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21-05-18 16:38:15 출처:cri
편집:李仙玉

<평어근인>(시즌2) 제11회 분투

고전 속의 지혜

<평어근인>(시즌2)  제11회  분투_fororder_0-典故里的新思想

1. 왜 분투해야 하는가

중국 역사적으로 최장의 서정적 장편 서사시이자 불후의 명작인 <이소(離騷)>는 위대한 애국주의 시인 굴원(屈原)의 정치사상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굴원은 법치를 중시해서 “법도를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循繩墨而不頗)”고 주장하고, 인재를 중시해 “현명한 인재를 선택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擧賢而授能)”고 주장했다. 국민의 이익과 국민의 역할을 중시했기에 그는 “하늘은 공정하고 사심이 없어서(皇天無私阿兮) 덕목이 있는 사람을 알아본다(覽民德焉錯輔)”고 말했고, 진리에 대한 추구와 삶의 끊임없는 분투를 중요시하고 강조했기에 그는 “길은 멀고도 멀기에(路漫漫其修遠兮) 다방면으로 탐구해야 한다(吾將上下而求索)”고 말했다.

굴원의 많은 명언 중 특히 다방면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의미의 ‘상하구색(上下求索)’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뜻 있는 사람들을 격려했다. 사자성어 문계기무(聞鷄起舞)의 스토리가 바로 그 사례이다. 한 밤중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무예를 연마한다는 이 사자성어는 큰 뜻을 품은 사람은 쉽지 않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서(晉書)>에서 기록된 ‘문계기무’는 조적(祖逖)의 이야기에서 기원한다. 흉금이 넓고 큰 뜻을 품은 조적이 24살 나던 해 절친인 유곤(劉琨)과 함께 사주주부(司州主簿)를 맡게 되었다. 늘 한 이불을 덮고 잘 정도로 사적인 연분이 아주 두터운 조적과 유곤은 공을 세워 나라의 기둥이 되려는 이상과 꿈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한밤중에 잠을 자던 조적은 갑자기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유곤을 깨웠다. “너 닭 우는 소리 들었어?” 잠이 덜 깬 유곤이 멍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한밤중에 닭 우는 소리라니 불길하지 않아?” 그러자 조적은 이는 불길한 소리가 아니라 하늘이 뜻을 세우고 분발하라고 우리를 일깨워주는 소리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조적과 유곤은 그날부터 매일 한밤중에 닭 우는 소리가 들리면 일어나서 무예를 연마하기로 약속했다.

조적과 유곤은 매일 밤 무예를 연마했고 겨울이 가고 봄이 와도, 추위가 물러가고 더위가 찾아와도 종래로 중단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이렇게 끊임없이 분발했기에 후에 그들은 붓을 들면 천하를 다스리고 말에 오르면 천하를 평정하는, 문무를 겸비한 인재가 되었다. 조적은 후에 북벌의 뜻을 세워 조정으로부터 “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봉해졌다. 유곤도 대장군(大將軍)이 되고 병주(幷州)와 익주(翼州), 유주(幽州)의 군사를 감독하며 난세에서 나라를 위한 큰 뜻을 펼쳤다.

중국 역사에는 반딧불이와 눈에서 반사된 빛으로 분발하여 학문을 닦는 지식인들로부터 한밤중 닭 우는 소리에 일어나 무예를 연마하는 큰 뜻의 영웅들에 이르기까지, 들보에 상투를 매달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각고의 노력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데로부터 장작더미에 누워 쓸개를 맛 보며 때를 기다리기에 이르기까지, 중도에 그만 두지 않는 인내심으로부터 물방울이 돌을 뚫는 꾸준한 노력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분투의 정신은 중화민족의 천성이 되었다. 바로 이런 정신이 있기에 탐구는 영원한 매력을 가지고 분투는 영원한 원동력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2016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95주년 대회에서 중국인들의 분투정신과 강인한 품성을 가장 잘 해석하는 이 고전을 인용해 “‘길은 멀고도 멀기에(路漫漫其修遠兮) 다방면으로 탐구해야 합니다(吾將上下而求索)’. 모든 당원들은 초심을 잃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겸허하고 신중하며 교만하거나 조급하지 않는 기풍, 간고분투의 기풍을 영원히 유지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평어근인>(시즌2)  제11회  분투_fororder_11-敢叫日月换新天

사진설명: 시 "선열의 장렬한 희생이 있었으니 감히 구시대를 새 세상으로 바꾸리"

2. 분투정신은 어디서 오는가

마오쩌둥(毛澤東) 중화인민공화국 초대 주석은 1959년 6월 명시 <칠률·사오산에 이르다(七律·到韶山)>를 지었다. 후난(湖南)성 상탄(湘潭)에서 북서쪽으로 45km 거리에 위치한 사오산은 마오쩌둥 전 주석의 고향이다. <마오쩌둥연보(毛澤東年譜)>에 따르면 마오쩌둥 전 주석은 1911년에 사오산을 떠나 1976년에 서거하기까지 도합 8번 사오산을 다시 찾았다. 마오 전 주석이 1959년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사이에 사오산을 방문한 것은 일곱 번째 귀향이었고 1927년의 여섯 번째의 귀향에 이어 32년 만에 다시 고향을 찾은 것이었다. 1925년 마오쩌둥 전 주석은 상하이(上海)로부터 고향에 돌아가 중국공산당 사오산 지부를 세우고 농민학회(農民學會)를 설립했으며 1927년 후난 농민운동을 고찰하던 시기에 다시 또 고향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 때 마오쩌둥 전 주석이 고향을 떠나서 곧 ‘4.12반혁명 정변’이 일어났다.

1964년 <마오주석시사(毛主席詩詞)> 영어 번역자의 요구에 의해 마오 전 주석은 <칠률·사오산에 이르다(七律·到韶山)>의 수련(首聯)과 함련(頷聯)의 뜻을 해석했다. 그는 수련의 ‘주서천(呪逝川)’과 “삼삽이년전(三十二年前)”은 반동파에 의한 혁명의 실패를 말한다며 그러기에 “위유희생다장지(爲有犧牲多壯志). 감교일월환신천(敢敎日月換新天)”이라는 함련이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시의 중심인 이 구절은 용감하게 분투한 사오산과 후난, 나아가서 중국의 여러 민족 인민들을 노래하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모든 열사들을 노래한다. 잔혹한 진압으로 많은 혁명지사가 희생되었지만 그로 인해 혁명의 발걸음을 멈춘 것이 아니라 압박이 심할수록 반항이 심한 법칙에 의해 더 큰 발전을 이루었으며 궁극적으로 끊임없는 분투와 희생을 통해 중국혁명의 전반적인 승리를 거두었음을 보여준다.

이 구절에서 감히 ‘감(敢)’은 두려움을 모르는 정신과 사심 없이 헌신하는 정신을 구현하고, 바꿀 ‘환(換)’은 세상을 바꾸고 역사의 발전을 추진하는 인민들의 위대한 쾌거를 구현한다. 그리고 ‘감(敢)’과 ‘환(換)’의 주체도 바로 사심이 없고 두려움을 모르는, 끊임없이 분투하는 인민과 영웅들이며 그들이야말로 정신세계가 가장 풍부하고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설 하례회에서 마오쩌둥 전 주석의 이 시구를 인용해 “분투의 길에는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입니다. ‘선열의 장렬한 희생이 있었으니(爲有犧牲多壯志) 감히 구시대를 새 세상으로 바꾸리(敢敎日月換新天)’라는 시가 있습니다. 분투에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시종 두려움을 모르는 정신과 사심이 없이 헌신하는 정신을 선양해야 합니다. 분투하는 사람은 정신세계가 가장 풍부한 사람이자 가장 행복한 사람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3. 어떻게 분투할 것인가

남북조(南北朝) 시기 북제(北齊) 유주(劉晝)의 <유자·숭학(劉子·崇學)>에는 “착정자 (凿井者), 기어삼촌지감 (起於三寸之坎), 이취만인지심 (以就萬仞之深)”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이 구절 앞에는 이와 완벽하게 대응되는 다른 구절이 있다. “위산자 (爲山者), 기어일궤지토 (基於一簣之土), 이성천장지조(以成千丈之峭); 착정자 (凿井者), 기어삼촌지감 (起於三寸之坎), 이취만인지심 (以就萬仞之深)”. 이 두 구절의 의미는 산을 쌓는 사람은 한 삼태기의 흙을 파는데 기반하여 천 길 높이의 산을 만들며; 우물을 파는 사람은 석 자의 흙을 파는 데서 시작하여 만 길의 깊이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 고전은 가치 있는 삶은 끊임없는 작은 축적을 통해야 하며 꾸준하게 끝까지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음을 비유한다.

중국의 역사에는 이 고전에 어울리는 뜻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고 그들은 젊을 때부터 밑바닥에서 분투의 삶을 시작했다. 동한(東漢) 때의 반초(班超)가 바로 그런 사례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반초는 어렸을 때 관공서의 서류를 필사하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다. 하지만 반초는 그 때 벌써 큰 뜻을 품고 “대장부 다른 뜻과 모략은 없다 해도 (大丈夫無他志略) 부개자와 장건을 본받아 이역에서 공을 세우고 제후는 되어야지 어이 계속 필묵만 다루겠는가?”라고 한탄했다. 반초가 말하는 부개자는 서한(西漢)의 유명한 외교가로 패악의 누란왕의 목을 베었고 장건은 서역에 사절로 나가서 실크로드의 역사를 열었다. 이런 두 사람을 롤모델로 삼은 반초는 단연히 붓을 던지고 서역정복의 길에 올랐다.

대장군 두고(竇固)를 따라 흉노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인 반초는 곧바로 서역에 사절로 나가라는 명을 받는다. 36명을 거느리고 서역을 종횡무진한 반초는 아주 어려운 환경에서 과단성 있게 결단을 내려 흉노족을 견제하고 서역의 안정을 유지했으며 실크로드의 원활한 소통을 담보해 동서양 문화의 교류와 상업교류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중국 여러 민족 간의 단합과 융합이 사상 최고로 번창하게 했다. 반초는 한 사람의 지혜와 한 사람의 땀, 한 사람의 분투로 실크로드의 기적을 창조하여 “착정자 (凿井者), 기어삼촌지감 (起於三寸之坎), 이취만인지심 (以就萬仞之深)”의 이치를 증명했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5월 2일, 베이징 대학교 사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고전을 인용해 “‘우물을 파는 사람은(凿井者) 석 자의 흙을 파는 데서 시작하여(起於三寸之坎) 만 길의 깊이에 도달한다(以就萬仞之深)’고 합니다. 사회주의 건설자와 후계자들은 고상한 품성도 가지고 진정한 재능도 가져야 합니다. 광범위한 청년들은 분투의 정신으로 확고한 이상과 신념을 가지고 어려움에 맞서 용감하게 개척하며 완강하게 분투해야 합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중국몽을 위해 분투하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얻기 힘든 기회입니다. 청년들은 모두 이 위대한 시대를 소중하게 여겨 새 시대의 분투자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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