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20-05-04 17:08:55 출처:cri
편집:朱正善

써족의 문화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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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족은 이주 과정에 황무지를 개간해 생산을 발전시킴과 아울러 선명한 민족 특색을 지닌 풍부하고도 다채로운 문화예술 성과도 이룩했다.

민가:

써족의 문학예술은 아주 풍부하다. 민가가 써족 문학의 주요한 구성 부분인데 주로 써족어로 부른다. 때문에 써족의 문학은 민간구두문학이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매번 명절 때면 써족은 노래로 즐거운 심정을 표하며 산이나 들에서 노동을 하거나 친지를 방문하고 손님을 맞이할 때에도 늘 노래로 대화한다. 써족의 민가는 소재와 내용에 따라 서사가와 잡가, 의식가로 나눈다. 서사가에는 신화전설가와 소설가가 있고 잡가는 사랑과 노동생활, 윤리도덕, 오락생활 등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의식가에는 혼례가, 조상가, 공덕가 등이 있다. 써족 민가의 곡조는 산노래조와 사공조(師公調)로 분류된다. 산노래는 대부분 가성으로 부르며 창법에 따라 평조가, 가성가 고음가 등 세가지 나뉜다. 써족은 산 노래를 즐겨 부르는데 명절에 부르고 생산노동 과정에 부르고 손님 맞이 때에 부르며 사랑을 전할 때에도 부른다. 써족은 독창과 대창, 제창의 방식으로 산 노래를 부르며 무반주 산 노래가 써족인들이 가장 즐기는 민가의 방식이다. 특히 ‘쌍음’은 써족인들이 가장 정통한 2성부 중창으로 ‘쌍음낙’(雙音落)이라고 한다. 써족은 1년에 가회가 여러차례 진행되는데 음력 4월 분룡절(分龍節)에는 복안(福安) 목양(穆陽)일대의 소제산(蘇堤 山)에서 우석강(牛石崗) 가회, 6월 초하루에는 복안 류양(留洋) 백운산 가회, 7월 초이레에는 복안 사구(社口),영갱(營坑) 백운산 가회, 8월 추석에는 보안 성관진 (城關鎭)가회, 9월 초아흐레에는 하포성마관양목련산(霞浦城關馬洋目蓮山)과 계남 갈운산(溪南葛雲山) 가회 등을 가진다.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 써족의 민가를 보면 약 1000여수, 총 4~5만 줄에 달한다. 그 중 장편 서사 시가  ‘고황가’(高皇歌)가 가장 유명하다. 일명 ‘반고가’, ‘용황가’(龍皇歌), ‘반호왕가’로도 불리는 ‘고황가’는 300~400구에 달하는 7언 서사시이다. ‘고황가’는 신화의 형식으로 써족의 시조인 반호가 공을 세우고 만난을 뚫고 반씨, 남씨, 뢰씨, 종씨 성의 후손들을 번식해나간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고황가’는 써족의 원시 종교 신앙과 토템 숭배를 보여준다. 특히 연환화의 방식으로 그려진 전설 ‘조상도’가 유명하다. ‘조상도’는 길이 10여 장 되는 천에 색연필로 40여폭의 연환화를 그려 써족의 토템 숭배를 보여주었으며 세세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 외 써족향에서는 고취(鼓吹)음악이 성행한다. 거의 마을마다 2~8명으로 무어진 고취반이 있고 곡조와 연주 풍격은 한족의 고취 음악과 비슷하다. 수르나이와 타악기 징, 북, 심벌즈, 판, 방울이 앵되는 외 피리, 이호, 경호, 월금 등도 큰 사랑을 받는다.   

스포츠:

써족은 스포츠를 즐긴다. 써족의 민간에는 무술, 등산, ‘자촌놀이’(打尺寸), ‘석돌다루기’, ‘해마’타기, 죽림경기 등 재미나고 특이한 스포츠 경기종목이 많다.  써족은 천 백여년간 무술을 익혀오며 자체의 민간 무술을 형성했다. 중화인민공화국 해방 전 써족이 무술을 익힌 것은 압박과 착취에 반항하기 위해서였지만 해방 후에는 몸을 단련하고 문화생활을 풍부히 하기 위해서였다. 써족의 무술에서 써족 권술이 가장 유명하고 그 다음이 봉술이다. 써족의 독창적인 권술은 300여년의 역사가 있다. 그 창제인은 뢰오룡(雷烏龍)이며 사람들은 그를 ‘오룡공’(烏龍公)이라고 존칭한다. 써족의 권술은 아주 많이 보급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내는 점혈(点穴)쿵푸우가 유명하다. 무술에 정통한 노권술사는 보통 점혈과 의술 모두에 능통하다. 하지만 써족의 무술은 더 한층 되는 정리와 발굴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써족의 봉술은 종류가 많고 동작과 이름도 다양하다

공예:

근면하고 순박한 써족의 여성들은 편직과 자수에 능하다. 써족의 편직공예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채색 띠와 대오리로 결은 공예품 죽편이다.

채색 띠는 꽃무늬가 수놓아진 허리띠와 멜빵을 가리킨다. 써족의 여성들은 5~6세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채색 띠를 만드는 법을 익힌다. 채색 띠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이 한 여성의 솜씨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각지 써족 여성들의 의상은 서로 다르나 공동한 특징이 있다면 상의에 수를 많이 놓는 점이다. 특히 복건 복정과 하포의 써족 여성들의 상의를 본다면 옷깃과 대금, 소매 등 곳에 각양각색의 꽃무늬와 새, 용 봉황 문양을 즐겨 수놓으며 써족은 이런 상의를 ‘봉황장’(鳳凰裝)이라고 이름 지었다. 써족 처녀들은 또 정성껏 수놓은 손수건이나 채색 허리띠를 사랑의 징표로 애인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써족의 채색 띠는 요원한 시대 써족 선인의 복 기원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오늘까지 전해져 내려오며 살아 숨쉬는 써족의 ‘문화재’로 부상했다.

써족 지역에서는 또 석죽, 반죽, 금죽, 뢰공죽 등 대나무가 많이 나 대오리로 결은 공예품을 만드는 풍부한 원자재가 되고 있다. 써족의 여성은 대오리로 삿갓을 잘 엮는다.  꽃무늬가 아름답고 공예가 정교하며 채색 띠와 오색 구슬을 드리워 다분한 민족 특색을 지닌 대오리 삿갓은 써족 지역의 인기 관광 제품과 수출 공예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런 삿갓은 또한 써족 여성들이 가장 애용하는 장신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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