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20-07-16 14:40:28 출처:cri
편집:朱正善

(시골 제1서기들의 이야기) 곽혁앙, "여자 친구요? ! 일단 가난구제를 마치고 봅시다! "

곽혁앙(郭奕昻)은 1990년대 생, 이른바 쥬링허우(90后)이다.

길림성 덕혜(德惠)시 노동사회보장감찰대대(社會保障監察大隊) 감찰원(監察員)인 그는 2019년 4월에 길림성 덕혜시 혜발(惠發)가두 영생촌(永生村)의 마을 주재 제1서기로 파견되었다.
"올해 우리의 아름다운 시골 건설이 이미 마무리됐습니다. 흰 벽 검은 기와, 아스팔트 도로가 마을 모습을 일신했습니다. 거리 양켠 인도에는 무늬 타일도 깔아 지금 마을의 오솔길을 걷노라면 강남의 작은 현성에 온 듯한 착각이 듭니다!  2년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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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혁앙은 일찍 2018년 1월부터 마을 주재 업무팀 팀원의 신분으로 영생촌의 가난구제를 도왔다. 그는 당시 마을의 대부분 길은 흙길이여서 개인 날에는 옷에 먼지가 달라붙었고 비오는 날이면 옷이 진흙으로 얼룩진다고 생동하게 묘사했다. 낙후된 교통상황은 촌민들이 재배한 농산품을 제때에 도시로 운송못해 눈을 뜨고 채소가 썩어가는 것을 지켜 볼수 밖에 없었다.
촌민들의 문화정도도 낮은 편이었고 수입내원도 한 곬이고 그 마저 안정치 못했다. 마을의 집체 재산도 유실이 심각하고 촌민들의 원성이 높았으며 모순이 많았다. 마을에는 보건소가 있다고는 하나 의사도 없고 시설도 부실했으며 약품도 부족해 촌민들에게 큰 의지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마을에는 그렇다 할 가난구제 산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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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혁앙, 젠틀카드 빈곤호 호진발(戶鎭發)을 이끌고 장춘시 제1서기 전시회에 참가해 초물(草編) 제품 판매

"촌민들이 저를 받아 들이게 하려면 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친화력으로만 부족합니다. 농촌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지식과 촌민들을 위해 서비스할수 있는 기량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갔습니다."
경험이 있는 마을 간부와 마을의 재배농가, 농업기술 보급 센터의 전문가들이 모두 그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스승이 되었다. 짬만 나면 그는 이들을 찾아가 허심히 묻고 때로는 반나절씩 이야기를 나누었다.
빈곤촌이 가난의 모자를 벗으려면 맞춤형 가난 구제 정책이 뒷받침돼야 된다. 매 가정의 실제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그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빈곤호들과 면대면으로 직접 얘기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 그들이 가난해진 원인, 가정 식구수와 생산생활 상황, 현재 직면한 실제 어려움 등을 알게 되었고 일일이 노트에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1인1대책'의 맞춤형 가난구제 조치를 제정해 취업이 가능한 사람들을 제때에 고용업체와 연결해주고 직업기능 습득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제때에 직업 기능 양성반 교육에 참가시켰으며 병때문에 가난해진 가정들에는 국가의 의료구조 정책을 상세히 알려주고 그들이 제때에 병을 보이도록 도와주었으며 학업때문에 가난해진 가정들에는 국가의 교육지원 정책을 소개하고 신체 장애때문에 가난해진 사람들한테는 그들이 국가의 장애인 정책을 누릴수 있도록 주선했다. 실제 업무과정에 그는 일부 빈곤가구들에서 물질적인 빈곤보다 정신적인 빈곤과 사상적인 빈곤, 진취심과 동력 부족으로 인한 빈곤이 더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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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혁앙, 빈곤가구에 생필품 전달

"이러한 빈곤가구들이 이상과 신념을 가지고 능력을 키우도록 돕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봅니다. 우선은 빈곤가구들에 가난에서 벗어날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어 그들의 자주적인 탈빈곤 욕구를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그냥 앉아서 누가 도와주려니 기다리고 믿고, 요구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빈곤가구들이 탈빈곤의 능력과 재간을 키워 자신들의 두 손으로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의 길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매 빈곤 가구 방문 시 그는 항상 인내심있게 국가의 가난 구제 정책 규정과 그 중요한 의미를 설명해주고 그들의 자신의 힘으로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고무했다. 그는 가난을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운명을 바꾸는 것을 댜음 생에 기탁하려는 사상을 버리고 국가의 가난 구제를 일종의 대우로 받아들이려는 안일함을 버려야 한다고 누누이 얘기해주었다.
곽혁앙 서기는 또 '영생촌 신형 직업농민 양성 계획'을 제정해 전공과 전기용접공, 중국식 제빵사(中式面點師), 수공편직, 유기농 채소 재배, 생화재배 직업기능훈련을  전개해 신형 직업농민 712명을 양성했다.
2018년 그는 젠틀카드 빈곤호인 호발진을 도와 혜발가도부계(富啓) 수공편직 합작사를 성공적으로 설립했으며 수차 그를 전시회에 데리고 가 그들의 제품을 홍보했다.
2019년에 곽혁앙은 라이브커머스라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 플랫폼에서 호진발은 뛰어난 수공예 편직기술과 생동하고 유머러스한 생방 언어를 구사해 현지의 '왕훙'(인플러언서)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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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혁앙 라이브스트리밍으로 상품 판매

올해 코로나 19 기간 영생촌은 시의 통일적인 요구에 따라 마을에 대한 봉쇄식 관리를 실시했다. 마을의 각 입구가 봉쇄돼 가난 구제 제품인 계란의 판로가 큰 애로를 겪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곽혁앙은 주동적으로 '서협객"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연락해 영생촌 계란의 우량한 품질과 생산능력을 상세히 설명해 상대측의 관심을 끌었으며 계란을 성공적으로 '서협객' 플랫폼 온라인 판매에 진출시켰다.
수년간의 노력끝에 영생촌은 빈곤의 모자를 벗어던졌을뿐만아니라 마을의 산업도 발전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촌민들의 소득이 증대되고 자질도 제고되었으며 주거환경도 개선되었다.
현재 영생촌은 마을 모습이 일신했다. 농한기에 마을에서는 여러가지 가무공연을 조직하고 있고 가끔 전문팀을 초청해 마을에 와 공연도 한다.
그리고 해마다 예술축제와 표창대회도 진행된다.
곽혁앙 서기는 지금 도시의 친구들이 자신의 마을 생활을 부러워 한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올해 28세인 곽형앙은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 곽혁앙은 수줍게 말한다.
"매일 촌민들과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노동하니 어디 시간이나 기회가 있겠습니까? 여자 친구는 가난 구제가 끝나면 그 때 다시 생각해 봐야죠!'

번역/편집:주정선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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