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凤海
2020-03-24 17:53:42 출처:cri
편집:林凤海

27년간 오차 한번없이 수만 차의 교통사고 처리

‘시대의 본보기’ 왕청현 공안국 교통경찰대대 도시 중대 최광일 지도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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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독증 말기 진단을 받고도 계속 일터를 지키고있는 교통 경찰 최광일-왼쪽 첫 사람)

"진정으로 남을 관심하고 도와주는 사람, 명예나 사리를 도모하지 않고 평범한 일터에서 드높은 책임감으로 인민 대중의 생명 안전을 지켜주는 교통경찰, 자아희생적으로 묵묵히 사업하는 진정한 공산당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인민 경찰”, 이는 왕청현공안국 교통경찰대대 최광일 지도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올해 54세에 나는 최광일은 공안교통사업에 종사하면서 27년을 하루와 같이 변함없는 열정으로 인민 대중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봉사해왔다. 2002년의 어느 하루 두 동료와 함께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가던 중 한 식당 앞에서 몽둥이와 칼을 휘두르며 무리 싸움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였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주저없이 달려가 싸움을 막아 나섰다. 최광일은 폭도들의 칼에 두 곳이나 찔려 온몸이 피투성이로 되면서도 끝내 무리 싸움을 제지시켰다. 그의 용감무쌍한 정신은 공안 계통의 인정을 받아 3등공을 기입 받고 2004년에 동광진파출소 대리소장으로 임명되었다. 

2005년 사업의 수요로 최광일은 교통경찰대대에 전근되어 선후로 도시 중대 민경, 배초구 중대 중대장, 복흥 중대 지도원으로, 올해 4월에는 도시 중대 지도원으로 임명되었다. 도시 중대는 10여명의 집법 민경이 있지만 정식 민경은 단 2명뿐이라 매일 만 여 대의 차량과 30여킬로미터 구간의 도로교통 관리를 진행하느라면 숨돌릴 겨를도 없다. 

최근 년간 왕청현의 경제환경이 좋아지면서 차량도 배로 증가되어 현성의 교통 압력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도시중대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터를 지키느라 명절에도 휴식이 따로 없다. 집에 돌아와서는 출국 노무에 오른 아내의 빈자리를 대신하며 신 새벽에 일어나 딸애에게 밥을 해 먹이고 저녁 늦게 퇴근해서는 역시 가무일을 감당하는 주부로 된다. 그러다가도 느닷없이 교통사고가 발생하거나 교통 분쟁이 생기면 손에 묻은 물도 닦을 사이 없이 뛰쳐나가군 한다. 

해볓이 쨍쨍 내리 쬐는 여름날이나 눈보라가 씽씽 휘몰아치는 엄동설한에도 일터를 굳건히 지켜선 최광일의 모습은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던 2012년초, 최광일은  구역절이 나고 머리가 어지러우면서 맥이 풀리는 증상이 나타났다. 동료들은 하루라도 집에서 편히 휴식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자리를 뜰 념 않고 계속 일터를 지켜서던 그는 당장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당뇨병을 앓고있으면서도 자신의 몸을 돌볼 겨를이 없었던 그는 요독증 말기라는 진단을 받는다. 이 청천벽력같은 현실 앞에서 최광일은 냉정해졌다.(이미 이렇게 된 이상 집에 앉아 죽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죽어도 일터에서 죽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불길한 소식을 접한 아내는 노무일을 접고 남편 곁으로 돌아와 남편을 보살펴주었다. 남편은 매주 세차례 씩 투석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투석치료를 마치는 대로 곧장 일터로 달려가는 남편을 말려낼 수가 없었다. 올들어 왕청현성에서는 도로 수건이며 난방배관개조를 하다보니 도로가 막히고 교통질서에 혼잡을 빚고있다면서 남편은 하루도 시름 놓고 휴식하지 않았다. 

교통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인민 대중의 생명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최광일은 시공현장마다 해당 경찰을 배치해 오가는 차량을 지휘하게 하고 자신은 주동적으로 차 흐름량이 제일 많은 도로를 맡고 하루 종일 분망히 돌았다. 그러다 발이 퉁퉁 부어 신을 신을 수가 없게 되자 그는 아예 끌 신을 신고 일터에 나섰다. 

최광일은 합격된 교통경찰이 되려면 열정만 있어서는 안된다면서 학습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기량을 쌓아 무슨 일이든 책임성있게 잘 완성해나갔다. 그는 조선족이지만 여러가지 한족 지방언어들을 능숙하게 장악하고 어떤 운전기사들과도 소통을 하면서 빈틈없는 인성적인 봉사를 하였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교통경찰사업을 해온 20여년간 그는 수만 차의 교통사고를 처리했지만 불복해 그를 다시 찾아오는 일이 한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광일은 언제나 "법집해은 인민 대중을 위한다"는 원칙을 견지하면서 드높은 사명과 책임감으로 법집행 최전방에서 묵묵히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고 있다. 그는 선후로 " 공산당원의 본색을 잃지 않는 공안교통전선의 훌륭한 본보기","내가 가장 사랑하는 인민경찰", 전국 "시대의 본보기"로 선정되었다.

리강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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