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凤海
2020-05-03 19:54:37 출처:cri
편집:林凤海

리종광 청취자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앞:

송휘, 리명란 아나운서 안녕하십니까. 저는 8개월이나 국제방송국에 쓰지 못했던 편지를 오늘부터 다시 쓰려고 합니다. 그간 저는 병환으로 두번씩이나 입원하였고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는 잘 휴식하고 힘든일 하지 말라고 노친과 딸들이 자유를 주지 않아 편지 쓸 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진정 건강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건강이  회복되었으니 편지를 써볼까 합니다. 오늘은 2019년 9월에 딸의 요청으로 일본 도쿄에 체류하며 느낀 감상중에 가장 큰 소감 두가지를 써볼까 합니다.

제1편: 일본에서도 조선말과 글을 쓰고 있으니 나도 조선족으로 조선말을 할줄 알고 조선글로 문장을 쓴다는 것이 긍지감으로 떠올랐다. 일본 나리타(成田)공항 출구로 나오니 공항 간판이 보였다. 간판에는 일본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조선어) 4가지 언어로 공항이름을 써 붙인 것이다. 한국어 문자가 일본 4대 통용언어, 문자가 되었다는 표시인 것이다. 길가에 세워진 길안내 표지판에도 나리타라는 이름이 씌여져 있었다. 나리타공항에서 도쿄역까지는 공공버스를 이용했다. 차에 오르자 가이드 아가씨는 환영사를 4가지 언어로 말하는가 하면 주의사항, 해설도 4가지 언어로 방송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도쿄 1일 관광에 나섰는데 관광차에 오르자 가이드는 번역기를 발급하였다. 나는 한국어, 노친은 중국어번역기를 요구하였다. 나의 귀에는 가이드의 일본말 해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마치 한국 아나운서의 방송처럼 울려왔다. 딸집에서 알았는데 동경 텔레비 방송국에는 조선말 방송채널이 2개나 있다. 이것으로 일본말을 모르는 우리 량주는 심심하지 않았다.

여기서 나는 어린시절에 겪었던 말에 대한 설음을 회억한다. 1945년 3월에 보통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 4월의 어느날 선생님은 내가 같은 반 학생들과 조선말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대나무 판자로 나와 동학생의 손바닥을 7차례나 때리고 나서 교실앞에서 팔을 들고 20분 서 있는 벌을 받았다. 그후 5개월이 지난 1945년 8월 15일에 일제는 망했다. 나는 지금도 조선말을 한 죄로 맞고 벌 받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라를 잃고 자기 민족의 말을 할 권리조차 상실한 조선민족의 비애를 영원히 기억하고 그 비참한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 분투하여야 한다. 그렇듯 조선사람을 멸시하고 조선말과 글을 없애고 조선민족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하던 일제는 소멸되고 지금의 일본사람들은 조선사람을 평등우애하게 대하며 말과 글도 중시한다. 일본 정부의 소수인들은 일본 군벌제국을 꿈꾸고 있지만 망상에 불과하다. 일본인민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때문이다.

제2편: 일본에는 ‘중화일가’가 있다는 것을 청취자들은 아시나요? 물론 아시는 분도 모르는 분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정식으로 소개한 사람은 없었던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간단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중화일가(中华一街)는 일본 요코하마에 있는 중국인이 경영하고 세계 사람들이 구매하며 즐겨보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이곳은 주야로 경영하는 거리이지만 밤세계가 더욱 사람들의 인기를 끌어 모여드는 곳이다. 9월 25일 저녁 8시에 도쿄역에서 요꼬하마 밤세계 관광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출발하였다. 두 시가지의 밤거리는 너무도 아름답고 번화하여 눈이 모자라서 다 볼수 없었다. 두 곳의 거리는 고속버스로 한시간 정도였으나 어디가 동경이고 어디가 요코하마인지 명확한 분계선이 없었다. ‘중화일가’ 입구에 도착하자 휘황한 등불아래,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붉은 바탕에 노란색 글이 새겨진 거대한 프랑카트였다. 거기에는 이 “热烈庆祝中华人民共和国成立七十周年”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국땅에서 내가 예측도 못했던 공화국 경축의 구호를 보니 나의 심정은 격동되고 감개무량했다. 우리 중국은 참으로 위대하고 슬기롭구나 생각하며 프랑카트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녹화도 하였다.

중화일가에 들어서니 각종 채색등이 우리들의 눈을 황홀케 하였다. 중심거리에 골목거리를 합하면 그 규모가 대단히 큰 것이었다. 이곳의 손님들은 일본인이 절반이였다. 여기서는 백인, 흑인, 황종인 등 세계 각국의 손님들을 만날수 있다. 이곳에서 영업하는 상가는 모두 중국에서 저명한 음식점과 식품회사들이다. 그들은 자기의 명품식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자기 입에 맞고 마음에 드는 식품을 맛보는가 하면 선물과 기념품으로도 사가기도 한다. 매대마다 사람이 몰려 있었고 어떤 매점에는 줄까지 서고 있었다. 이곳에는 북경, 상해, 천진, 광주, 중경, 항주 등 음식이 있을뿐더러 동북 각지의 음식도 있었다.

중국의 음식이 일본 사람과 세계 각국 사람들에게 인기가 이렇게 높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중화일가는 중국음식문화의 축소판으로 여기서 중국을 소개하고 자랑하는 창구가 되고 여기가 일본인 및 세계 각국 인민들과 친선을 촉진하는 중국이 띄운 별이다.

끝으로 중국 여러 민족 인민이 습근평 새시대 사회주의사상의 기치를 높이 받들고 각종 사업과 건설에서 취득한 위대한 업적과 발전을 조선말로 지구의 방방곡곡에 방송하여 알리는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의 전체 임직원들에게 수고하였다고 감사드리며 당신들의 방송사업의 위상이 날따라 높아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우리 애청자들은 송휘, 이명란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계속 열성내어 청취하겠습니다. 부디 건강하고 안녕하시기를 바랍니다.

장춘애청애독자클럽 경제개발구분회

리종광 올림

2020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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