权香花
2021-11-12 18:54:13 출처:cri
편집:权香花

[청취자의 벗] 2021년 11월 11일 방송듣기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11월의 두번째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박은옥(MC)입니다.

금주 목요일인 11일은 양력 한해 가운데서 315일째 되는 날입니다. 올 한해가 마감할 때까지 두 달에 미치지 못한 50일이 남았습니다.

역사상의 이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은 공화국 창건 후 설립한 새로운 군종입니다.

1949년 11월 11일은 중국인민해방군 공군 건군절입니다.

1949년 11월 11일, 중앙군사위원회는 각 군구와 각 야전군에 전문을 보내고 제4야전군의 기초에서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사령부의 창설을 선포했으며 이전 군사위원회 항공국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전 군사위원회 항공국 인원과 업무는 공군사령부에 이전되었다.

이때로부터 11월 11일은 인민공군 창설 기념일로 되었다.

11월 11일은 솔로의 날, 독신자의 날이다. 이 명절은 11월 11일 이 날짜에 아라비아 수자 䃱’이 네 개 있으며 䃱’의 모양이 다 빈 막대기를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빈 막대기는 중국 글에서 독신자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하여 11월 11일은 독신자들에게 별종의 명절로 되었다.

독신자의 날은 캠퍼스에서 비롯되었으며 온라인 등을 통해 전파되어 점차 독신자의 날 문화를 이뤘다. 오늘날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이날을 선택하여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이와 함께 11월 11일은 여러 상가에서  독신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이유로 할인 판촉을 하는 시기이기도 한다.

[간주]

코로나 사태 기간 단계적 일상회복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손편지로 인사드릴 날을 기대한다면서 한국의 청취자가 11월 7일 일요일 베이징시간 05시, 한국시간 06시 수신보고서를 보내왔습니다.

  [청취자 내신]

“중국국제방송 조선어부 제작진 여러분 안녕하세요.

예전에 수신보고서 보내드리면서 동동타령이라는 연변가요를 듣고 싶다고 했던 황명채입니다.

그 보고서는 웹사이트에 주소까지 그대로 올라가고 결국 쓰이지 못했는데, 참으로 오랫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11월 7일 일요일 베이징시간 05시, 한국시간 06시 수신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수신시간은 베이징 시간으로 05:00 ~ 05:58이고

주파수는 7290kHz SINPO 53434 ~ 54445이며

상태는 중국어 혼신이 약간 있습니다.

저는 「함께 듣는 멜로디」 선곡에 관심이 있습니다.

라다오 특성상 잡음으로 가수와 노래 제목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 당일 선곡 내용을 소개주시는 페이지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또, 방송을 마치고 남는 시간동안 나오는 전통음악풍 연주곡이 재미있는데요.

이건 중국국제방송국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음악인지 궁금해요.

또, 수신확인증이나 방송 청취에 도움이 되는 우편물 수신을 희망합니다.

단계적 일상회복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손편지로 인사드릴 날을 기대합니다.”

네, 황명채 청취자님이 보낸 수신보고서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방송을 관심하고 청취한 황명채 청취자님 고맙구요.

보고서에서 말씀한 수신 확인증은 중국국제방송국, 중앙인민방송국, 중국텔레비젼방송국 3사가 합병하면서 새롭게 제작, 인쇄하는 중이오니 양지 바랍니다.

그리고 방송을 마치고 남는 시간 동안 보내는 연주곡은 우리 중국국제방송국 자체적으로 만든 음악이 아닙니다.

우리 방송을 열심히 청취하고 의견을 말씀해준 황명채 청취자님 감사합니다.

네, 주말 단풍 명소를 찾는 관광객이 들고 있다고 한국 김연준 청취자님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편지 내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추수가 끝나고 단풍정취가 절정에 달하면서 주말 단풍명소를 찾는 관광객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코로나 감염자는 일일 천명대가 발생하고 있지만 백신 2차 접종률이 80%에 육박하면서 정부는 단계적 일상회복을 추진하고 있으며 식당, 카폐의 영업시간을 연장하고 모임 인원 제한 완화와 스포츠와 공연 관람객 입장도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CRI 홈페이지에 상해에서 개막한  중국국제수입박람회와 신주 13호 우주비행 관련 뉴스를 관심있게 봤습니다.

습근평 주석은 중국 국제수입박람회 개막 연설을 통해 높은 7수준의 개방을 확대하고 세계와 시장의 기회를 공유하며 세계 공동이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신주 13호에  중국 최초 우주유영에 성공한 여자 비행사인 왕아평 관련 내용도 흥미로웠습니다.

중국 길림성 이강춘 청취자께서 작성한 노인협회 회원들이 김치를 담궈 독거노인에게 전달했다는 소식은 훈훈한 미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시된 여러장의 사진을 통해 노인들의 수고와 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앞으로 김혜숙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들의 할동상을 CRI를 통해 종종 볼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입동이 지나면서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모두 환절기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 연준”

[간주]

2. 박씨 마을과 중국 대륙

이 시간에는 ‘박씨 마을과 중국 대륙’, 대륙의 옛 마을에 조선인의 옛 얼굴이 나타난다‘이런 제목으로 중국 대륙의 옛 마을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성의 그 마을에 숨은 한족 박씨의 족보

  마을을 눈앞에 두고 다리 위에 갑자기 돌무지가 나타났다. 길을 새로 닦기 위해 아예 통행을 차단했던 것. 기사는 부득불 길가에 택시를 멈춰 세웠다.

  어쩌지, 이 위성진(衛星鎭)은 정말 이름처럼 ‘위성’을 쏘아 올려야 닿을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이 동네는 날마다 길손을 위해 ‘위성’을 쏘아 올리기라도 하는 걸까.

  위성진은 정말로 하늘의 위성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1958년, 중국 어느 마을의 밀 소출이 무당 약 650㎏이라는 허위 소식을 실었다. 이 보도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위성’보도가 시작되었으며, “위성을 쏘는”거짓 만들기의 경합이 도처에 일어났다.

  이 무렵에 동명의 지명이 생겼다. 바로 흑룡강성(黑龍江省) 수화현(綏化縣)의 위성 인민공사이다. 위성 인민공사는 훗날 인민공사는 향으로 개명했고 다시 진(鎭)으로 되었다.

  위성향(진)의 박가툰(朴家屯) 역시 ‘위성’처럼 출현한 박씨 마을이다. 하필이면 ‘위성’이라는 이 이름을 눈앞에 떠올린 원인이 있다. 박씨의 족명(族名)이 조선족이 아니라 엉뚱하게 한족(漢族)이기 때문이다. 이 일은 예전에 대륙을 날린 허위 소식인 ‘위성’이 아니라 진실한 기문(奇聞)이었다.

  그러나 기문의 마을은 길이 막혔다고 해서 당금 ‘위성’을 타고 날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위성진은 언제 도착하고 또 박가툰은 언제 만날 수 있을까… 두발로 타박타박 길을 재고 있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오더니 부르릉 하고 바로 곁에 멈췄다. 미리 만남을 약속했던 박문룡(朴文龍, 53세)이 다리가 막힌 줄 알고 마중을 나온 것이었다. 박문룡은 박가툰의 족보를 만들고 있는 사람으로, 위성진 중학교에서 교원으로 있는 등 박씨 마을의 흔치 않는 수재이다.

  어찌 보면 박문룡은 자칫 조선족으로 착각할 수 있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말을 단 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 그가 말하는 동명의 박가툰 역시 한족 족명의 박씨 마을인 길림성(吉林省) 서란(舒蘭)의 박가툰을 말하고 있었다. 박문룡은 또 얼마 전부터 요녕성(遼寧省) 본계(本溪) 박보(朴堡)의 박씨와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서란의 박가툰과 본계 박씨 마을의 박씨는 모두 한 계열의 항렬 돌림자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언제인가 박씨들은 따로 그들의 위쳇(한국의 카톡) 동아리를 만들었고, 한 사람 두 사람 건너 박씨의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하고 있었다. 실제 위성진 박가툰의 이름은 박씨들의 동아리에 가입했던 지인이 일부러 저자에게 알려준 것이다.

  박문룡은 저자가 한족 박씨의 연원을 조사한다고 해서 약간 의아했다고 한다.

  박씨가 중국의 한족 성씨가 아니라는 것은 일찍부터 알려지고 있었다. 박문룡은 어릴 때 늘 친구들에게 놀림조로 고려방자(高麗梆子)라고 불렸다고 한다. 고려방자는 연변치, 연변사람 등과 같은 의미이지만, 항간에서는 대개 폄하의 낱말로 쓰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박문룡은 지금도 족명을 조선족으로 바꾸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한다.

  길림성과 요녕성에 그들처럼 박씨 마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라고 한다. 박씨가 반도 고유의 특이한 성씨이며, 본계 박보의 박씨는 족명이 조선족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도 늦게야 알게 되었다.

  박문룡은 위성진의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7,8리 떨어진 회이촌(會二村)에 살고 있었다. 이 마을의 옛 이름은 워낙 은혜 혜(惠)를 쓰는 혜이촌(惠二村)이라고 한다. 왜서 지명을 모일 회(會)의 이름자로 고쳤는지는 몰라도 마을은 정말로 이 이름자처럼 500여 가구나 줄레줄레 모인 큰 동네였다.

  뜰에서 소에게 여물을 주고 있던 박문룡의 부친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부친 박홍신(朴洪信, 80세)은 회삼촌에서 태어난 토박이였다. 박홍신의 가족처럼 회삼촌에서 살고 있는 박씨는 7가구 된다고 한다. 위성진 부근의 5,6개 마을에는 박씨가 80명 정도 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혜삼촌과 이웃한 위성진 박가툰에서 분가, 이주하고 있었다.

  박홍신은 그때가 1947년 무렵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박가툰은 시초에 식솔이 60,70명이 되는 한 집안이었지요. 토지개혁 때 여러 마을에 일일이 분가를 한 거지요.”

  박홍신의 집은 동북의 여느 한족처럼 입구에 부엌을 두고 있었고, 내실은 반은 구들, 반은 바닥 모양의 구조였다. 바닥의 걸상에 앉아 박홍신 옹 부자와 인터뷰를 했다.

  박가툰의 박씨 돌림자는 도합 20자였다. 둘째 조부가 박씨 가문에 구전으로 전하는 이 돌림자를 박문룡에게 전수하면서 마음 깊이 기억하라고 신신 당부하더란다. 박문룡이 세상에 눈을 뜬 18,19세 때의 일이었다.

  얼마 전 박문룡은 위쳇을 통해 여러 마을의 항렬 돌림자를 서로 전하고 비교를 했다. 위성 박씨는 본계 박씨, 서란 박씨는 각기 전승되는 항렬 돌림자가 글자와 순위가 모두 같은 모양새였다. 그러나 세 곳 박씨에게 전승하는 항렬 돌림자는 이때 서로 다른 점도 발견되고 있었다.

  박문룡은 검은 글씨로 위성 박씨의 돌림자를 종이위에 적었다.  서란 박씨의 돌림자는 열한 번 째 글자까지 위성 박씨의 돌림자와 동일하며 또 현존하는 돌림자는 13개뿐이다.

  와중에 이상한 일이 있었다. 제10대라고 하는 박홍신의 이름자에는 항렬 돌림자의 글자가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박씨의 제10대의 항렬 돌림자는 분명 옥의 옥(玉)인데, 큰물 홍(洪)을 쓰고 있었다. 이 항렬의 위성의 박씨는 모두 박홍신처럼 큰물 홍을 쓰고 있다고 한다. 하늘처럼 따르던 돌림자의 글자를 위성의 박씨들은 웬 일인지 전부 바꾼 것이다.

  하필이면 큰물 홍자로 바꾼 이유가 뭘까. 누군가 자료를 찾아 원인을 해명했다. “마을 남쪽의 호란하(呼蘭河)가 예전에는 해마다 장마철이면 홍수가 졌다고 하던데요, 그때 박씨 선조들은 이맘때 크게 해를 입은 홍수를 기억에 담고 이름자에 넣은 게 아닐까요.”

  호란하는 만족어로 굴뚝이라는 뜻이라고 《흠정성경통지(欽定盛京通志)》가 좌증(左證)한다. 청나라 때 북방에서 비롯되는 침략을 막기 위해 호란강 기슭에 늘 병사를 주둔했으며, 병사들이 밥을 짓는 굴뚝이 수풀처럼 일떠서서 속칭 ‘굴뚝의 수림’을 만들었던 것이다. 예전에 장마철인 7,8,9월이면 늘 큰물이 졌으며 마을은 드문드문 물난리를 겪었다.

  옛날의 이런 기억은 기실 박홍신의 해묵은 목궤에 하나 숨어 있었다. 민국(民國, 1912~1949) 연간의 옛 가계도(家系圖)를 박홍신이 소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듯 족보는 먼지를 풀씬 날리고 있었다.

  가계도는 제1대인 응당 응(應)의 항렬 돌림자의 세조부터 시작하여 제9대인 넉넉할 부(富)자 돌림자의 선조까지 이르고 있었다. 제9대의 선조는 이 가계도를 만든 후 새로 늘어난 사람의 이름을 빨간 조각의 종이에 써서 따로 붙이고 있었다.

  박가툰에 처음 정착한 박씨는 돌림자 덕의 덕(德)을 이름자에 쓰고 있는 7대손이었다. 실제 박가툰 부근에 있는 박씨의 선산도 7대손을 세조로 모시고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되어 대륙 북쪽의 이 오지까지 찾아왔는지를 알 수 없었다. 다만 박씨의 항렬 돌림자가 성항 성(盛)에 이르렀으니, 세수(世數)가 14개 된다는 것뿐이었다.

  실제 박문룡도 박가툰의 박씨는 남쪽의 요녕성에서 건너왔다는 것을 구전으로 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역시 위성 박가툰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른다고 하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행은 함께 박씨의 항렬 돌림자에 따라 연대를 추정했다. 한 세대를 25년으로 잡으면 19세기 중반쯤 이 고장으로 이주한 것 같다는 결론이다.

  정확하게는 1870년 이후에 박씨들의 북쪽 이주가 시작되었다는 것. 박씨 선인들은 첫 항렬 돌림자 10자의 마감을 앞두고 1870년경에 새로 항렬 돌림자 20자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새로운 항렬 돌림자에서 첫 5자가 박가툰 박씨의 항렬 돌림자에 거의 그대로 전승되고 있다. 마지막 5자도 동음이의어의 글자로 비슷하며 동일한 항렬의 돌림자로 볼 수 있다. 박씨가 박보 일대를 떠나 위성 일대로 향발한 시기를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시기 열악한 교통과 통신 환경에서 새 항렬 돌림자를 박보 현지에서 미리 받지 않았던들 그 돌림자가 박가툰에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마침 이 무렵부터 북진(北進) 행렬이 대거 시작되고 있었다. 이 북진은 일명 ‘틈관동(闖關東)’이라고 하는 만주 개척이었다. 청나라 (同治, 1862~1875) 연간부터 민국 시기까지 장성 남쪽의 백성들이 생계를 위해 만주에 진출했다. 그때 박씨가 남쪽 지역의 북진 행렬에 가담하여 대륙의 이 북쪽 끝머리까지 진출한 것 같다는 얘기이다.

  미구에 쑥대밭에 묻혀 있던 북림자(北林子)에 청(廳) 소재지가 들어서고 ‘수화’라고 이름을 짓게 된다. ‘수화’는 일명 ‘상스럽고 안전하며 순조롭다’는 뜻이며 또 만족말로 쑥대라는 뜻이라고 해석된다. 지명에서 볼 수 있듯 개척민이 찾는 그런 최적의 땅이었다.

  흑토의 땅은 그처럼 박씨를 비롯하여 남쪽의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었다. 박가툰은 특이한 박씨 마을이었지만 그렇다고 흑룡강성에 나타난 유일한 한족 박씨의 마을은 아니었다. 동쪽 천리 밖의 밀산시(密山市) 승자하향(承紫河鄕)에도 동명의 박가툰이 나타나고 있었다. 10년 전에 박가툰을 답사, 조사했던 밀산시 전 부시장 맹고군(孟高軍)에 따르면 박씨의 두 형제가 1925년경 하남성(河南省)의 신향(新鄕)에서 밀산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위성 박가툰의 박씨처럼 한족말만 할 줄 알았고 예의나 음식, 풍속 등 어디서나 조선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두 형제 역시 오랜 옛날 대륙에 이주해서 살았던 박씨의 후손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그러나 족보나 구전되는 가족사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선조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아직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되고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7대손에서 시작된 박가툰은 마을 부근의 저지대에 박씨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었다. 선조의 옛 무덤은 박씨 가문의 장손이 무덤지기로 있다고 한다. 박문룡의 말에 따르면 현재 이 장손은 12대손으로 밝을 명(明)의 돌림자를 이름으로 쓰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박문룡의 안내를 받아 박가툰 현지를 찾았다. 점심나절인데도 마을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박씨의 집에는 아예 큰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농사철이라서 다들 밭에 나가 있는 것 같다고 박문룡이 나름대로 추측을 했다.

  길을 돌아서면서 박문룡은 뭐가 맹랑한지 땅바닥에 한숨을 길게 떨어뜨렸다. 박가툰에 박씨 집안이라곤 인제 이 집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퀴즈 한마당 코너]

MC: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계속하여 지명과 관련한 이달의 퀴즈를 내어드리겠습니다.

한반도의 상징적인 성씨인 박씨는 오래전부터 중국 대륙에 등장하는데요, 역사서인 《원사(元史)》에 따르면 원나라 환관 박모모는 원(元)나라의 도읍인 대도(大都, 북경)에 나타납니다.

원나라 역사에 기재된 이 환관 박모모의 이름은 무얼까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원나라 역사에 기재된 이 환관 박모모의 이름은 무얼까요?

네, 중국 길림성 연길의 박철원 청취자는 퀴즈 답안을 보내오고 원나라의 도읍에 나타난 환관의 이름은 朴不花 박불화라고 한다고 《원사(元史)에 기록되어 있다면서 고려 때의 이 박씨네 항렬 돌림이 어느 대인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박불화가 남성이리라고 믿지만 이름자에 꽃 화자가 붙으니 좀 이상하다고 글을 덧붙였습니다. 또 이때 여자 포로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고 했습니다.

11월의 퀴즈 답안은 내달 첫 주의 ‘청취자의 벗’에서 말씀드립니다.

네,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MC: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번,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 중앙방송총국 아시아아프리카지역 방송센터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말]

MC: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은옥(MC),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취자의 벗]과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취자의 벗]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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