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20-07-30 16:58:08 출처:cri
편집:朱正善

(시골 제1서기들의 이야기) '촌 사람'으로 변한 53세의 제1서기 마흥문

(시골 제1서기들의 이야기) '촌 사람'으로 변한 53세의 제1서기 마흥문_fororder_马兴文

중국 서북부의 감숙성 임하(林夏)회족자치주 임하시 시민들 속에서는 이런 말이 유행한다. 

"임하시가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관건은 왕평(王坪)촌이다."
임하주는 사천 양산(凉山)주, 운남 노강(怒江)주,와 나란히 가장 가난한 세 개 주의 하나이다. 
그 중 임하주 임하시 포한(枹罕)진 왕평촌은 임하시의 유일한 산간촌으로 해발 2130미터 되는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인프라 시설이 뒤처져 산업이 더없이 취약하다. 하여 2013년 이 곳의 빈곤발생율은 무려 64.2%에 달했다. 
마흥문(馬興文)은 2012년 9월 마을 주재 서기로 왕평촌에 파견되어 가난구제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장장 8년이 흘렀다. 
지난 8년간 마흥문 서기는 전 촌의 252가구의 촌민과 함께 2017년 12월 전 마을 탈빈곤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고 촌민들의 1인당 소득이 2013년의 2495원에서 2019년의 7721원으로 증대한 기쁨도 함께 나누었다. 
올해 53세인 마을 주재 제 1서기 겸 촌 업무팀 팀장인 마흥문은 이젠 완연한 '촌 사람'이다. 
"마을 주재 서기는 반드시 일심전력으로 마을을 위해 실제적인 일들을 해야 합니다. 진심만이 진심을 바꿀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적을 이루어야 촌민들이 지지를 얻을수 있고요"   
마흥문 서기의 경험담이다.
'공산당이 좋습니다. 공산당이 파견한 간부가 친인보다 더 좋습니다.' 왕평촌의 곽련매(郭蓮梅) 노인은 세상을 하직하기 전, 자신의 전 재산을 촌 위원회에 맡겨 처리하려 했다. 이 같은 결정에서 한 독거노인과 촌 간부의 끈끈한 정을 엿볼수 있다.
네 딸 모두 외지에 시집 간 곽련매 노인은 마을에 홀로 남은 독거노인이다. 마흥문 서기는 마을에 온 뒤 이 고독한 노인을 특별히 관심하여 짬만 나면 노인을 찾아가 어려움이 없는지 알아보았다. 그리고 곽련매 노인이 입원한 기간에는 기타 마을 주재 간부들과 함께 노인의 '임시 자녀' 역할을 하며 윤번으로 할머니를 간호하고 퇴원 후에는 임하시 복지원에 보내 보다 살뜰한 보살핌을 받도록 했다. 그 후에도 시간만 되면 복지원에 들려 노인을 위문하고 자신의 사재를 털어 노인에게 위문품을 사다드리기도 했다. 
2019년 2월, 곽련매 노인은 임종을 앞두고 마흥문 서기와 촌 위원회 사업인원, 그리고 네 딸을 불렀다. 노인은 수년간 마흥문 서기 등 마을 주재 촌간부들이 친자식보다 더 살뜰히 자신을 보살폈다며  자기 집 부지와 도급맡은 땅, 몇 칸짜리 가옥, 복지금 전부를 촌 위원회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마흥문 서기와 기타 촌 간부들은 많지는 않으나 노인이 한평생 모은 자산을 자식들이 이어받도록 하는게 더 나을 것 같다며 완곡히 거절했다. 

"노인의 이런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이 몇년간 마을에서 한 고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했습니다. 공산당원의 사업은 더없이 숭고합니다."
처음 촌민 마건성(馬建成)의 가정을 방문했을 때 집안에 앉아서 정부의 구제만 기다리던 이 빈곤가정의 태도가 자신을 경악시켰다는 마흥문 서기이다.
마건성네는 늙은 양주가 낮은 둑집에서 살고 두 마리의 당나귀를 기른다. 부부는 모두 최저생활보장금을 받는 촌민으로 정부의 구제만 기다리고 있었다. 마흥문 서기는 그들의 상황을 자세히 알아본 뒤 두 사람 모두 노동능력도 있고 고생도 두려워 하지 않으나 그렇다 할 재간이 없어 그냥  국가 신세만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흥문 서기는 마건성 부부의 실제 상황에 비추어 그들이 양식업에 나서도록 적극 도왔다. 우선은 짧은 꼬리 양 다섯마리를 무료로 신청해 이들 부부가 길러보도록 하고 1년 후에는 도셋양을 기르도록 했다. 여기서 짭짤한 경제소득을 본 이들 부부는 2019년에 온실 재배 비닐하우스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양을 길러 모은 돈으로 6칸까지 기와집도 지었다. 지금 마건성 부부는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자력갱생해야 한다며 더는 최저생활보장금을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왕평촌에 금방 도착했을 때 마흥문 서기는 이 곳 촌민들이 이 땅을 떠나기 아쉬어 타지에 나가지 않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마을에서 농사를 지어서는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마흥문 서기는 임하주 농업학교에 가 모란꽃 재배 전문가들을 청해 왕평촌 자반모란 농민재배 전문 합작사를 설립했다. 그는 또 땅에서 해방된 인력이 기타 성에 가 취직해 매달 최소 4천원의 수입을 손에 쥐도록 동원했다. 그리고 타지 진출이 어려운 노인과 여자들은 합작사에 나가 하루 60원의 일당을 받으며 일을 할수 있도록 배치했다. 
수년간 왕평촌의 모란꽃 재배원은 이미 인근에 소문난 관광명소가 되었으며 모란차와 모란 정유 시리즈제품으로 판로를 넓혀가고 있다. 
지금의 왕평촌은 '하주모란의 첫 마을'로 불린다. 해마다 전국 각지의 관광객들이 이 곳에 구름처럼 모여든다. 
2020년 마흥문과 기타 마을 주재 촌 간부들은 70여만원의 자금을 모금해 버려진 잔디밭을 요식업과 레저오락, 문화살롱을 일체화한 모란레저원으로 건설했다. 레저원은 6월21일에 정식 오픈됐다.     
지난 8년간 마흥문 서기는 왕평촌의 크고 작은 일들에  모든 정력을 몰부으며 자신의 집일은 오히려 제대로 돌보지 못해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조직에서 이곳에 나를 파견한 이상 반드시 최선을 다해야 하며 당과 촌민들에게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번역/편집:주정선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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