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력의 신년과 중국 음력설이 다가오면서 티베트 산난시(山南市)나이둥구(乃東區)의 창주진(昌珠鎭) 커숭(克松) 지역사회에는 분망한 정경이 나타났다.
커숭 지역사회는 산난시 시내에서 자동차로 십여분 거리인데 '티베트 민주개혁의 첫 마을'로 불린다. 60여년 전 이곳은 티베트에서 제일 먼저 민주개혁을 진행했으며 티베트 역사상 처음으로 해방된 농노가 참여한 민주 선거를 진행했다. 이로써 선후로 티베트 첫 농촌기층 당지부, 첫 농민협회, 첫 인민공사를 세웠다.
커숭 지역사회 위원회 관원의 소개에 따르면 현지의 연간 순소득은 1978년의 약 111배에 달하는 22,300위안이다. 지난 40년동안 소득이 백여배 성장한 것이다.
비약적인 제도와 지속적인 정책 지지는 커숭 지역이 천지개벽의 변화를 실현하게 된 원동력이다.
민주개혁 이전에 커숭 장원에는 농노가 302명 있었다. 올해 78세의 소랑둔주 노인은 그때 온 가족이 집짐승과 함께 한 헛간에서 살았다고 말한다. 그들은 날마다 동이 트기 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했고 늦으면 매를 맞아야 했다.
사진1, 집에서 꽃에 물을 주고 있는 소랑둔주 노인
1959년 3월, 정부는 티베트 각 민족 인민을 영도하여 민주개혁을 실시했다. 어제의 농노가 주인이 되었다. 1980년대, 개혁과 개방은 고원 농민들의 혁신력을 불러일으켰다. 농노의 후대인 투둬는 마을에서 처음으로 트럭을 구입하였으며 마을에서 첫 만위안대 소득을 올린 가구가 되었다. 또 다와츠런은 인근에 소문난 당근공장을 세워 마을사람들의 소득증대를 이끌었다.
사진2, 하우스에서 일하는 커숭 지역사회의 첫 채소하우스 경영인인 바아마양중
중국공산당 제18차 대표대회 이후 커숭은 큰 변화를 맞이했다. 나라에서 약 4천만 위안을 투자하여 '생태문명 중등수준생활 시범소'를 세웠다. 배수, 조명, 녹화 시스템을 보수했고 편이봉사 센터, 농가 책방, 공부실, 오락실을 세웠다. 거주 환경이 새로워졌다. 지역사회의 농업기계화 작업율이 90%에 이르렀으며 곡물의 단위당 소출이 민주개혁 이전보다 세배나 늘어났다. 2019년, 농촌경제 총 소득이 3800만위안을 넘었다. 이 가운데서 교통운수업과 상업, 서비스업, 가공업 등 비농산물 업종의 비중은 80%를 넘었다. 마을에는 운수와 관광 차량이 45대이며 445명 인력 중 70% 이상이 대외 노무에 종사한다. 20여 정보의 땅으로 회사와 사료 구매 합동서를 체결했다. 마을에는 12개의 합작사를 세웠다. 촌 집체경제의 연간 순이익은 36만위안에 달한다.
사진3, 드론이 촬영한 커숭 지역(이전의 커승촌)
오늘날 지역사회는 커숭 전시관을 세웠다. 당지부 옛 유적지와 커숭장원 유적지는 대외에 개방되고 있다. "물 마실 때 우물을 판 사람을 잊지 말고 새 생활은 공산당을 잊지 않는다"는 이 표어가 지역사회의 입구 양쪽에 새겨져 있다. 이는 역사이자 인민의 목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