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모춤으로 유명해진 연변주 왕청현에는 전문표현대인 '왕청현 상모춤 예술단'외에도 32명의 중노년들로 무어진 '노년농악무(상모춤)표현대'가 있다.
일전에 왕청현에서 진행한 문화유산일 및 조선민속활동전시공연에서 평균 연령이 66세인 왕청현노년농악무(상모춤)표현대의 전통상모춤이 관객들의 주목을 끌었다. 머리에 흰서리가 내리고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패인 노인들이였지만 멋지게 상모를 돌리는 모습은 청춘의 활력과 격정으로 끓어 넘쳤다.
왕청현의 민간문화예술형식은 풍부하고 다채로우며 중국조선족농악무(상모춤)는 왕청현의 대표적인 소수민족 문화의 하나이다.
왕청현은 중화농악무의 발원지이다. 일찍 1928년 봄에 지금의 왕청현 계관향 연벽촌의 몇십호 조선족 촌민들이 조선족농악무표현대를 조직해 경쾌한 '사물놀이' 절주에 맞추어 생태전통농악무 (상모춤) '풍수락'을 표현해 중국 대지에서 첫 상모촌으로 되였다. 홍콩 회귀 경축, 마카오 회귀 경축, 국경절 경축 등 대형 문예공연활동시에도 왕청현상모춤표현대는 국가문화부의 초청을 받고 축제활동에서 농악무를 표현하였다.
농악무를 가일층 전승, 보호, 발전시키기 위해 2007년에 왕청현에서는 25개의 사업편제를 특별히 비준한 후 민간에서 농악무표현인재를 선발한 동시에 예술학원의 우수졸업생을 초빙해 조선족농악무를 위주로 하는 전업표현대인 '왕청현상모춤예술단'을 설립하였다. 몇년간 왕청현에서는 누계로 약 100만원을 투자해 10여개 대표적인 조선족농악무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예술단은 현당위와 현정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선후로'연꽃상', '산꽃상', '군성컵', '금이삭상' 등 20여개 국가급 대상을 수상했다. 북경올림픽경기대회, 장애인올림픽대회, 상해세계박람회 등 문화전시활동에서 왕청현상모춤예술단은 연변의 중국조선족 민속풍모를 세인들에게 선보였다.
상모춤표현기교를 부단히 혁신함과 아울러 왕청현에서는 원생태상모춤의 전승과 보호에도 큰 중시를 돌려 수차 연변주내의 민속, 무용, 민악 등 방면의 전문가를 초청해 전통 농악무표현 주제연구토론회를 열고 생태농악무의 발굴과 보호에 대해 건의를 청취하였다
2009년에 왕청현에서는 생태농악무를 표현할수 있는 32명의 중노년들로 '노년농악무(상모춤)표현대'를 조직하고 왕청현 문련 전 주석을 역임한 적이 있는 장문일(65세)선생과 왕청5중의 음악교원으로 퇴직한 최종수(66세)선생을 표연대 대장, 부대장으로 임명하였다. 현당위와 현정부에서는 이에 큰 중시를 돌리고 그들에게 사무실과 300여평방미터되는 훈련장소를 제공해준 동시에 자금을 보장해 주었다. 현문화국 무형문화재사무실 김명춘 주임의 인솔하에 장문일, 최종수 선생은 연변주민속무용전문가인 최호욱, 천수산 선생과 함께 왕청현 9개 향진 200개 자연촌을 하나하나 답사하면서 92명 민간예술인들을 방문하고 생태농악무의 역사와 표현기교들을 수집해 전자서류, 도편서류, 음향서류, 실물서류를 작성해 농악무의 보호와 전승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생태농악무에 대한 탐구와 혁신을 거쳐 왕청현노년상모춤표현대는 복장으로부터 도구, 표현주제, 표현형식에 이르기까지 모두 새로운 혁신과 전례없던 돌파를 가져왔다. 2009년에 유네스코의 비준을 거쳐 '인류무형문화재대표작명록'에 등재되고 동북3성에서 유일하게 '세계무형문화재유산명록'에 등재했다. 이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세계무형문화재유산명록》에 등재된 무용류 종목이며 왕청현은 '중국민간문화예술의 고향'으로 명명되였다.
리강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