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21-11-10 08:53:49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전] 우리의 삶은 끝이 있지만 앎에는 끝이 없다

[고전] 우리의 삶은 끝이 있지만 앎에는 끝이 없다_fororder_124-吾生也有涯

오생야유애, 이지야무애

吾生也有涯, 而知也無涯

인용:

우리의 삶은 끝이 있지만(吾生也有涯,) 앎에는 끝이 없다(而知也無涯)”는 말처럼 배움의 길에는 끝이 없다. 그러므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배우고, 또 끊임없이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먼저 책을 읽을 때에는 꼼꼼하게 본질을 파악하고, 깊이 있게 내용을 파고들어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기계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는 책벌레가 될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더해 유해한 정보가 머리 속을 채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편 배움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본질과 정수를 파악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는 수박 겉핥기식의 공부 법은 지양해야 한다.

 -2006년 3월 1일 시진핑 주석의 <지강신어(之江新語)>에서

출처:

우리의 삶은 끝이 있지만(吾生也有涯,) 앎에는 끝이 없다(而知也無涯). 끝이 있는 것을 가지고 끝이 없는 것을 쫓으려 하니(以有涯隨無涯) 이는 위태롭다(殆已)! 그럼에도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已而爲知者) 위태로울 뿐이다(殆而已矣)! 선한 일을 하더라고 명성에 매달리지 말고(爲善無近名) 악한 일을 하더라도 벌을 받을 정도로는 하지 말라(爲惡無近刑). 중용의 도를 따르는 것을 법도로 하면(緣督以爲經) 몸을 지키고(可以保身) 천성을 지키며(可以全生) 어버이를 봉양하고(可以養親) 천수를 누릴 수 있다(可以盡年).

-장자(莊子)<장자ㆍ양생주(莊子ㆍ養生主)>편

해석:

오생야유애(吾生也有涯), 이지야무애(而知也無涯). 이유애수무애(以有涯隨無涯), 태이(殆已)”는 <장자ㆍ양생주(莊子ㆍ養生主)>편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이 구절의 의미는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지만 앎에는 끝이 없기 때문에 끝이 있는 삶으로 끝이 없는 앎을 추구하면 지치게 된다는 것이다. 유가학파의 창시자인 공자(孔子, 약 기원전 551년~기원전 479년)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朝聞道) 저녁에 죽어도 좋다(夕死可矣)”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정신에 비하면 장자(莊子, 약 기원전 369년~약 기원전 286년)의 사상에는 확실히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 그러므로 장자의 사상은 변증법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장자ㆍ양생주(莊子ㆍ養生主)>는 웰빙을 말하기도 하는 양생의 도를 논한 글이다. ‘양생주(養生主)’라는 말은 바로 양생의 요령을 말한다. 양생적 차원을 벗어나 “오생야유애(吾生也有涯), 이지야무애(而知也無涯)”라는 구절만 보면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사람의 생명은 제한적이지만 지식을 배우는 데는 무한하기 때문에 넓은 지식의 바다에서 시간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긴박감을 가지고 시간을 다투며 열심히 배워야 최대한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고 완벽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미래의 문맹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한 에드가 포르(Edgar Faure, 1908년~1988년)의 예언을 인용해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한바 있다. 넓은 배움의 바다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지속적으로 충전해야만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책을 읽는 것은 지도업무의 요구이자 배우는 당과 배우는 사회의 건설을 추진하는 절박한 수요이기도 하다고 인정했다.

이와 동시에 시진핑 주석도 사람의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세 가지 분야의 책을 읽을 것을 지도간부들에게 제언했다. 그것은 첫째, 오늘날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이론저서들이고, 둘째, 지도업무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저서들이며, 셋째, 고금중외의 우수한 전통문화 저서들이다. 이런 책을 읽어야 풍부한 이론을 쌓고 여러 가지 지식의 정수를 받아들여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고 고상한 인격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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