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에서 사람 인(人)자는 두 획만으로 한 글자가 되어 하나 일(一)자를 제외하고 가장 심플한 한자이다.
일각에서는 두 획이 서로 기대어 글자를 형성한 인(人)자가 인간은 서로 기대고 서로 지지해야 다 같이 살고 한 쪽이 쓰러지면 다른 한 쪽도 존재가치가 없어짐을 나타낸다고 분석한다.
인간의 생활양식을 보아도 인간은 홀로 사는 종이 아니라 모여 사는 사회적 동물이다.
열병기가 없던 시대에 인간은 취약한 종이었다. 몸뚱이 하나에만 의지하는 인간은 들개 한 마리도 피해 다녀야 했고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반드시 하나로 뭉쳐야 했다. 단합의 힘이 어느 정도 강대한지 잘 아는 인간은 똘똘 뭉쳐 더는 다른 종을 무서워하지도 피하지도 않고 오히려 빠른 진화와 발전을 거쳐 모든 종의 정상에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간은 함께 모여 사는 생활양식에 습관되었고 그 습관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인간이 다른 종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강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오늘날에도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인간은 서로 보듬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더욱 공동체의 형성을 수요하는지도 모른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함께 모여 살던 사회적 동물인 인간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가족구성만 봐도 과거에는 기본적으로 3대가 한 집에서 살고 최고로는 4대, 5대가 한 저택에서 살았는데 현재는 그 대가족의 규모가 점점 줄어 핵가족 중심으로 변했고 핵가족도 독신 가족, 자녀 없는 가족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심지어 1인가구가 증가세를 보이고 혼 밥, 혼 술문화가 형성되기도 해서 혼자 만의 공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상황이다.
물리적 거리가 확대되면서 마음의 거리도 멀어진다. 과거에는 넓지 않은 마당을 둘러싸고 여러 가구가 모여 살면서 이웃 사이에 끼니때마다 서로 음식을 돌리며 한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고 이 집 저 집 놀러 다니며 매일 이웃 사촌의 명언을 실현하고 크고 작은 공동체를 형성, 유지했다. 하지만 일인당 주거면적이 훨씬 확대된 지금은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바로 이웃에 사는 사람의 성씨도, 직종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나 복도에서 마주치면 미소를 머금거나 고개를 끄떡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해도 양호한 이웃관계로 평가될 정도이다.
코로나 사태가 세계를 휩쓸고 코로나 19 방역이 일상화되면서 경제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이 더 활성화되고, 바다 건너와의 대화도 화상회의로 진행되고, 근무는 자택근무, 학교는 원격 수업, 생필품 구입은 배달…거의 모든 분야에서 비대면이 주를 이룬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모임이 줄고 만남이 끊기고 사람과 사람 간의 살가운 접촉도 줄어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는 집 문밖에 나가지 않는 방콕족이 많아진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비대면이 주를 이루어도, 나 혼자만의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져도 인(人)은 서로 기대고 서로 지지하는 종이고 인간은 모여 사는 사회적 동물임은 여전하다.
비록 물리적 거리나 공간에 변화가 생겨도 마음의 거리를 가깝게 유지하면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마음을 느끼고 서로 기대며 운명을 함께 하는 공동체를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옛 시조에 이런 작품이 있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 리라도 지척이요, 마음이 천리면 지척도 천 리로다.
우리는 각재천리오나 지척인가 하노라”. 마음이 통하는 사이라면 천 리 거리도 장애가 되지 못하고 바로 곁에 있어도 천 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 리 멀리 헤어져 있어도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이 늘 지척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문자나 톡, 음성 전화나 화상전화 등 통신수단이 발달된 오늘 마음만 먹으면 마음의 거리를 좁히기는 식은 죽 먹기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숨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지금도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 속에서 줄어드는 마음의 거리가 더운 여름 우리의 삶에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 리도 지척이다.
<출처: 조선어부 논평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