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21-05-12 17:26:54 출처:cri
편집:朱正善

시버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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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버족은 중국에서 역사가 오랜 소수민족이다. 시버족은 원래 중국의 동북지역에 살았으나 건륭제 재위기간 청정부가 일부 시버족을 신강에 징발하기도 했다. 하여 지금 70% 가까운 시버족은 요녕성과 신강 차부차얼시버자치현, 훠청현, 궁류현에 살고 있고 그외는 동북의 심양과 동항(東港), 개원(開原), 의현(義顯), 내몽골 동부, 흑룡강성의 눈강()유역에 산재해있다. 시버족의 인구는 19만명이다. 시버족의 인구수는 1980년대 이후 급증세를 보였는데 주요원인은 과거 만족과 한족으로 등록했던 시버족들이 잇달아 민족인 시버족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시버족은 민족의 언어와 문자가 있다. 시버족의 언어는 알타이어계 만주-통구스 어족의 만족어 갈래에 속하며 만족어를 토대로 발전, 형성된 관계로 만족어와 비슷하다. 시버 문자는 1947 만주 문자를 약간 변형시켜 창제되었다. 신강의 시버족은 지금도 민족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면서도 한어와 위구르어, 카자흐어를 겸용한다. 하지만 동북의 시버족은 언어와 의식주 면에서 거의 한족에 동화되었다.

시버족 명칭의 최초 출현은 명나라 만력21년인 15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있다. 시버족의 이름은 시버족들이 장기간 활동한 지역 명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위주이다. 한문 사서의 기재를 보면 시버족은 쉬부, 스비 수십가지 이름으로 불려오다 명나라 , 청나라 초기에 시버() 통일됐다.

시버족의 기원설을 본다면 선비(鮮卑) 여진() 후예라는 설이 주를 이룬다. 여진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시버족이 여진 과르쟈(瓜尔佳) 수완(蘇完)부의 후예라고 주장한다. 일부 학자들은 시버족이 고우처(高車) 써구얼(色古尔)씨에서 기원했으며 바이칼호수 남부의 홉스골호에서 발원해 기원 429년북위 태무제가 고우처에 원정한 눈강 유역에 이주해왔다고 주장한다.

사서의 기재에 따르면 고대 시버국은금나라의 책봉을 받아 도성을 일명 수완성(蘇完)성이라 불리는  시두(錫都) 두었다. 시두의 위치는 지금의 길림성 장춘시 쌍양구(雙陽區). 고대 시버국은 원나라 말기에 몰락하기 시작하다 명나라 때 재 흥기한 뒤 명나라 말 다시 쇠퇴의 길로 나아가는데 금나라 천보(天輔)6년인 1122년부터 명나라 만력(萬曆) 16년인 1588년까지 쌍양 시버국은 총 466년간 존속했다.

12세기 하반기 몽골인들이 동북을 통일하는 과정에 시버인들은 여진인들과 함께 몽골군에 저항했다. 당시 적지 않은 시버인들이 인적이 드문 산속으로 도망가 사서에 기재된 숲속의 백성의 일부가 됐다. 전쟁 과정에 타오얼강과 줘얼강 유역의 시버인 부족의 농업생산이 크게 파괴되어 많은 농경지가 초원 목지로 전락했다. 그러다 원나라 때 태주(泰州) 등지의 시버인들이 타오얼강과 줘얼강 유역에 돌아오면서 농업생산이 회복되고 요양(遼陽)성 관할에 들었다.

명나라 말기 몽골의 코르친부(科尔沁)가 두 강 유역을 통제하면서 시버인은 또다시 코르친 몽골인들의 통치를 받게 된다. 명나라 만력 21년인 1593, 몽골 코르친부는 시버 등 8개부와 손잡고 누르하치에 대항하지만 실패한다. 그 후 누르하치는 자발적으로 귀순한 자들에게 불만주’(佛滿洲)라는 호칭을 하사하고 만주인들과 동일시한다. 이 때 적지 않은 시버귀족들이 누르하치에게 귀순하는데 역사에서 이를 시버 만주라고 부른다. 이 중 일부 시버 귀족들이 청나라로부터 관직을 하사 받아 시버세관좌령’(錫伯世管佐領)이 되고 시버인들은 코르친 몽골 10()에 편입된다. 청나라 강희 31년에 코르친 몽골은 시버 , 다우르 등을 청 정부에 진상한다. 이때부터 시버인들은 이처만주’(滿洲)로 불리며65개 우록(牛彔)으로 편성되어 치치할, 우라길림 등 지에 파견된다. 이는 청나라 때 시버족의 첫 남쪽 이주다. 청나라 건률제 때 청정부는 신강 이리지역의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시버 장병 1020명을 징발해 이리에 보낸다. 이들은 이리에서 시버영(錫伯營)에 편입돼 145년간 변강을 건설하고 외래의 침략을 물리치는 데서 큰 기여를 한다.

1931‘9.18’ 사변 후 동북지역에 거주한 시버족은 한족, 만족과 함께 항일투쟁에 나선다. 이 때 많은 시버족 청년들이 중국공산당에 가입하며 1949년 신강의 시버족과 동북의 시버족이 함께 해방을 맞이한다.

1953년 훠청(霍城)현에 이처가산(伊車嘎善)시버족향, 1954년에는 차브차르(察布査爾)시버족자치현, 그 후에는 또 요녕성 심양시에 흥융대(興隆臺)시버족진과 황가(黃家)시버족진이 설립된다.

새 중국 창건 후 안락한 삶을 누리게 된 시버족은 인구도 점차 늘어 1949년부터 1978년까지 짧은 30년간 인구가 한 배 이상 증가했다. 또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시버족 농민들의 소득도 증대해 지금은 날로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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