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21-04-13 11:17:02 출처:cri
편집:李仙玉

<평어근인>(시즌2) 제3회 충성

고전 속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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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충성은 무엇인가

동한(東漢) 때 마융(馬融)이라는 당시 유명한 유학의 대가가 있었다. 그는 <시(詩)>와 <주역(周易)>, <효경(孝經)> 등 유가의 저서에 주석을 많이 달았다. 그는 유가의 경전 중에 효도를 논하는 <효경>은 있으나 충성을 논하는 <충경(忠經)>이 없는 것을 보고 자신이 직접 <충경>을 썼다. 마융의 <충경> 중에 “선막대어작충(善莫大於作忠)”이라는 구절이 있다. 바로 충성보다 더 큰 선행은 없다는 의미이다.

마용의 조상 중에는 동한 왕조의 건국을 위해 거대한 기여를 한 마원(馬援)이라는 사람이 있다. 마원은 동한 왕조가 세워진 후 국경지역의 전란을 평정해 복파(伏波)장군이라 불렸으며 뛰어난 공훈을 세운 것으로 세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서기 49년 62살의 마원은 또 다시 군대를 이끌고 반란을 평정하러 갔다가 군중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로부터 마혁과시(馬革裹尸), 말의 가죽으로 시체를 싼다는, 즉 죽을 각오로 전쟁에 임하겠다는 마원의 말이 사자성어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유가의 사상관념에서 충성과 효도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상부상조의 관계에 있다.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는 고대 중국인들이 지키는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시진핑(習近平)주석은 2019년 설 하례회에서 “집에서는 효도를 다 하고 나라를 위해서는 충성을 다하는 것이 중화민족의 훌륭한 전통입니다”라고 말했고 2015년 1월 12일 중앙 당교 현 당위원회 서기 연수반 간담회에서는 마융의 <충경>에 나오는 고전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현(縣) 당위원회는 우리 당이 집권하면서 나라를 흥하게 하는 ‘현장 지휘부’이고 현 당위원회 서기(書記)는 ‘현장 지휘관’입니다. 당에 충성(忠誠)하는 것은 현 당위원회 서기의 중요한 표준입니다.  현 당위원회 서기를 가늠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충성보다 더 큰 선행은 없다(善莫大於作忠)’는 이 한 가지를 주로 보아야 합니다.”

충성의 함의를 보면 첫째, 나라에 대한 충성이다. 나라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나라는 아름다운 강산과 유구한 역사, 그 나라 곳곳에 있는 도로, 그 나라의 제도, 그 나라의 이론, 그 나라의 문화를 망라한다. 둘째, 국민에 대한 충성이다. 한 나라는 국민들로 구성되어 있음으로 나라에 충성하려면 반드시 국민에 충성해야 하는 것이다.

2. 왜 충성해야 하는가

2014년 9월 3일, 시진핑 주석은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시즘전쟁 승리 69주년 좌담회에서       연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양징위(楊靖宇)와 자오상즈(趙尙志), 줘취안(左權), 펑쉐펑(彭雪楓), 퉁린거(佟麟閣), 자오덩위(趙登禹), 장쯔중(張自忠), 다이안란(戴安瀾)을 비롯한 항일장군들, 팔로군(八路軍)의 ‘랑야산(狼牙山) 다섯 용사’, 신사군(新四軍)의 ‘류라오좡(劉老庄) 중대’, 동북항일연군 여덟 명의 여전사, 국민당(國民黨)군의 ‘팔백 용사’등 많은 영웅들이 바로 강포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중국인들의 뛰어난 대표들입니다. 그야말로 ‘실로 용감하여 전투력이 강하고(誠旣勇兮又以武) 시종 굳세어 침범하는 자가 없으며(終剛强兮不可凌), 몸은 죽어도 정신은 영원히 살아 있는(身旣死兮神以靈) 그대의 의연한 영혼은 신령의 영웅이어라(魂魄毅兮爲鬼雄)’ 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인용한 이 시는 전국(戰國)시대 초(楚)나라의 애국시인이자 정치인인 굴원(屈原)의 작품이다. 초나라를 위해 평생을 바친 굴원은 초나라가 진나라에 의해 멸망되자 멱라강에 몸을 던진 나라 충성의 대표이다. 이 시는 초(楚)나라의 용사들을 묘사했다. 성기용혜우이무(誠旣勇兮又以武)와 종강강혜불가릉(終剛强兮不可凌)은 용사들이 생전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싸웠다는 것을 말하고 신기사혜신이령(身旣死兮神以靈)과 혼백의혜위귀웅(魂魄毅兮爲鬼雄)은 그들이 전사한 후에도 여전히 나라의 영웅이고 신령 속에서도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굴원이 멱라강에 몸은 던진 후 1500여 년이 지나 중국에는 또 위대한 민족영웅이 나타난다. 그가 바로 “인생에서 자고로 죽지 않는 이 누구던고(人生自古誰無死) 나라 위한 충심으로 역사를 길이 비추리(留取丹心照汗靑)”라는 명구를 남긴 문천상(文天祥)이다. 남송(南宋)의 장군인 문천상은 원(元)나라의 침략에 저항하다가 남송이 항복하자 원 나라에 체포되었으며 전향을 거절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원나라에 체포되어 있는 동안 문천상은 비가 내리면 방안에 오물이 들어오는 작은 방에 갇혀 있으면서도 굴복하지 않았고 나라에 대한 충심을 지켰기 때문에 역사에 길이 남았다.

3. 어떻게 충성할 것인가

한무제(漢武帝) 때의 일이다. 소무(蘇武)가 흉노(匈奴)에 한나라 조정의 사절로 파견되었다가 흉노 내부의 난으로 인해 한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흉노의 군주인 선우(鮮于)에게 억류되었다. 흉노는 높은 관리직과 많은 봉록으로 항복을 권했지만 소무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선우는 소무를 양치기로 오늘날의 바이칼호 지역으로 유배를 보내면서 “수컷 양이 새끼를 낳는 날이 오면 그 때 한 나라로 돌려보내겠다”고 했다. 선우는 살아 있는 한 한 나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메시지를 소무에게 전한 것이다. 그럼에도 소무는 굴복하지 않고 매일 한 나라 대신들이 들고 다니는 모절(旄節)을 들고 양치기를 했다. 소무에게 있어서 그 모절은 조국에 대한 신념이었다.

한소제(漢昭帝) 때가 되자 외교적 노력으로 소무는 끝내 한나라의 땅을 다시 밟게 된다. 그 때는 그가 흉노에 사절로 파견된 지 19년이 지난 때였다. 소무가 옥문관(玉門關)에 들어섰을 때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모절은 색이 바래고 찢어져 본래의 모습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라에 대한 소무의 충성은 추호의 변함이 없었다.

<여씨춘추·성렴(呂氏春秋·誠廉)>은 소무의 이야기로부터 “돌은 부서져도 단단한 성질이 변하지 않고(石可破也, 而不可奪堅)주사는 갈아져도 붉은 색이 변하지 않는다(丹多磨也, 而不可奪赤)”고 기록했다. 이 두 구절의 뒤에는 “호사자호자(豪士之自好者), 기불가만이오야(其可以漫以汚也), 역우차야(亦犹此也)”라는 구절이 따른다. 그 의미는 진정한 용사와 진정한 영웅은 돌처럼 단단하고 주사처럼 붉은 색이 변하지 않아 그 어떤 좌절을 겪고 그 어떤 상황에 부딪쳐도 단단하고 붉은 본색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2016년 10월 21일 홍군(紅軍) 장정(長征) 승리 80주년 기념대회에서 “‘돌은 부서져도 단단한 성질이 변하지 않고(石可破也, 而不可奪堅)주사는 갈아져도 붉은 색이 변하지 않는다(丹多磨也, 而不可奪赤)’는 말이 있습니다. 이상과 신념의 확고함은 이론의 확고함에서 옵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를 장악하고, 진리를 신앙하고, 진리를 수호하는 것은 이상과 신념을 확고히 하는 정신적인 전제입니다.”라고 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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