아들이 없어도 데릴사위를 삼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데릴사위를 삼을 수 있으며 여타 민족과의 통혼도 가능해졌다.

홍하지역에서는 장례를 포함한 중대한 명절일지라도 남자와 여자가 한 상에서 식사를 해서는 안된다. 단 가정의 남성 최고연장자가 세상을 떠났을 경우에는 여성 최고연장자가 대신해 남성 상에 자리할 수 있다. 그리고 어린 자식들은 보통 여성 상에 합석하며 손님이 많을 경우 먼저 모든 남성의 자리를 마련하고 앉을 자리가 없으면 가정의 여성들은 서서 식사를 한다.

* 하니족의 성씨 

고대의 하니족은 이름은 있지만 성씨가 없었다. 보통 부자간 연명제를 취해 부친의 이름 마지막 자를 아들 이름의 첫 자로 한다. 일례로 부친의 이름이 송산(松山)이면 아들의 이름은 산달(山達), 손자의 이름은 달표(達飄)…이런 식으로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가족 연명보계(譜系) 가 형성되어 족보로 친인척 관계를 확인한다. 그리고 딸도 연명제를 따르나 족보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 외 어느 한 세대에 비정상적인 사망이나 쌍둥이, 지체장애자가 나타나면 그 세대를 뛰어넘어 새롭게 이름을 짓고 대를 이어나간다. 또 하니족의 일부 종족들은 아이가 소띠 태생으로 태어나면 소xxx개로 이름을 짓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날 하니족의 각 종족은 모두 자신의 성씨가 있다. 성씨는 하니어로 ‘아구’(阿古)라고 부르지만 보통 사용하지 않고 이름과 함께 부르지도 않으며 단지 자신의 종족 귀속을 증명할 때만이 사용한다. 이런 성씨는 보통 각 종족 조상들의 이름으로 명명된다. 그 외 오늘날 하니족들은 한족의 이름을 짓기도 한다. 허나 하니족 이름을 지을 때에는 여전히 전통적인 ‘부자연명’의 세시풍속을 따른다.

* 하니족의 혼인

图片默认标题_fororder_哈尼族新娘

하니족 신부

하니족의 기본적인 혼인제도는 일부일처제이다. 결혼 후 본처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재혼하면 주위의 질타를 받게 되고 전처와 그 본가 집에 선물을 보내고 사죄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외사촌과 먼저 혼인을 약정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종남매와는 혼인하지 않으며 같은 성씨끼리 통혼하지 않는다. 하니족의 청춘남녀는 결혼 전에 자유롭게 사귀고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으나 혼인은 반드시 부모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청춘 남녀는 눈이 맞으면 남자 측에서 중매군을 여자측에 보낸다. 처녀 측 가장이 동의하면 총각은 처녀 집에 가 농사일을 거들며 약혼 술을 마시고 결혼 날짜를 정한다. 결혼식 날 저녁에는 남녀청년들이 모닥불을 에워싸고 장 밤 노래 부르고 춤을 추기도 한다. 신부는 ‘곡혼’(哭婚)풍속이 있는데 결혼식 날 아침 방에서 집을 떠나기 아쉬운 심정으로 울음을 운다. 하니족은 데릴사위를 맞기도 하며  적지 않은 지방에서는 부모가 독단적으로 자식의 혼인을 결정하기도 한다. 묵강(墨江) 일대에는 ‘길을 밟는’약혼 세시풍속이 있다. 남녀쌍방이 눈이 맞으면 양측 노인들이 함께 한 구간의 길을 걷는데 만일 도중에 토끼나, 늑대 등 야수를 만나지 않으면 약혼이 성사되는 셈이다. 그리고 결혼 3일 후 신부는 본가 집에 돌아가며 모내기철이 돼야 시집으로 돌아온다. 홍하일대에서는 결혼식을 치른 이틑 날 잠깐 본가 집에 갔다고 인츰 시집에 돌아온다.

* 하니족의 장례

하니족의 장례 풍속을 보면 보통 나무 관에 시신을 넣어 토장한다. 한때 화장을 행한 적도 있다. 시솽반나 일대에서는 마을의 한 가정에서 상사가 나면 온 마을사람들 모두 일손을 놓고 도우러 온다. 홍하 등 내지에서는 고인의 친우들에게 부고를 내며 친우들은 돼지나 닭고기 입쌀, 술 등을 가지고 조문을 오며 사위는 소를 제물로 올리고  온 마을 인들이 함께 공동의 추모식을 가지며 각기 찹쌀떡 한 개를 고인의 관 앞에 놓아 고인이 그 떡을 이미 세상 뜬 자신의 친지들한테 전해주길 기원한다. 시신은 보통 하루 내지 이삼 일 집에 모시고 주술사를 모셔 애도가를 부르며 사자의 삶과 죽음의 경력을 돌이킨다. 출빈 전에는 친우와 친지들도 상가 집에 남아 시신 곁을 지키며 저녁이면 마을의 젊은이들이 사자의 짚 앞에서 춤을 추고 출빈 시에는 포를 쏘아 애도를 표한다. 묘지는 보통 마을 옆 산 위에 쓰는데 계란을 굴리는 방식으로 선택한다. 계란을 굴리다 계란이 깨지는 곳에 무덤을 파고 매장하며 무덤을 평평히 다지고 봉분하지 않으며 풍수도 따지지 않는다. 토사와 잘 사는 집안은 한족의 풍습에 따라 풍수가 좋은 곳을 택해 돌 무덤을 쌓기도 한다. 또 장례를 아주 성대히 진행하는 곳들도 있다. 가장 성대한 장례식을 본다면 돼지 12마리 암소, 수소 각기 한 마리씩 잡으며 중등 수준의 장례는 돼지 6마리, 소 한 마리, 가장 검소한 장례일지라도 돼지 한 두 마리는 잡는다. 그리고 매장 시에는 사자의 생전 생활용품도 부장품으로 함께 묻는다.

* 하니족의 일상예의

하니족은 예로부터 열정적이고 손님을 반기는 민족이다. 집에 손님이 오면 보통 술을 올리는데 손님이 착석하면 주인은 먼저 미주 한 그릇과 고기 세 점을 권한다. 손님 상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풍성하게 차리며 술을 마시며 노래 가락도 뽑는다. 손님이 자리를 뜰 때면 전과 파초 잎에 싼 절인 고기 등 음식을 들려보낸다. 시솽반나의 하니인들은 손님상을 남, 녀석으로 가른다. 보통 전통습관에 따라 집에 남 실과 여실을 따로 설치하며 남성만이 집에 온 손님과 한 상에서 식사할 수 있다. 식사 좌석 배치 시에는 따뜻한 화로 쪽에 연장자를 모신다. 하니족은 노인을 특히 존경한다. 식사 시 좋은 요리는 노인 쪽에 놓아 먼저 맛보도록 하며 자식들이 노인에게 술을 따르거나 밥그릇을 건넬 때면 두 손으로 공손히 올린다.  

* 하니족의 금기

하니족은 여러 가지 금기가 있다. 임산부 출산 시 외인이 방에 들어서서는 안되며 화로 위의 삼각대에 젖은 신을 놓고 말려서도 안되고 ‘용나무’를 남벌해서는 안되며 오물을 ‘용나무’ 아래에 버리는 것도 금기사항이다. 

공유하기:
뉴스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