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凤海
2020-03-23 17:11:26 출처:cri
편집:林凤海

최병성 청취자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앞

그간 안녕하십니까? 우리 청취자들을 위해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바삐 돌고계시는 선생님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장춘애청자클럽은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아나운서” 선생 님들의 육성 전파를 시간과 함게 15년이 넘는 세월을 청취 하면서 많은것을 배웠고 터득했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우리말 자랑스런 우리글로 위대한 중국을 세계에 자랑하고 지구촌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세계를 중국 에 알리는 안목은 인류력사상 어느 조대에도 찾아볼수 없습니다
장춘애청자클럽은 300여명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고 듣고 쓰는 분들입니다. 원로이신 변철호 선배님의 주선으로 새천년 벽두 부터 중앙조선어방송 <오늘의화제>프로 <불멸의 발자취>를 듣기 시작하여 어언 2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2005년 장춘애청자소조를 결성하시고 초대회장에 윤영학 선생님을 선줄꾼으로 중앙인민방송 조선말방송과 중국국제방송 조선어 방송을 청취함으로서 애청자들도 처음 12 명에서 80여명으로 늘어 났습니다.
방송원들과 애청자들과의 뉴대를 돈독히 하기위해 여러가지 지식경연 알아 맞추기와 민족특색이 짙은 수수꺼기 자연 지리 문답 사자성어 큐즈 등형식의 활동에서 윤영학 회장님은 늘 앞장에서 문제의 답을 써서 우편으로 귀방송국에 올림으로 하여 애청자들의 듣고 편지쓰는 열정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2009년 중국국제방송국 조선말방송 개시 60주년기념 행사에 영광스럽게 참가하셨고 돌아 오신후 협회 전체회의를 주최하고 받은 초대를 감격에 넘쳐 보고 하시였습니다 그해<상해 엑스포> <조선어 방송 개시 60돌>지식경연 문답에서 방송국에서 발급한 영예증서 가운데 장춘애청자클럽이 2/3영예를 안아왔고 윤영학 회장님은 영광스럽게 일등의 영예를 지니게 되였습니다
자연의 결정체인 우리 인간들은 제한된 운명과 질병의 침습 고된 사업터의 압력으로 늘 시간에 따라 면역력이 소실되여 가고 있는 10년전 현실에서 애청자사업을 이어나갈 김수영 (원 장백산잡지사 편심으로 사업하다 퇴직했음)선생님을 추대하시고 2010년 6월 장춘애청자 회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새 지도부는 김회장의 두리에 똘똘 뭉쳐 10년간 당의민족 정책의 빛발아래 클럽성립 10주년행사를 성대히 치렸스며 시 민족사무위원회 시조선족로년협회를 받들어 해마다 중국조선문 출판사와 미리 련계하여 단오 전통명절 우리글 도서전시회를 펼쳤으며 시가와 문예창작 소조를 통해 글쓰기에 힘내며 국경절 전야에 시랑송 강연 대회를 년년히 조직했습니다
습근평 <국정운영을 론함> 1.2권 학습은 우리 회원들의 마음속 에 와 닫는 보서로서 모택동사상의 중국에서 계승이며 맑스 레닌주의의 지구촌에서의 승리입니다 
두차례 습근평<국정운영을 론함>1.2권 학습 심득발표 모임에서 장춘애청자클럽 전체회원들은 습근평총서기를 견결히 옹호 하며 위대하고 정확하며 영광스러운 중국공산당을 영원히 따를것을 맹세하였습니다
12월 26일은 위대한 도사 모택동동지의 탄생일입니다. 이날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협회의 빛나는 지난 한해를 총화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의 날로 정해놓고 각 분회 에서 준비한 다채로운 문예 절목으로 하루를 즐기고 있습니다
전임회장 윤영학선생은 10여년간 몸이 불편하여 여러곳을 전전하면서 치료를 받았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도 조선어 방송과 애청자협회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섰고 혁명 영렬들의 릉원참배는 그들이 생전에 꼭 해내야만 할 중국공산당원으로서 임무였습니다. 태항산 렬사릉원 참배,민족영웅 양정우장군 릉원 참배,화피창 릉원참배는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새겼던 꿈이지요.
일본에가 불치병 말기진단을 받고 돌아 오면서 중국국제방 송 전파를 타고 두터운 우의를 맺은 한국 천안시에 계시는 김연준씨, 중국국제방송국 서울주재 김태근씨 분들과의 사전 련락으로 유관부문의 허락을 거쳐 중국인민지원군 렬사 재한 릉원을 2016년 1월 대소한 혹한 계절에 80고령이신 윤영학씨 량주는 끝내 참배를 실천에 옮기였습니다
량주서께는 려정에 고된 로독을 풀념도 하지 않고 1월15일 아침 일찍 서울----광주행 고속뻐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정률성,우리 중국조선족 위인이 나서 자랐고 잔뼈를 굳힌 전라남도 광주시 양림동--정률성의 생가를 찾아가는 윤영학씨 량주의 심정은 한없이 즐거웠습다 량주는 뻐스에서 내려 택시를 불러타고 정률성씨 생가로 가는 길가 량켠에 줄비하게 늘어선 정률성 기념비를 비롯한 <정률성 일가의 항일정신>, <13억 중국인민의 노래>,<음악과의 만남>이라는 세트들을 견증하면서 감개무량 했습니다. 중문으로 쓰여진 “法人社团 郑律成纪念事业会 ” 3m 높이 석비와 정률성 석상도 함게 있었습니다 량주는 그곳에서 가념사진을 남기시고 아쉬우나마 귀로에 올랐습니다
장춘에 돌아오신 후에도 중환의 몸으로 협회지도부 성원 들과 함게 오찬을 하시면서 윤선생님 자신의 갈고 닦아 쓰신 문장들을 역은《尹永鹤文稿》를 증정 하였습니다
새해에 들어 서면서 병환이 악화되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1월 13일 김수영 회장님이 보내 드리는<우병렬과 그의 후예들 >이란 중국조선족 력사축소판을 전해드릴 때 윤선생님은 자리에 누워 계셨습니다
신종코로나 19영향으로 통행이 제한되다보니 문안이 늦어졌습니다. 
윤선생님 힘내세요!
송휘 임봉해 아나운서 고맙습니다. 내내 건강하세요

20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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