权香花
2021-07-23 16:27:19 출처:cri
편집:权香花

[청취자 내신] 고향에 돌아온 리명호의 감동스토리

고향에 돌아온 리명호의 감동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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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구상을 연구하고 있는 리명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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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만든 화장실.  

 

 과감히 운명과 도전

      길림성 왕청현 대흥구진 쌍하촌의 한 빈곤한 농민 가정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리명호씨는 1969년에 대흥구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에 종사하다가 스물아홉살에 아르헨티나로 로무송출을 떠났다.그의 끈질긴 노력과 신용으로 4년만에 그는 남들은 엄두도 못내는 옷가공공장을 세웠다.그의 친절한 서비스와 신용으로 하여 공장은 인차 호황을 맞이했다. 공장을 경영하는 25년 동안에 그는 목돈을 벌게 되였다.  

       개혁개방의 물결속에 뛰어들어 남먼저 부유해진 리명호씨의 창업정신은 수많은 중국 동포들에게 무궁무진한 용기와 힘을 부여했다. 

 

 그녀에게는 아름다운 꿈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천성적으로 부지런하고 남을 잘 도와주어 동네방네에 소문이 났던 리명호에게는 고향건설을 위해 무엇이든지 해보려는 그로서의 꿈이 있었다. 자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스물아홉살에 아르헨티나로 가 함바식당, 개인식당을 가리지 않고 옹근 25년 동안 열심히 일해 돈을 벌었다. 2018년에 귀국한 후 그는 3년동안 마을의 로인협회,빈곤호가정을 방문하면서 자문을 받고 사회조사를 진행하였다.   부모님께 못다한 효도를 하고 싶었기에,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추억이 몹시 그리웠기에 그는 해마다 고향인 쌍하촌의  크고 작은 행사를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이런 생활을 늘 동경해왔어요. 사업이 잘 될수록 주위에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 삶이요." 리명호가 전한 소박한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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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동이 불편한 촌민에게 채소를 나눠주고 있는 리명호씨 .  

하면 된다 

      대흥구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에 종사한 그는 농촌에서 늘 성실하고 근면한 자세로 일을 처리해 촌민들의 한결같은 호평을 받았다.  집안의 7남매중 막내로 태여난 그는  하루빨리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29세에 아르헨티나 로무길에 올랐다. 집안에 힘을 보태고 싶었던 '야무진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몫의 일을 해가면서 일과 일 밖에 모르던 2~30대를 보냈다. 낮에는 회사에서 , 저녁에는 매장에서 근무하며 꿈을 위해 필사적으로 경주해 4년만에 회사의 회원으로부터 사장으로 발탁해  25년간 회사를 경영하면서 목돈을 벌었다.

    그는 해마다 고향인 쌍하촌의  크고 작은 행사를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이런 생활을 늘 동경해왔어요. 사업이 잘 될수록 주위에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 삶이요." 리명호가 전한 소박한 진심이다.

 

힘이 자랄 때까지        

       리명호씨는 고향에 돌아온 첫날부터 촌민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였다. 해마다 8.15로인절, 설명절이면 사탕, 과자, 사과, 귤 등을 사가지고 로인들을 위문하는 한편 돼지고기, 밀가루 등 물만두를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재료를 갖고가 촌민들을 조직하여 운신이 어려운 로인들에게 물만두를 비롯한 명절의 음식을 푸짐히 마련해 드리군 하는 리명호씨는 고향마을의 로인들에게 활동실을 마련해주고저 6000여원을 투자하여 낡고 헐망한 집안팎을 산뜻하게 장식해주었다. 조선족중로년들의 소망에 의해 엄마전에  만여원을 투자해 연길에서 축구경기를 조직하고 선수들에게 운동복을 사주고 점심까지 대접시켜 중로년들의 운동적극성을 불러 일으켰다. 
  
        이외에도 7800원을 투자해 로인협회 문구장을 수건한 일 ,큰눈이 내린 뒤에는 자기의 뜨락또르로 눈을 쳐낸 일,겨울에 수도물이 중단되면 자기집차로 촌민들에게 물을 공급해준 일, 촌민 김창권이 골격수술을 할 때에도 앞장서 의연한 일, 고향에 돌아온 후 150평방메터의 벽돌기와집을 짓고 0.3헥타르되는 텃밭에 각종 남새,과일나무를 심어 전부 마을의 오보호에 나눠준 일 ,마을의 화장실을 다시 지을 때에도 선뜻히 자기돈을 내놓은 일,이밖에도 좋은일을 얼마나 했는지?  그 자신도 잘 모르고 있다.     

  왕청 이강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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