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싸이한바는 황막한 모래땅이었다.
반세기이래 3세대 임업인들의 꾸준한 분투로 지금 이 곳에는 세계 최대의 인공임장이 일떠섰다.
2017년 습근평 주석은 녹색발전의 이념을 견지해 싸이한바 정신을 고양할 것을 전 당과 전 사회에 호소하는 중요한 지시를 내렸다.
올해 8월23일, 습근평 주석은 싸이한바 기계임장을 방문해 임장의 대표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싸이한바 정신을 고양해 새로운 여정에서 공훈을 세울 것을 강조했다.
1962년 싸이한바 기계임장이 정식으로 세워졌다.
당시 승덕농업 전문학교를 갓 졸업한 조진우를 포함해 평균 연령이 24세도 안되는 369명의 젊은이들이 국가의 호소에 호응해 황막한 싸이한바에 가 이 곳의 첫 임업인이 됐다.
당시 싸이한바의 기후조건이 열악해 가장 추울때면 섭씨 영하 43.5도까지 기온이 떨어지기도 했다.
조진우는 싸이한바에서 인생의 가장 좋은 시기를 보냈다. 지나 수십년간의 세월을 돌이키며 후회없다고 얘기하는 그는 한편으로는 딸에 대한 미안함을 금치 못한다.
"우리 부부 모두 임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때는 유치원도 없어 마을 사람들이 애를 돌봐주었죠.둘째 딸이 화로에 엎어져 팔이며 가슴이며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 상처가 지금도 가셔지지 않았죠.정말 딸애에게 미안한 마음이지만 여기서 한평생을 보낸걸 결코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과정이 없다면 이 임장도 일떠서지 못했겠죠."
임장에서 방화가 더없이 중요하다. 싸이한바 사람들은 '망해루'가 임장의 눈이라고 얘기한다. 올해 57세 난 우성주는 20년간 망해루 감시원으로 근무해왔다. 그의 부친은 싸이한바의 1세대 임업인이다. 당시 부친이 일군 임해를 자신이 보호하고 있어 더욱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우성주다. 그의 아내 왕소현도 그와 함께 이 임해를 지키고 있다.
1989년 생인 추건명은 명실상부한 임장 3세대이다. 그는 소시적부터 식수조림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다. 유년시절에는 부친이 일만 일이라며 늦게 귀가한다고 탓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부친을 점점 이해하게 됐고 임업보호의 막대한 책임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북농업대학을 졸업한후 추건명은 부친으로부터 임업보호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저는 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이 곳의 나무하나 풀 한포기 모두 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수많은 1세대, 2세대 임업인들이 일궈낸 것입니다. 이 임해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세세대대로 이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 3세대 임업인들의 책임과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