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凤海
2020-04-22 16:29:17 출처:cri
편집:林凤海

공산당원의 가치를 실현해가는 녀 민경

황련옥씨를 잘 아는 사람이나 그와 접촉해 본 사람들은 그를 《진정으로 남을 관심하고 도와주는 사람이고 평범한 일터에서 명예나 사리를 도모하지 않고 드높은 책임감으로 묵묵히 인민대중들을 위해 봉사하는 수많은 여 민경들의 대표》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올해 52세에 나는 황련옥씨는 연변주 왕청현공안국 호적접수창구의 한 보통 호적민경이다.
1987년에 왕청 고중을 졸업하고 왕청현 공안국에 배치 받아서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장장 25년간 공안 사업에 자신의 청춘을 고스란히 바쳐왔다. 그는 33년을 하루와 같이 고정된 일터에서 변함없는 미소와 변함없는 사업열정으로 인민 대중을 위해 전심 전의로 봉사해왔다. 그녀는 학습에 게으르지 않고 무슨 일이든 책임성이 강했다. 조선족이지만 여러가지 지방 언어를 능숙하게 장악해 부동한 고객들에게 빈틈없는 인성화봉사를 진행하였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그녀가 호적접수창구의 사업을 맡은 15년 동안에 6만여명의 고객을 접대했지만 오차가 생겨 고객들이 다시 찾아오는 일이 한차례도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평소에 남다른 창의력으로 대중들의 수요에 근거해 황련옥씨가 고안해낸 《10분 사업 방법》, 《전화예약봉사》, 《문전송달봉사》, 《장애자록색통로개척》 등 편민봉사제안은 광범한 군중들의 호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업효율도 배로 늘어 왕청현 공안국 호적관리대대의 봉사 능력을 크게 제고시켰다.

2009년의 어느날 복흥진 모 촌의 한 할머니가 호적접수창구에 찾아왔다. 동사자들은 노인의 말이 너무 진한 산동말투여서 뭐라고 하는지 한마디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이 때 황련옥은 노인과 대화를 하면서 그 노인이 호구부의 연령과 실제 연령이 맞지 않아 최저생활보조금을 향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체가 허약한 노인을 되돌려 보낼 수 없어 자기 집에 데려다 주숙시키고 이틑날 왕복 400리나 되는 복흥진에 가 심입, 조사하면서 수요되는 수속을 하나하나 대리로 해주어 노인이 최저생활보조금을 향수하게 하였다.

2011년 3월, 사회보편조사를 통해 천교령 임업국의 김정자 노인이 젊었을 때 남편과의 불화로 수십년 동안 외지에서 생활하였는데 연세가 많은 지금 ‘암’진단까지 받았어도 호구가 없어 의료보험이나 최저생활보장금을 향수할 수 없다는 사연을 알게 되었다. 그는 즉시 천교령 임업국 공안국에 연계한 후 직접 김정자 노인의 호적지에 가 자료를 수집해 호구를 해결하여 노인이 응당 받아야 할 의료보험과 최저생활보장금을 향수할 수 있게 하였다.

복흥진의 왕설영 어린이는 출생 시 부모들이 벌금이 두려워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원인으로 학교 갈 나이가 되었는데도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황련옥씨는 또 한번 복흥진에 내려가 증거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출산수속도 보충해주어 설영이가 근심없이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하였다. 황련옥씨가 참신한 호구부와 자비로 산 학습 용품을 설영이의 손에 쥐여주자 어린 설영이는 황련옥씨의 앞에 풀썩 무릎을 꿇었다. 그는 눈물이 글썽해 《경찰아지미의 덕분으로 호구 없던 나도 학교에 가게 되엇습니다. 아지미는 나의 어머니입니다!》라고 하며 황련옥의 품에 안겼다.

정무대청 공안호적접수창구를 책임진 15년 동안에 그가 고객들의 어려움을 직접 해결해준것이 380여차에 달한다. 그는 늘 《대중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은 나의 직책이고 대중이 만족해 하는 것이 나의 제일 큰 쾌락》이라고 말한다.
황련옥씨의 드높은 사업 열정과 사업성과는 사회 각계와 각급 정부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선후로 연변주공안계통의 《호적내근사업 선진 개인》, 《3.8 홍기수》 등 수많은 영예 칭호를 수여 받았다. 황련옥씨는 오늘도 자신의 실제행동으로 한 공산당원의 가치를 실현해 가고 있다.

리강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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