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凤海
2019-12-13 15:36:24 출처:cri
편집:林凤海

존경하는 윤영학 선생님과 부인 마경옥 선생님을 찾아서

송휘, 한창송, 이명란 선생님 그리고 아나운서 여러 선생님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들께서 최선을 다 하신 노고에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11월 22일은 우리 경제 개발구 노인협회 활동일이었습니다. 

김옥춘 회장님은 추운 겨울 활동에 참가하신 여러분께 감사를 표시함과 동시에 전임회장 송철봉, 고문 김옥금 및 김옥춘 세분께서 "음마하 조선족" 양로원에 가 계시는 윤영학 선생님이 꼭 세분만 오시라는 부탁을 받고 함께 갈분은 많아도 세분이 가셨다 오신 병문안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금년 일본에 가서 약을 떼려하니 의사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 약은 암환자가 일년 많아서 이년인데 2017년에서 지금까지 이년이 넘었으니 기적이라 하셨으며 이 약은 두번 다시 쓰지 못한다고 하여 지금은 양로원에서 복용하지 않는 형편입니다. 전립선암 말기에 암세포가 뼈속까지 침입하여 몹씨 아픈데 그럴 때마다 고 윤수범 선생님의 부인 최순길 선생님께서 주신 암 약을 쓰며 아픔을 줄인다고 하였습니다. 

그 좋은 분, 참된 사람, 우리 곁에 살아계시는 뢰봉께서 암병에 약도 못쓰고 계시니 눈물이 하염없이 눈앞을 가리였습니다. 
하여 전임 3조조장 장복순을 찾아가 만약 윤영학 선생님을 보시러 가거든 나도 꼭 함께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원 장춘시 조선족중학교 교장선생님이시던 구순군 교장선생님의 딸과 사위가 자가용차, 동료차까지 두대가 가는데 (24일 일요일) 구교장선생님은 본인이 가시려던것을 그 학교 졸업생인 나에게 양보하여 천만감사했습니다. 
한차에 앉은 전임 회장 박인숙 회장님, 량선옥 선생님은 윤영학 선생님이야말로 우리 곁에 살아있는 뢰봉이라고 하였습니다. 
윤영학 선생님은 당에 충성하며 조국과 인민을 사랑하고 우리 민족의 말, 글을 사랑하시는 찾아보기 많지 않은 참된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아들이 병으로 이 세상을 하직한 후 그 마음이야 무엇으로 형용하겠습니까.
그이는 남편 잃은 며느리를 앞세우고 눈보라 치는 겨울도 마다하지 않고 이름없이 깊은 산속에 누워계시는 항일혁명열사들의 이름을 열두명이나 찾아 주었습니다. 그때 협회 정순애(구태구 조선족중학교) 교장선생님께서 돈 200원을 드리면서 노비에 보태쓰시라 하였습니다. 윤 선생님께서는 돌아와서 하시는 말씀이 그 돈으로 화환을 사서 혁명열사들에게 드렸답니다. 
난 2012년 애청자클럽에 참가하였는데 2조 조장을 책임졌습니다. 반세기도 넘도록 우리 말, 우리 글을 적게 사용한 나로서는 과분한 책임이었습니다. 윤선생님 부부는 나와 한소조였습니다. 하기에 내가 국제방송국에 편지를 쓰면 목요일 저녁에 청취하시고는 나에게 고무의 전화를 매번 꼭 하여주었습니다. (난 금요일 아침에야 청취합니다)지어는 흑룡강성 아성에 갔을 때에도 전화가 왔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찌 그뿐이겠습니까? 남편이 뇌졸증으로 자립못하신다는 것을 아신 선생님은 일본에 병치료를 가서 본인이 써보시고 좋으시면 타국 일본에서 딸도 위암수술을 하고 본인이 병치료를 하면서도 생활용품을 부쳐 주었습니다. 친형제면 이보다 더 하겠습니까? 놀랍고 감격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2016년 9월 12일은 우리 협회 남하진 선생님께서 타계한 날입니다. 윤영학 선생님은 9월 10일 교사절을 맞으면서 남하진 선생님께 문안을 오셨다가 남하진 선생님의 병이 위급하여 입원치료를 하신다 하여 병원에 찾아가니 의사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며칠 남지 않은 생이라 하였습니다. 윤영학 선생님은 병원 근처 호텔에 주숙을 잡고 일주일이나 병원 호리를 하셨고 남하신 선생님께서 세상을 뜨셨을 때 우리 협회에서 이런 대사에 제일인 오태근 선생님을 모셔다 후사처리를 알뜰히 처리하셨고 추도식에까지 참여 하시고서야 구태로(그때는 장춘시에 안속했음) 돌아갔습니다. 친형제면 이보다 더하오리까.
윤선생님은 언제나 초심을 명기하고 계십니다.
1986년 연길에서 있은 <새 중국 창건 특수기여 영웅인물> 백명중 한 사람으로 홍보된 새중국 3대 악성중 한분인 정률성 탄생 백주년 기념대회, <정률성 평전>책을 ㅌ오해 중국에 온지 불과 5년도 안되는 그분이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를 창작하고 뒤이어 <조선인민군 군가>를 창작해 세계에서 유례없는 기적을 창조했습니다. 하여 윤영학 선생님은 우리 민족에 이런 위인이 계심으로 하여 민족 자오감을 크게 가졌습니다. 
19세기에 고향을 떠나 가고 싶지만 가보지 못하신 고장을 2016년 1월 15일 아침에 일본에 가 병치료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국 서울에서 광주행 고속버스로 우리 중국 조선족 위인이 나서 자란 고향을 찾아갔습니다. 항일전쟁과 공화국 창건에 불후의 업적을 남긴 고 정률성 영웅의 고향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서울 파주시에 수십년간 중국인민지원군 열사 유해를 보살펴 주신 고마운 한국분들을 찾아뵜습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노고와 지성에 감사드렸습니다. 뒤늦게 찾아온 지원군 열사들과 사과하였으며 조국인민들은 당신들을 언제나 잊지 않으며 우리는 당신들의 덕분에 당과 습근평 주석의 옳바른 영도하에 평화롭고 안전하며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으니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들이여 고이 잠드시라 하였습니다. 
윤영학 선생님의 형님인 윤영희는 12세에 혁명에 참가하였고 1936년 2월, 처창즈 유격구를 보위하는 자위반격전에서 희생되었습니다. 희생된 지 79년만에 열사증을 받았습니다. 열사비를 세우는데 쓰려고 돈 2만원을 모아두었는데 국가에선 항일혁명열사 비석은 국가에서 책임진다 하여 그 돈을 평소에 자주 열사능원을 찾아오는 처창즈 3중에 증정하여 학생들의 혁명전통교육사업에 더욱 큰 지지를 하였습니다. 
병치료에 아껴쓰고 생활에서 아껴쓰며 모은 돈 만원을 우리민족 연변축구에 기부하였습니다. 
2016년 연변에 큰 홍수가 났을때 구태구 뢰봉반이 홍수제거활동을 할때 팔십고령에 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 흙물탕 청소에 참가하였습니다. 어찌 이뿐이겠습니까. 연길 맹인 뢰봉반 반장 김봉숙 노인 팔십세 회갑에도 두분이 가셨습니다. 
윤영학 선생님께서 민족의 부흥을 위해 인민을 위해 헌신하신 업적은 한입으로나 글로 쓰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음마하 조선족 양로원>에 이르니 벌써 마경옥 선생님께서는 아래층 복도에 내려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보고 싶고 그립던 만남이여서 서로 부둥켜 안고 울고 울었습니다. 2층에 올라가니 윤영학 선생님은 우리를 마중하려고 앉지도 못하는 몸으로 복도까지 나오셨습니다. 어느 정도의 의지와 얼마나 큰 노력으로 일어나 우리를 마중하러 나왔겠습니까? 그 소중하고 고귀한 정을 어찌 한입으로 형용할수 있겠습니까? 눈물속에 담긴 그 웃음이 모든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윤영학선생님께서 만남의 감사의 인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중 장복순 여사의 이야기 한단락: "윤선생님, 앙니 날때까지 오래오래 사세요."
윤선생님: "아니, 앙니 하나 났습니다." 하여 모두들 웃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장복순 여사가 또 "모두 눈을 감소!"하고 어깨 나란히 사진 한장 찰칵, 너도 나도 서로 보며 사진 찰칵찰칵...
문오회장 김화는 "협회 오면서부터 친애하는 윤선생님께서 저에게 관심이 제일 컸습니다. 난 선생님들을 아버지, 어머니로 모시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건강하세요. 우린 선생님의 친자식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경옥 선생님은 "이제 여러분들이 말씀했는데 개발구 노년협회는 한집식구입니다. 평소 우리가 곤난하면 돈으로, 몸이 아프면 약으로 어떤 분들은 옷도 주고 하여 정신상 많은 고무를 받았습니다. 원래 일년을 살면 잘 산다 하였는데 여러분들의 독려로 지금 2년이 넘었습니다. 천국에 가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도 후사처리에 수요되는 물품을 한아름 안고 오셨군요. 하여 우리 부부는 '노인협회 송가'를 지었으니 노래로 부답하겠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두분께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인송가>
"노인협회 우리 낙원 얼마나 좋아
우리 량주 이곳에서 만복 누리네
자식들 다 키우고 고생끝나던 날
노인협회 종소리에 달려왔네.
아~아~ 노인협회 잊지 못할 그 은혜
우리 량주 무엇으로 보답하리까..."
노래 부르시는 마경옥 선생님도 눈물 흘리면서 불렀고 우리도 눈물을 흘리면서 덩실덩실 노래가락에 춤을 추었습니다. 
량선옥 선생님은 "매일매일을 즐겁게 보내십시오. 두분께서 좋은 일을 하도 많이 하셔서 하늘도 진감하였습니다. 하니 지금부터 자기 건강을 위하여 많이 드시고 오래오래 앉으신다면 그것이 우리들에 대한 보답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안신옥 고문(이번 일을 조직한 구교장 사모님)은 "윤영학 선생님은 의지가 강하시고 유머적이고 낙관적이신 분이십니다. 선생님은 병치료에서 기적을 창조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부부는 부디부디 이 좋은 세상에서 습근평 주석께서 소망하는 이 행복한 삶을 즐기면서 오래오래 앉으세요.
우리는 작별사진을 찰칵찰칵 찍었습니다. 
윤영학 선생님, 당신은 혁명가정에서 태어나 당의 훌륭한 아들임에 손색이 없습니다. 
우리 곁에 계시는 뢰봉입니다. 

2019년 11월 28일
경제개발구 노인협회
박순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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