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풀이: 던질 투(投 tóu), 붓 필(筆 bǐ), 좇을 종(從 cóng), 병기 융(戎 róng).
◎뜻풀이: (문인이) 붓을 내던지고 종군하다.
◎출전: 한(漢) 류진(劉珍) 등『동관한기•반초전(東觀漢記•班超傳)』
◎유래: 동한(東漢) 초년에 반씨(班氏)가문은 2대에 걸쳐 네명의 걸출한 인물이 나왔다. 아버지 반표(班彪)는 『사기후전(史記後傳)』을 저술했고 장자 반고(班固)는 20여년의 시간을 들여 『한서(漢書)』를 저술함으로써 기전체사서의 형식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려 단대사(斷代史)의 본보기로 되었다. 딸 반소(班昭)는 『한서(漢書)』 후속으로 8표(八表)를 썼으며 그 『천문지(天文志)』부분의 미완성고를 정리해냈다. 차남인 반초(班超)는 유명한 외교가이며 뛰어난 담략과 무략으로 이름을 날렸다. “투필종용”은 바로 반초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반초의 형인 반고가 『한서』를 편찬하는 과정에 어떤 사람이 반고가 사초를 뜯어 고친다고 밀고를 하는 바람에 하옥되었다. 반초는 이 일과 관련해 황제에게 올린 상소에 이렇게 적었다. “나라라면 그 역사가 없을수 없으며 사서를 편찬하는 일을 하려는 사람에 대해 조정은 응당 도와주어야 할것입니다. 지금 조정은 이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명을 들씌워 공이 있는 사람을 옥에 가두었으니 나라를 위해 충정을 바치려는 뜻있는 사람들이 이를 본다면 어찌 낙담하지 않겠나이까?”
황제가 반초의 상서를 보고는 설득되어 즉시 반고를 석방하며 그를 도성에 불러 들여 교서랑(校書郞)직을 제수하고 전문적으로 『한서』편찬에 몰두하도록 하라는 어지를 내렸다.
한명제(漢明帝) 영평(永平) 2년(기원 12년)에 어지를 받은 반고가 어머니와 동생 반초, 여동생 반소와 함께 도성 낙양(洛陽)에 와서 임직했다. 교서랑이란 관직은 말단관리였고 그 녹봉도 보잘것 없었다. 반씨 일가는 반고 한사람의 넉넉치 않은 녹봉으로 살아가니 그 살림살이가 변변치 않았다.
반초는 형님의 녹봉이 낮아 연로한 어머니와 식구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형에게 일자리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되고 더불어 자신의 능력을 단련하자는 목적이었다.
반고도 도성에 온지 얼마 안되어 아는 사람이 적었다.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부탁해 보았으나 모두들 단시일내에 적당한 일자리를 구한하는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이에 반초는 동생에게 관부의 문서를 필사하는 일을 맡겼다.
당시 관부의 문서필사량은 엄청났고 거기에 엄격한 시간요구가 있었다. 그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반초는 매일 날이 푸름하면 일어나 작업을 시작했고 저녁 늦게서야 일을 마칠수 있었다. 이런 지루한 과정에서 반초는 온몸이 시큰시큰해나고 두눈이 침침할 정도였다.
이런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을 하면서 반초는 마음이 산란할 때면 자신이 품어 온 큰 뜻을 생각하군 했다. 허나 노모의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억지로 일을 계속하군 했다.
어느날 반초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너무나 무료한 것이고 이렇게 더 지내다가는 자신의 평생의 포부를 영원히 실현할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울화가 치밀어 붓을 땅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 “대장부가 큰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적어도 부개자(傅介子), 장건(張騫)처럼 나라의 외교를 위해 재능을 바쳐 제후로 될 일이지 이런 무료한 일에 허송세월해서야 되겠는가?”
이때부터 반초는 붓을 놓고 군대에 들어갔다. 그는 작전에서 용맹무쌍하여 빠른 승진을 이어갔다. 얼마후 조정에서는 반초를 사신으로 임명해 외국에 파견했고 반초는 끝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수 있게 되었다.