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21-05-14 09:01:53 출처:cri
편집:李仙玉

<평어근인>(시즌2) 제10회 자신감

고전 속의 지혜

<평어근인>(시즌2) 제10회  자신감_fororder_0-典故里的新思想

1. 왜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가

마오쩌둥(毛澤東) 중화인민공화국 초대 주석은 스포츠를 좋아했고 특히 수영을 아주 좋아해 후난(湖南) 제1사범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학생회에 수영부를 설립하기도 했다. 1925년 마오쩌둥 전 주석은 시 <심원춘·장사(沁園春·長沙)>를 펴냈다. 그는 과거의 수영경력을 돌아보면서 “살같이 달려오는 배도 막을 정도로 큰 파도 속에서 수영하던 때를 기억하는가(曾記否, 到中流擊水, 浪遏飛舟)?”라고 썼다. 그의 큰 뜻과 호방한 기백이 보이는 대목이다.

1958년, <마오쩌둥시사19수(毛澤東詩詞十九首)>가 출판되었다. 마오쩌둥 전 주석은 시를 읽은 후 감회가 깊어 그 중 <심원춘·장사(沁園春·長沙)>에 나오는 어휘 ‘(격수)擊水’에 이런 주해를 달았다. “그 때 시 한 수가 있었는데 다 잊고 기억에 남는 구절은 ‘자신인생이백년(自信人生二百年), 회당수격삼천리(會當擊水三千里)’라는 두 구절뿐이었다.”

이 시구를 풀이하면 “스스로의 삶이 이백 년 이어질 것을 자신하면 맨손으로 물을 가르며 삼천 리를 갈 수 있다”는 의미이고 여기서 맨 손으로 물을 가른다는 의미의 ‘격수’는 수영을 말한다. 이 시는 마오쩌둥 전 주석의 넘치는 자신감, 그리고 생명과 생활, 열띤 투쟁의 미래에 대한  갈망을 잘 보여준다. 중화민족의 역사에서 이런 자신감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많으며 그 중 한 명이 바로 북송(北宋)의 정치인 왕안석(王安石)이다.

왕안석은 젊었을 때 항주(杭州)의 비래봉(飛來峯)에 올라 “불외부운차망안(不畏浮雲遮望眼), 자연신재최고층(自緣身在最高層)”이라는 시를 지었다. “뜬구름이 눈을 가려도 두렵지 않은 것은 내가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이다.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읽은 왕안석은 세상을 다스릴 뜻을 세웠다. 과거시험에 급제한 후 그는 오랫동안 말단 벼슬을 하면서 민생의 어려움을 깊이 느꼈다. 그 뒤에 고위관리인 재상이 된 후에 왕안석은 체계적인 변법을 주장하면서 당시 조정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개변하려고 했다.

왕안석은 개혁과 변법의 길에 어려움과 장애물이 가득하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이런 어려움과 장애물을 잠깐 머물고 궁극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며 태양이 나오기만 하면 금방 사라지는 뜬구름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왕안석은 자연 풍경의 변화를 빌어 자신의 흉금과 포부를 교묘하게 묘사했다. “불외부운차망안 (不畏浮雲遮望眼), 자연신재최고층 (自緣身在最高層)”, 이 시는 흉금이 넓고,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용감하게 개혁하고, 어려움을 마주하는 젊은 왕안석의 굳센 의지를 잘 반영한다.

시진핑 주석은 2016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95주년 경축대회에서 마오쩌둥 전 주석의 시를 인용하여 “우리 당은 방향의 자신감과 이론적 자신감, 제도적 자신감, 문화적 자신감을 확고하게 지켜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정당과 국가, 민족 중 중국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족이 가장 자신감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삶이 이백 년 이어질 것을 자신하면(自信人生二百年) 맨손으로 물을 가르며 삼천 리를 갈 수 있다(會當擊水三千里)’는 용기를 가지면 우리는 모든 어려움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기적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평어근인>(시즌2) 제10회  자신감_fororder_10-不畏浮云遮望眼

(사진설명: 고전 "뜬구름이 눈을 가려도 두렵지 않다")

2. 어떻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가

1130년, 금(金)나라의 남침으로 남송(南宋) 조정은 꽁무니를 빼기에 바빴다. 당시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 이청조(李淸照)는 반백의 나이에 홀로 사별한 남편이 남긴 금석(金石)문화재와 도서, 서예 등을 가지고 고종(高宗)제의 행렬과 함께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온갖 고생 끝에 끝내 온주(溫州)에 도착했다.

그 때 이청조는 사(詞) <어가오(漁家傲)>를 지었다. 그는 사의 전반부분에서 하늘과 바다가 하나가 된 경치를 묘사했고 후반부분은 저자와 천제(天帝)의 대화로 썼다. 그 중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아보로장차일모 (我報路長嗟日暮), 학시만유경인구 (學詩謾有惊人句). 구만리풍붕정거 (九萬里風鵬正擧). 풍휴주 (風休住), 봉주취취삼산거 (蓬舟吹取三山去)”. “천제가 나에게  어디 가느냐고 물어서 내 갈 길은 아직도 멀고 벌써 황혼이 깃들었는데 나는 아직 목적지에 이르지 못했노라고 대답했다. 내가 아무리 놀라운 시를 쓴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구 만리 넓은 하늘에 붕새가 높이 날고 있구나. 세찬 바람아 절대 멈추지 말고 이 일엽편주를 봉래섬까지 데려다 주렴”하는 의미이다.

전란 속에서 먼 길을 가면서 반백의 이청조가 홀몸으로 얼마나 많고 상상하기 어려운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청조는 여전히 그와 그의 작고한 남편이 함께 소장한 귀중한 금석문화재를 버리지 않고 시종 가까이에 고이 간직했다. 그들이 함께 아껴온 금석문화재와 그들이 함께 지켜온 사업, 그들이 함께 이어온 문화가 이청조에게 이런 자신감과 이런 자발적인 끈질김을 준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12월 18일 개혁개방 40주년 경축대회에서 이청조의 이 사를 인용해 “‘사십 년 동안 성난 파도 언덕을 때리고(四十載惊濤拍岸), 구만 리 넓은 하늘에 붕새가 높이 나네(九萬里風鵬正擧)’. 강물이 절벽을 무너뜨리고 흘러가는 것은 천 리를 달리고 모든 물줄기를 모으는 태고의 위력을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근대 이후 기나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중국인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많은 대가를 치렀으며 필사적으로 싸워왔습니다. 오늘날 중국인과 중화민족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축적한 강력한 에너지가 충분하게 폭발되어 중화민족이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데 막을 수 없는 엄청난 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3. 어떻게 문화적 자신감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

남북조(南北朝)시기에 유신(庾信)이라는 유명한 시인이 있었다. 유신은 원래 남조(南朝) 사람이었다. 그가 어명으로 서위(西魏)에 사절로 파견되어 서위의 도읍인 장안(長安)에 이른 후 서위가 강릉(江陵)을 공격해 그의 나라는 멸망하게 되었다. 당시 서위의 지배자는 유신의 재능을 높이 사서 그를 장안에 남겨두고 그에게 벼슬을 내렸다.

서위의 도읍에서 벼슬을 하면서도 유신은 여전히 늘  고향을 그리는 시를 지었다. 그 중 <징조곡(徵調曲)>에 나오는 “낙기실자사기수 (落其實者思其樹), 음기류자회기원 (飮其流者懷其源)”이 떠나 온 고향에 대한 유신의 절절한 그리움을 가장 잘 보여준다. 나무에 달린 열매를 맛볼 때 나무를 생각하고, 강물의 물을 마실 때 수원지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고대의 중국에서 이런 문화는 끊임 없이 사람들에게 저력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 당(唐)나라 전성기에 국력이 강성하고 많은 나라들이 당나라와 교류했다. 그 때의 당나라 도읍 장안은 관용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고 문화는 강한 자신감으로 넘쳤다. 이 것이 바로 후세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성당(盛唐)의 모습이며 바로 이렇게 때문에 시선(詩仙) 이백이 이 때 성장한 것이 당연지사라 할 수 있다.

유명한 시인이자 문학가인 이백의 시 창작 수준은 당시 으뜸이었다. 이는 그의 근본이자 그의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백의 발견자로 알려진 동시기의 시인 하지장(賀知章)은 이백을 하늘이 내린 신선 “적선인(謫仙人)”이라 불렀고, 역시 동시기 시인인 두보(杜甫)는 “붓 한 번 움직이면 비바람도 놀라고(筆落惊風雨), 시를 보면 귀신도 눈물을 흘린다(詩成泣鬼神)”고 이백을 높이 평가했다. 이백도 “주흥을 빌어 붓을 날릴제 높이 솟은 오악도 흔들리고(興酣落筆搖五嶽), 높은 목소리로 시를 읊으니 선경도 발 아래 머리 숙인다(詩成笑凌滄洲)”고 자신을 말했다. 당 현종(玄宗)제가 부르자 이백은 흥분에 넘쳐 “머리 들어 하늘 향해 크게 웃으며 나아가니(仰天大笑出門去), 이 몸 어이 초야에 묻힐 사람인가 (我輩岂是蓬蒿人)”라는 시를 지었고, 장안을 떠날 때는 “하늘이 내린 나의 재주 반드시 쓰일 날이 있고(天生我材必有用), 천금을 다 써버려도 다시 채워지는 법이라(千金散盡還復來)”라는 시를 남겼다. 따라서 고금의 역사를 돌아보면 높은 문화적 자신감이 없으면 문화의 번창이 없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16년 11월 30일, 중국문학예술계연합회 제10차 대회, 중국작가협회 제9차 대회 개막식에서 유신의 시구를 인용하여 “중국의 문화는 역사의 것이자 오늘의 것이며, 민족의 것이자 세계의 것입니다. 우리가 나서 자란 이 땅에 뿌리를 내려야 문학과 예술은 땅의 기운을 받아 들여 저력을 증대하고 생기를 늘려 세계문화의 흐름 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열매를 맛볼 때 그 나무를 생각하고(落其實者思其樹), 물을 마실 때 그 수원을 그리는 것(飮其流者懷其源)’입니다. 우리는 근본을 잊지 말고, 외적인 것을 흡수하며 미래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전승 속에서 전환하고 배움 속에서 뛰어넘으며, 중국문화의 정수를 구현하고 중국인들의 심미안을 반영하며 당대 중국의 가치관을 전파하는 동시에 세계의 진보적인 흐름에 맞는 우수한 작품을 많이 창작함으로써 중국의 문학과 예술이 뚜렷한 중국의 특색과 중국의 풍격, 중국의 기백으로 세계의 문화 속에 우뚝 서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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