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凤海
2019-07-12 15:27:22 출처:cri
편집:林凤海

감주 장사로 가난을 이겨내다

연변주 왕청현 신민가에 살고있는 공산당원 고창남씨(68세)와 그의 아내 전복숙씨(64세)는 조선족전통음식인 감주장사로 생활난을 이겨내고 자립해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부대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영예군인 고창남씨는 아내와 손잡고 질 좋고 맛 좋은 감주를 빚어 팔아 연길시는 물론 먼 흑룡강성의 할빈, 해림, 목단강 등지의 고객들도 차를 몰고 와 감주를 실어가군 하는 호황을 맞고 있다.
고창남 양주가 감주장사를 하게 된 계기는 이러하다. 부대에서 왕청현 대흥구진 쌍하촌으로 돌아온 고창남은 하마탕양식창고와 왕청기름공장에서 마대치기, 기초건설대에서 돌까기 등 일을 닥치는대로 하였으나 혼자 힘 (월급 800원)으로는 도저히 가정의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갈수가 없었다. 특히 고중에 다니는 두 딸애의 공부 뒤바라지를 하려면 1원도 아껴가면서 써야 했다. 그는 시장경제의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장조사를 시작하였다. 그래도 친척들의 알선대로 감주장사를 하는것이 가장 적절한 선택이라고 생각한 그들 부부는 나라에 손을 내밀지 않고 내손 내 힘으로 실속있게 감주장사를 해 치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일은 생각처럼 되는것이 아니였다. 2006년부터 감주를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실패에 실패를 얼마나 거듭하였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누룩을 비롯한 재료의 합당한 배합이 부족해 감주의 맛이 떨어져 고객들의 평판이 좋지 않았다.
자금이 부족하여 냉장고를 사놓지 못하다보니 만든 감주가 변질하여 몇천근의 양식을 속수무책으로 버릴 때도 있었다. 그들은 실망하지 않고 경험있는 사람을 청해 배우고 고객들과도 허물없이 의견을 물으면서 해결방도를 찾아 부단히 감주의 맛과 질을 제고하였다.
고창남 부부는 여기저기서 돈을 꾸어 냉동기와 냉장고를 갖추었고 필요한 재료들을 구전하게 장만해 맛에 따라 재료의 비율을 조절하였다. 점차 손님들이 많아졌고 감주맛이 좋다고 평판이 자자했다.
감주장사는 드디여 호황을 맞이했다. 밤중에도 전화가 오면 어김없이 감주를 날라다주기도 하고 밀차에 확성기를 달고 다니며 팔기도 했는데 "감주요"하는 소리가 나면 기다렸다는듯이 사람들이 몰려와 너도 나도 사갔다. 그들 내외는 또 신용을 지켰다. 한번은 고객이 10원을 낸다는 것이 50원짜리를 내밀었다. 전복숙씨는 돌아가는 손님을 불러세워 40원을 되돌려 주었다.
그들 양주는 이렇게 십삼년간 감주를 만들어 팔았는데 이제는 입소문이 퍼져 밖에 나가 팔지 않아도 고객들이 줄을 서서 감주를 사가군 한다.
고객들의 만족과 선호에 갈수록 힘이 솟구친다는 고창남씨는 감주 젓는 밥주걱을 놓을새 없이 아내를 도와 걸싸게 일하군 한다. 현재 고창남 양주는 왕청현교육국 아파트를 사 십년전에 쌍하촌 낡은 단층집에서 왕청시내로 이사왔다.
여름철에는 주내와 타성의 감주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녀들까지 동원되여 일손을 돕는다. 감주장사에서 톡톡히 단맛을 본 고창남 양주는 오늘도 내 힘으로 열심히 감주를 빚고 있다.
리강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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